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과 역삼역 사이 남쪽에 위치한 이 단지는 1979년 입주가 이뤄진 오래된 아파트인데요. 한 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이 아파트 평형은 전용면적 160㎡(옛 57평형)과 176㎡(62평형) 등 대형 크기로만 구성됐습니다. 가정부를 위한 작은 방이 따로 있는 구조이지요.
입지는 좋습니다. 앞으로 현대·기아자동차그룹 본사 사옥이 들어서고 국제업무지구로 조성될 삼성역과 가깝고, 한티역(신분당선)까지도 걸어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강남 한복판 노른자위 땅입니다.
그런데 최근 오랜만에 둘러 본 개나리4차는 여전히 우울한 분위기였습니다. 2014~2015년 정부의 적극적인 재건축 규제 완화로 강남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사업에 고삐를 당겼지만 이 단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더군요.
2000년대 중반부터 재건축사업을 추진해 온 개나리4차 아파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2011년 현금청산자 비중이 높아 한바탕 홍역을 치뤘습니다. 현금청산이란 재건축 조합원이 되길 거부한 주민들이 조합측에 자신의 지분만큼 현금을 받고 사업에서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적당한 수준의 현금청산자는 오히려 재건축 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만큼 조합원이 줄어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나는 셈이구요.
개나리4차는 2002년 조합설립 인가를 받고 2006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거쳐 2008년 이주가 시작됐던 곳입니다. 철거와 착공을 눈앞에 두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신축 가구수가 거의 늘어나지 않는 1대1 재건축이어서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 비싸게 나온데다 주변 집값이 떨어지자 조합원들이 동요했습니다. 전체 264가구 중 96가구가 현금 청산을 원한 것이죠. 현금청산 총액만 1350억원 가량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시공비(1000억원)를 웃도는 금액이라 건설사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2009년 법원이 산정한 가구당 평균 현금청산 금액은 14억원을 넘었습니다.
2014년 주택재건축 정비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심의를 통과하면서 사업은 다시 궤도에 오르는 듯 했습니다. 248.48%이던 용적률(부지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은 299.78%로 올라갔습니다. 최고 25층 264가구 규모의 신축 계획은 35층, 499가구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단지 북쪽 선릉역으로 가로지르는 진선여고 옆 좁은 골목길이 문제였습니다. 이 길을 아파트 진입 차로로 만들려는 개나리4차 조합측과 소음과 차량 먼지 등을 우려한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간 소송이 벌어진 겁니다. 현금청산자들은 조합과 현금청산 비용을 놓고 또 반목합니다.
이제 재건축을 시작한 지 14년이 흘렀습니다. 개나리4차만 빼고 주변은 ‘테헤란 아이파크’ ‘역삼자이’ ‘래미안 펜타빌’ 등으로 모두 재건축을 마쳤습니다. 새 아파트들 가운데 서 있는 낡은 개나리4차 아파트는 일부는 아예 비어 있고, 일부는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살고 있습니다.
거래는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7년 15억원까지 올랐던 전용 160㎡ 실거래가격은 지난해 말 이후 12억5000만~13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재건축이 끝나면 전용 84㎡, 60㎡ 이하 소형 아파트 총 2채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명 ‘1+1 재건축’입니다. 한 채는 직접 거주하고 나머지는 임대를 놓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전용 160㎡를 현재 13억원에 매입하고 추가분담금을 3억~4억원 가량 내면 총 비용이 16억~17억원이 됩니다.
주민들은 재건축 이후 아파트 두 채 값을 합치면 20억~21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정말 ‘억’소리 나는 금액이지만 강남권 재건축 투자자들은 이런 식으로 손익을 따집니다.
개나리4차 조합 관계자는 “최근 재건축을 반대하던 조합원들 일부가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며 “현금청산자 수를 40~50명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나리4차에는 과연 언제쯤 봄이 올까요? 개나리는 활짝 피어날까요? (끝)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