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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혁명 개척자의 최후를 둘러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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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심기 특파원) 미국의 셰일개발 붐을 주도하면서 ‘에너지 르네상스’를 일군 오브리 맥클렌던 전 체사피크 에너지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가 2일(현지시간) 자동차 사고로 숨졌다. 하지만 사고 시점이 법무부가 그를 반독점 위반혐의로 기소한 바로 다음 날이라는 점과 정황상 고의사고, 즉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가뜩이나 유가하락으로 위기에 휩쌓인 미국 셰일업계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맥클렌던은 이날 오전 9시12분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외곽 2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을 받치고 있던 갓길의 콘크리트 벽면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가 몰던 GM사의 SUV차량은 충돌 직후 불길에 휩쌓였으며 순식간에 차체만 남긴 채 전소됐다. 현지 경찰은 그가 현장에서 즉사했다며 사고 경위를 조사중이라고 전했다.

현지 언론은 목격자의 발언을 인용해 “그가 고속도로 갓길의 벽으로 차를 몰고 돌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자살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맥클렌던이 졸음운전이나 운전 부주의로 도로를 이탈하더라도 비포장인 풀밭을 지나야 벽면과 충돌하게 돼 있어 그가 핸들을 꺾어 차량을 도로에 다시 진입시키거나 최소한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 그가 제한속도 시속 40마일(시속 64km)을 훨씬 넘는 속력으로 차량을 몰아 콘크리트벽과 그대로 부딪힌 점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맥클렌던이 전날 석유와 천연가스 광구 개발권 입찰과정에서 가격 담합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점을 이번 사고와 연결시키고 있다. 법무부는 전날 그가 미국에서 셰일 석유와 가스 붐이 일던 2007~2012년 사이에 오클라호마주의 석유 및 천연가스 광구 개발권 입찰과정에서 다른 회사와 짜고 낙찰가격을 낮추기 위해 담합한 혐의로 연방대배심에 기소했다. 법무부는 맥클렌던이 경쟁 입찰자에게 대가를 지불한 뒤 자기가 CEO로 있던 체사피크 에너지가 광구를 인수하는 등 담합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맥클렌던은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해 “완전한 허위”라며 “무죄를 입증하고 누명을 벗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자신은 “오클라호마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며 모든 미국인에 풍부하고 적절한 가격의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무죄 주장을 펼친 뒤 불과 하루만에 자살로 의심되는 자동차 사고로 숨지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맥클렌던은 1989년 당시 29세의 나이에 5만달러의 자본금으로 체사피크를 설립, 석유시장에 뛰어든 뒤 20년만인 2008년 체사피크의 기업가치를 3560억달러로 키우며 ‘에너지 제국’을 성장시켰다. 일찌감치 셰일원유의 성공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다른 경쟁자들이 반신반의 하는 사이 수압파쇄기술을 재빠르게 받아들여 셰일원유와 가스채취에 나서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가 미국 셰일 붐을 일으킨 개척자로 평가받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그가 개척자이면서도 미국 에너지 업계의 과욕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가 담합을 주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기간은 미국 전역에서 셰일원유와 가스 채굴권을 확보하기위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으며, 체사피크는 텍사스와 펜실베이니주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된 셰일층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투자로 인해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유가 폭락으로 회사가 위험에 빠지자 2013년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을 중심으로 한 주주들의 반란으로 CEO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후에는 아메리칸 에너지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설립, 150억달러를 모아 원유와 천연가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명예회복을 추진중이었다.

그와 25년간 친분을 유지한 BP캐피탈의 분 피킨스는 블룸버그에 “맥클렌던은 미국의 에너지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진정한 미국의 기업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교롭게도 체사피크 에너지 주가는 23% 폭등했다. 회사는 최근 파산보호신청 위기에 몰렸으나 구조조정과 자산매각을 통한 회생계획을 발표하면서 최근 주가도 반등세로 돌아섰다. 회사측은 이날 맥클렌던의 사고 소식에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주가 움직임과 맥클렌던의 사고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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