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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악도 단속도 안되는 위법 원룸…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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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달 8일 원룸인줄 알고 입주한 집의 용도가 알고보니 제2근린생활시설(고시원)이라 올해 연말정산에서 월세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 세입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이후 주변인들의 문의가 많았습니다. 기사를 읽고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의 용도를 확인해봤더니 고시원으로 등록돼 있었다는 겁니다. 몇몇 지인들은 구제방법이 없는지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 상 구제방법은 없습니다. 문제는 원룸 형태를 띈 고시원과 같은 위법건축물들의 숫자가 전혀 파악되지도 관리되지도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 고시원으로 등록된 원룸에 살면 어떤 피해를 입을까

가장 먼저 독서실, 학원, 고시원 등 제2근린생활시설로 등록된 원룸에 사는 연 급여액 7000만원 이하 직장인들은 연말정산에서 월세 세액공제를 받지 못합니다. 월세 50만원을 내는 직장인은 한 해 월세 납부액의 10%인 60만원의 세액공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똑같은 구조를 가진 원룸에 살고 있는데 용도가 불법으로 등록된 건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제2근린생활시설이 2배 가량 높습니다. 일반 주택의 최대중개수수료는 거래액의 0.4% 제2근린생활시설은 0.9%입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인 원룸의 경우 최대 중개수수료는 주택의 경우 20만원, 제2근린생활시설은 45만원입니다.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업계에서 집주인들은 건물 용도와 관계없이 주택 기준인 0.4%의 중개수수료를 내는 것이 관행“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부동산 중개업소 입장에선 집주인들과는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되지만 입주자는 딱 한번 계약하면 끝”이기 때문에 집주인에게는 낮은 중개수수료를 받고 입주자에게는 최대중개수수료를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위반한 것은 집주인인데 피해는 입주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 현장 부동산업자들, “원룸촌 원룸 건물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제2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있어”

여기서 입주자들이 입주 전에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 살 방을 구하는데 등기부등본도 안떼어보는 것은 너무 부주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문의한 기획재정부·국세청·일선 구청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주자의 부주의를 탓하기엔 위법 건축물이 아닌 원룸 건물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위법건축관행이 만연해있습니다.

대학가나 지방 소재 산단 주변 원룸촌 건물들 상당수가 불법 건축물이라는 사실은 부동산 업계에선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대학가 주변의 한 부동산에서 50여개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그 중 40개 가까운 부동산이 독서실 학원 고시원 등 제2근린생활시설로 돼있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 주변 원룸 중 못해도 절반 이상은 제2근린생활시설로 위법 등록돼있을 것”이라며 “멀쩡한 원룸이더라도 제2근생으로 등록하면 주차장 면적을 줄여 점포로 활용할 수 있고 월세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니 수입이 노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보니 위법건축이 관행적으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담당 관청, “실태 알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파악은 어렵다”

건축 허가를 맡고 있는 일선 시‧군‧구청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파악도 규제도 힘들다고 말합니다. 관악구 내 건물만 수천개에 달하는데 건축과 인력은 20명 내외에 불과합니다. 건물 신축‧용도변경을 허가할 때마다 건물도면과 용도를 확인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일일이 실사를 나갈 수 없습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불법건축물이 많은 것은 알고 있지만 수없이 많은 건물의 불법건축 여부를 일일이 조사하기도 힘들거니와 대대적인 조사를 한다고 해도 조사가 끝나고 개조하면 다음 조사가 있을 때까지 손 쓸 방법이 없을 것”고 말합니다. 때문에 담당 관청들은 신고가 들어와야 조사를 나갑니다. 위법 건축이 확인되면 시정명령이나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보통 원룸 건물의 경우 과태료는 몇백만원에 그쳐 위법건축을 방지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축할 때부터 위법건축물이 지어진다?

