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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은 했지만 주례 부탁할 은사 한명 없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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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요즘 4년 간의 대학생활을 마치면서도 "친한 교수 한명이 없다"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인간관계가 개인화‧파편화되면서 대학 내 사제관계가 멀어지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앞두고 마땅한 주례를 구하지 못해 고민에 빠집니다. 한번 있는 결혼식에 모르는 사람에게 주례를 맡기고 싶지는 않지만 친분 있는 교수가 없으니 울며겨자먹기로 ‘주례없는 결혼식’을 여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원해진 사제관계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 간의 시각차이도 뚜렷합니다.

지난 해 10월 결혼한 김한경씨(30, 가명)은 결혼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례를 구해야하는데 마땅히 주례를 봐줄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례는 대학 시절 은사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많지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습니다.

김씨는 서울의 한 대학을 나와 공무원이 됐습니다. 학창 시절 강의들은 대부분 수강생이 100명 이상의 대형강의들이어서 교수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힘들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부터 시작된 수험생활로 대학시절 내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그는 졸업할 때까지 교수와 차 한잔 마신 적이 없었습니다.

“같은 공무원인 남편도 특별히 친한 교수가 없고… 직장 상사 중에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많아 주례 없이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요즘은 주례 없이도 많이들 하잖아요?” 김씨는 결국 주례없이 결혼식을 치뤘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학 교수는 과거에는 매 주말이면 제자들의 주례부탁으로 쉴틈이 없었지만 요즘은 한가한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학생들과 친해지기 어려워졌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야외수업을 핑계로 풀밭에 모여앉아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지요.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는 학과 사무실에 가보면 학생들이 바글바글해 ‘짜장면 번개’를 하기고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리들이 사라지다보니 자연히 주례를 부탁하는 제자도 줄었습니다”

그는 “요즘 학생들은 아예 휴강하는 것은 좋아해도 수업시간에 노는 것은 싫어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자리를 제안해도 호응이 별로 없기도 하고 수업 안하고 놀러가는 교수라는 뒷말을 들을까 걱정돼 요즘은 그런 말도 안합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학생들은 제자들에게 관심 있는 교수가 많지 않다보니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서울의 한 대학 4학년에 재학중인 한경제씨(25‧가명)는 “얼마전 과학생회가 교수‧학생 간 만남을 호프집에서 주최했는데 행사에 온 교수는 40명 중 5명밖에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100여명이 왔는데 교수가 5명 밖에 없다보니 행사 내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하고만 얘기하다 왔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매학기 지도교수가 배정돼 지금까지 대여섯명의 지도교수가 있었지만 따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며 “교수들이 학생에게 관심이 없는데 무작정 요즘 학생들이 적극적이지 않아 사제관계가 멀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혼적령기인 30대 전후를 맞은 80년대 생들은 어린 시절 ‘남자셋 여자셋’이나 ‘카이스트’같은 TV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가졌습니다. TV 속 교수들은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때로는 졸고 있는 학생들을 장난스럽게 깨우기도 했습니다. 방송이라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요즘의 대학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생활을 그리는 드라마나 시트콤이 사라졌습니다. 개인화·파편화된 대학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랑‧신부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는 은사 한명을 찾기 힘든 요즘 젊은 세대의 고민을 보면서 현상의 이면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끝)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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