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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누 논란으로 본 '스타 마케팅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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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생활경제부 기자) “피해를 본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경영이 미숙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2013년 토종 운동화 브랜드 ‘스베누’를 만들어 돌풍을 일으키다 2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황효진 스베누코리아 대표(28). 한때 ‘청년창업 성공사례’로 꼽혔지만 협력업체와 가맹점들이 “물품대금을 떼였다”며 잇따라 고소장을 낸 사실이 알려져 사면초가에 빠졌습니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회사를 꼭 살리겠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패션업계에서는 스베누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스베누의 한 점주는 “사기 논란이 인터넷을 도배한 이후 매출이 바닥을 기고 있다”며 답답해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스베누가 스타 마케팅을 통한 외형 성장에 열을 올리다 ‘거품’이 터진 사례라고 지적합니다. 스베누는 출시 첫해부터 아이유, AOA, 송재림 등 톱스타를 모델로 썼고 지난해에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파트너십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포털사이트 광고에 삼성전자, P&G 등에 맞먹는 돈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덕분에 단숨에 10~20대에서 인지도를 높였고, 유명 백화점을 포함해 매장을 100여개까지 늘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개발(R&D) 없이 디자인과 마케팅에 치중하다 보니 구매자 사이에서 “품질이 조악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물빠짐이 심하고, 비만 오면 양말에 염색이 흥건히 묻어나는 등 ‘신발의 기본’이 안 됐다는 겁니다.

아웃도어 의류업계에서도 몇몇 상위권 업체를 제외하면 탄탄한 R&D 조직을 갖춘 곳은 찾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아웃도어 업체들은 매출의 5% 이상을 광고비로 쓰고 있는데, 이는 국내 제조업 평균(1~2%)보다 서너배 높은 수준입니다. 비슷한 디자인, 평범한 품질의 제품을 내놓고 ‘빅 모델’로 차별화하는 전략은 시장을 금세 레드오션으로 만들고 말았죠.

인터넷 연예뉴스를 도배하는 ‘공항패션’은 과열된 스타 마케팅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올, 구찌, 버버리 등 해외 명품은 물론 삼성물산, LF 등 국내 업체도 뛰어들어 매주 수십건의 공항사진을 쏟아내고 있는데요. 연예인들은 인천국제공항 앞에서 사진 한 번 찍는 댓가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1000만원을 받습니다. 최근엔 공항패션이 식상해지자 ‘녹화장 출근패션’ ‘파파라치 컷’ 같은 신유형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콧대가 높아지면서 패션업체의 협찬 비용은 더 뛰었습니다.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되는 돈입니다.

업체들은 “연예인이 입은 모습을 보고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아 어쩔 수 없다”이라고 항변합니다. 한 핸드백 브랜드 관계자는 “우리도 브랜드의 강점이나 품질의 우수성을 각인시키고 싶지만, 그런 걸 수십번 설명해봤자 연예인이 한 번 들고 나오는 매출 효과에 못 당한다”고 했습니다.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도 “연예인 모델을 쓰지 않으려 해도 대리점주들이 ‘톱스타 사진을 걸어놔야 손님이 온다’며 거세게 반발해 포기했다”고 전했습니다.

패션산업의 특성상 어느정도의 스타 마케팅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한류스타를 통해 토종 패션 브랜드가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죠. 하지만 대기업이든 신생업체든 갈수록 ‘연예인발’에 의존하는 모습이 K패션의 건강한 성장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까요?

세계 패션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면면을 떠올려 보면, 단순히 스타 마케팅으로만 뜬 곳은 없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그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끝)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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