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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공항의 중국인들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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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목 지식사회부 기자) 폭설로 항공기가 결항되면서 제주도에 발을 묶인 중국인들이 강하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수속대를 점거하는 통에 경찰까지 출동했다고 하네요.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업신 여겨서 그렇다”는 글들이 돌아다닙니다.

기자는 2012년 7월 신장성의 우루무치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중국 국내선 여객편이 결항돼 하룻밤을 생전 처음 보는 중국인 청년과 한 방에서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기초로 중국인들의 행동을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중국 국내라고 해서 중국인들이 항공기 결항에 관대한 것은 아닙니다.

밤 8시에 베이징으로 떠나기로 했던 비행기가 ‘정비 부족’을 이유로 한시간동안 활주로에 대기하더니 급기야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했습니다. 기내식을 들려주며 “30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던 안내는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비행기가 못 뜨게 됐다”는 안내까지. 저는 그 순간 중국인들의 민중봉기가 우루무치 공항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항공사 카운터로 몰려가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내일 아침에 사업상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할 거냐”부터 시작해 분풀이를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항의는 항공사가 “하루 숙박과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1인당 200위안씩을 배상으로 지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으며 이내 수그러들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기체 결함에 따른 항공편 결항과 지연 운행이 잦은 것도 이유입니다.

중국인들이 제주 공항에서 난동을 부린 원인도 숙박시설 제공 요구 등에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중국인들의 항공편 결항과 지연 운행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2012년 한해동안 기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10번 넘게 중국 항공편을 이용했지만 예정했던 시간에 비행기가 뜬 사례는 없습니다. 기내에서 수십분을 대기한 것은 보통이고 1~2시간씩 대합실에서 대기한 것도 수차례 있었습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지만 중국인들은 어느 정도 익숙한 환경입니다. 그렇다 보니 결항에 대한 대응도 어느 정도 ‘체계화’ 돼 있습니다. 먼저 화를 내고 항공사가 숙소 등을 제공하면 수긍하는 식입니다.

문제는 이번 제주 항공편 결항은 중국에서 으레 있는 ‘정비 불량’ 등 항공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천재지변에 따른 결항에 대해서는 항공사가 숙소 등을 제공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들이 아는 결항에 대한 대응과 다른 모습에 중국인들이 흥분하고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역시 외국 공권력을 덜 두려워하는 것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다던 숙소는 실제로 2시간을 가서 겨우 도착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공항에 와보니 “우루무치 시내의 차량 정체로 조종사가 도착하지 않았다”며 다시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승객들을 기내에 들여보냈습니다. 다시 항의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틀간 중국 승객들의 분노를 보며 느낀 것은 아무리 과격해 보여도 그것을 표출하는데 선이 있다는 겁니다. 삿대질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항공사 직원의 얼굴 앞에서 멈췄고 승객들의 진입을 통제하는 선을 넘어서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민간인인 항공사 직원에게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분노를 표출하면 내가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습관이 몸에 배였다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제주에서 벌어진 일부 중국인들의 난동은 중국 국내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로 보입니다.

그날 비행기 결항으로 같은 객실을 배정 받아 함께 밤을 보낸 중국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추리닝 차림의 그는 지갑도, 휴대폰도, 현금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비행기 좌석이 좁아 이것저것 갖고 있으면 거추장스러워서”라고 했습니다. 샤워를 저에게 먼저 하라고 양보한 그는 중국판 ‘보이스 코리아(프로그램 제목은 보이스 차이나입니다만)’을 보다 저보다 먼저 잠들었습니다. 내성적이고 아주 조용한 친구였죠.

우루무치 공항에서 승객들이 항의할 때도 목소리를 높인 건 전체 승객의 5%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제주공항 사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중국 인구가 많아 별별 사람들이 있고 그렇다 보니 일부의 행동으로 전체가 욕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좋든 싫든 때로는 경쟁자로, 때로는 파트너로 얼굴 보고 살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이번 문제를 중국인 일반의 결점으로 보시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끝)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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