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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ELS 100조와 금융감독원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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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금융부 기자) ELS 등 파생결합증권의 잔액이 100조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기초자산 급락으로 일부 ELS는 손실위험 구간에 진입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 우려가 제기돼고 있습니다. 위험회피(헤지)를 잘못해서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경영이 위태로워질 것이란 말까지 들립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얘기가 빠진 듯 합니다. 도대체 파생결합증권이 뭐길래 한 나라에서 100조원이 넘는 돈이 몰렸는 지, 그로 인해 실물 경제에 어떤 도움을 줬는 지 말입니다.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간단한 질문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일 100조원 중 절반만이라도 파생결합증권이 아니라 실제 주식으로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아무리 ELS에 돈을 들이 붓는다고 한들 투자자들이 주권을 실제 소유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코스피200 지수가 3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연 수익률 7%를 보장한다’는 식의 계약서 한 장 손에 쥘 뿐입니다.

흔히 주식은 기업이 자본시장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서입니다. 투자자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통해 기업과 위험을 같이하고, 또 그에 대한 대가로 주식매매차익, 배당금 등을 돌려받습니다. 하지만 주식 혹은 주가지수를 기초로 발행하는 ELS는 기업으로의 자금조달 기능과는 무관합니다. 발행된 대부분의 ELS만해도 홍콩항센지수 등 95% 가량이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금의 비효율적인 흐름은 국내 주식시장에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코스피지수가 3000은 고사하고 2000선을 유지하기 어려운데 한국 경제라는 펀더멘털의 문제도 있겠으나 파생결합증권 남발이 빚은 수요기반 약화도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예컨대 2013년 코스피 지수가 2050선을 넘보며 연일 상승할 때 주요 요인으로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을 꼽았습니다. 당시 외국인은 8월23일부터 34거래일 동안 순매수 행진을 벌이며 한국 증시에 낙관론을 불어넣었는데 이때 순매수 규모가 11조8300억원이었습니다. 불과 11조원만으로 코스피 지수를 8.8% 끌어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외국인 순매수 행진이 끝나고, 곧바라 코스피 지수는 하락세로 접어들며 많은 개인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만일 이 때 금융회사들이 슬기롭게 시중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 이렇게 하지 못했던 걸까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금융회사들의 역량 부족입니다. 증권회사와 은행들은 ELS 등 파생결합증권을 중위험·중수익 투자상품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언론도 무의식적으로 ‘파생결합증권=위험은 크지 않으면서 이익도 짭짤한 상품’이라고 평가하곤 했습니다.

‘ELS 몰빵’을 유도했던 셈인데 이게 아니라 은행, 증권사들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산배분형 상품들을 개발해 판매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ELS 같은 특정 상품에만 몰빵하는 게 아니라 주식, 채권, 펀드, ELS 등 파생결합증권 등에 골고루 분산 투자하는 상품을 대중화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 지 말입니다.

금융감독원의 감독 기능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만 단일 국가에서 파생결합증권이 100조원씩 팔린 나라는 아마 없을 듯 싶습니다. 항상 과잉은 파국을 잉태하고 있는데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금감원이 팽창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는 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금감원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앞다퉈 투자하면서 발생한 부실도 결국 사단이 난 뒤에야 처리하느라 급급했습니다. 증권사들이 초단기 기업어음을 개인들에 무더기로 판매해 PF를 대체하고 있는 것도 잠재적으론 ‘폭탄’으로 평가됩니다. 금융투자상품이 워낙 복잡한 원인도 있겠습니다만, 금감원이 이 부분에 대해선 감독이 소홀한 것 아닌 지 되짚어볼 일입니다. (끝)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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