한 구청 관계자는 “집주인이 몰래 불법개조하는 것은 적발이 힘들지만 적어도 신축 과정에서 불법건축물이 지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시에는 신축 시 건물이 설계도면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검사하는 두 단계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도면대로 지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건설사가 지정한 감리와 검사업무를 위탁받은 서울시건축사회가 지정한 ‘특별검사원’들의 보고서를 통해 확인됩니다. 한 건축사 관계자는 “작은 원룸 건물 신축은 영세한 시공사와 감리에 의해 이뤄지는데 구청에서 따로 감리를 감독하는 경우는 없다”며 “시공사와 감리가 유착해 원래 설계도면과 다르게 시공하거나 건축자재를 덜 써도 주민신고가 들어오거나 특별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합니다.

특별검사원 제도는 이같은 병폐를 차단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작년 5월 돈을 받고 위법 건축을 묵인한 특별검사원 274명이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시공사와 감리간 유착을 방치하기 위한 특별검사인들이 갖가지 경로로 뇌물을 받은 것입니다. 현장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신축할 때부터 설계도면과 다르게 지어지는 건물을 많이 봤다”고 말합니다.

◆중간 위법개조는 행정 사각지대

신고도 하지 않고 위법개조하는 경우는 행정 사각지대입니다. 관청 몰래 개별 취사시설을 설치하거나 주차장 면적을 줄여 세대수를 늘리더라도 적발되는 경우가 드물고 적발되더라도 과태료를 내면 그만입니다. 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의 신고가 들어와야 조사를 나가기 때문에 불법건축물 숫자는 파악조차 힘들다”며 “건물 준공 이후에 불법 개조하는 경우 역시 주민이 신고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택인줄 확인하고 입주한 건물이 모르는 새 용도가 변경돼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주인은 다가구주택을 다세대주택으로 용도변경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건물 용도 변경 시 세입자에게 관련 사항을 통지할 의무가 없어 세입자는 살고 있던 주택이 고시원이나 학원으로 용도변경돼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위법건축물에 대한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많은 세입자들이 집주인과의 관계 때문에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관계자는 “건물의 위법건축 여부를 알게 된 세입자들의 신고를 막기 위해 월세를 깎아주는 등 일종의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원룸인 줄 알았던 집이 고시원이라 월세 세액공제를 못받게 된 김모씨(29)는 “이번에 세액공제를 못받게 된 것을 집주인에게 이야기하자 월세를 5만원 깎아줬다”며.“앞으로 1~2년 더 살 곳이니 집주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원하지 않아 월세를 낮추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작년 1월 연말정산(2014년분) 월세 세액공제 신청자는 16만2400여명입니다.소득이 낮아 결정세액이 없어 세액공제 받을 의미가 없거나 학생‧무직자 등 소득이 없는 월세 세입자를 제외하더라도 전체 대상과 비교해 높지 않은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위법건축물의 만연이 세액공제 액수가 작지 않음에도 신청자가 적은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입주 전후 용도 확인해 합법 건축물에 입주하거나 전입신고 꼭 해야

세입자들은 입주 전‧후로 본인이 확인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다른 원룸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하다거나 계약할 때 집주인이 전입신고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면 건물 용도가 제2근린생활시설일 가능성이 높다”며 “계약할 때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꼼꼼히 확인하고 전입신고를 꼭 해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보증금 보호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부 집주인들이 현금영수증을 발행하니 월세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금영수증은 세액공제와 무관하다”며 “월세 세액공제 적용 범위는 주택 외엔 주거형 오피스텔만이 포함되므로 원룸 형태의건축물이라도 용도가 고시원이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높은 부동산 수수료도 위법건축물에 입주하는 이상 입주자가 감수해야할 부분입니다.

법 개정 가능성도 현재로선 없습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월세 세액공제의 취지는 ‘주거안정’이기 때문에 독립된 주거시설이 아니고 단기거주자가 많은 고시원까지 세액공제를 허용하긴 힘들다”며 “이와 관련해 법 개정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법을 위반 한 것은 일부 비양심적인 집주인들이지만 피해는 법을 지키는 입주자들에게 돌아갑니다. 파악도 규제도 되지 않는 위법 건축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 전까지는 입주자들이 똑똑해지고 용감해져야합니다. (끝)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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