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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수돗물도 걱정 태산인데..." 이중고 겪는 미국 플린트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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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 국제부 기자)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의 ‘납 수돗물' 사태가 환경 문제를 넘어 금융 이슈로 번지고 있다. 지역 은행들이 수돗물 안전성을 집 주인이 증명하지 않으면 주택담보대출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등 대형 은행은 물론 미시간뮤추얼 등 지역 중소형 은행 등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플린트 지역 영업점에 최근 “수돗물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업무 지침서를 보냈다고 5일 보도했다. 플린트 지역에서 주택을 새로 구입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집에 연결된 수도 배관의 상태와 수돗물이 안전한지를 증명해야 이 지역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디트로이트 인근의 플린트는 재정난이 심해지자 2014년 4월 상수원을 휴런 호수에서 플린트 강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플린트 강과 주택을 잇는 낡은 배관을 통해 수돗물에 납이 흘러들어간 것이 최근에야 밝혀져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 어린이들이 납중독으로 피부질환과 뇌발달 장애 등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은행인 미시간뮤추얼의 임원 대니얼 제이콥스 씨는 WSJ에 “납 수돗물 파문으로 시름에 빠진 플린트 시민들이 담보대출 제한 움직임으로 주택가격까지 급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WSJ는 은행의 새로운 규정때문에 주택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더그 울프 씨의 사례를 소개했다.

67세의 퇴직자인 울프는 최근 플린트에 있는 집을 서둘러 팔기 위해 매물로 내놓고 두차례나 가격을 낮췄지만 아직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매수 희망자가 있었지만 수돗물 안전성을 입증해야 담보대출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구매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은행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연방정부의 주택임대 기준에 ‘지속적이고 충분한 수준의 음용 가능한 물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주 정부나 시 당국이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플린트 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만큼 예외규정을 만들어서라도 비상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WSJ는 전했다. (끝)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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