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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아이돌의 명암…친선외교의 첨병 vs 외교갈등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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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문화스포츠부 기자) ‘쯔위 사태’가 지난 16일 끝난 대만총통 선거와 맞물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JYP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본명 저우쯔위·周子瑜·16)가 지난해 11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사전 인터넷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외교 문제로 비화된 것입니다.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네티즌들은 “쯔위가 대만 독립 세력을 부추긴다”며 JYP 활동 보이콧을 벌였고, 15일 쯔위가 모델로 활동하던 LG유플러스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로 일명 ‘쯔위폰’이라 불리는 스마트폰 ‘Y6’ 광고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16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16세 대만 연예인이 중화민국 국기를 든 화면 때문에 억압을 받았다”며 “누구도 대만 정체성으로 사과할 필요 없다. 억압은 양안 관계의 안정을 파괴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케이팝(K-POP)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국적 아이돌 그룹의 명암이 갈리고 있습니다. 출신 국가에 한류 열풍을 불어넣고, 양국을 오가며 문화 교류를 늘리는 윈윈(win-win) 사례도 있지만 이들의 돌발행동과 발언이 국가 간 외교적 사안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져서입니다. 국가간 분쟁이 심화되며 ‘혐한류’로 한국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교 사절’ 역할한 1세대 다국적그룹

한류 열풍 초창기까지만 해도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는 해당 국가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외교 사절’ 역할을 했습니다. 2PM의 태국 멤버 닉쿤(본명 닉차쿤)이 대표적인 사례죠. 닉쿤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에 익숙해진 태국에서는 ‘커피프린스’ ‘가을동화’ ‘풀하우스’등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슈퍼스타K’‘렛미인’ 등을 태국판으로 제작하는 사례가 급증했습니다. 한류 열풍을 타고 다양한 한국 기업이 태국으로 진출했고, 태국은 동남아 최대의 방한 관광시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먹튀’ 후 반한 감정 유발하는 경우도

하지만 한류 효과를 겨냥한 다국적 아이돌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외국인 멤버가 ‘복병’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외국인 멤버가 한국 엔터테인먼트사와의 계약 ‘먹튀’ 후 해외 시장에서 반한(反韓)감정을 유발하는 경우입니다.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그룹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 크리스(본명 우이판·吴亦凡), 타오(본명 황즈타오·黄子韬), 루한이 무단으로 팀을 이탈, 중국에서 개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SM에 전속계약 무효화 소송을 제기하고, SM 측은 중국에서 임의로 연예활동을 하고 있는 세 사람을 광고모델로 쓴 중국 광고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맞불을 놨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중국 매체와 한 인터뷰가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회자되며 반한감정을 형성했습니다. 엑소의 전 멤버 타오는 “한국 기획사는 가수가 부상을 입었을 때에도 무리하게 활동을 시킨다”며 “그룹 내에서도 중국인이라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2010년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를 돌연 탈퇴하고 중국으로 돌아간 한경은 “한국 연예계는 외국인을 차별한다”는 인터뷰에 이어 한국 고용주를 악마로 묘사한 광고에 출연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한국 엔터社

이러한 상황에 익숙지 않은 엔터테인먼트사들의 위기 대응 시스템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JYP의 웨이보·유튜브 공식 계정에 공개된 영상에서 쯔위는 초췌한 모습으로 “중국은 오로지 한 국가”라는 사과문을 낭독했습니다. 대만 네티즌은 이 영상을 보고 “IS(이슬람 국가)가 인질을 죽이기 전에 찍은 것 같다”며 분노했습니다.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미성년자 혼자 사과 영상을 찍도록 내세운 JYP가 잔인하다”며 “지나친 중국 시장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JYP 측도 “소속사로서 국가 간 예민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국제 해커조직인 어나니머스 대만분국은 JYP 홈페이지 공격을 선언했고, 홈페이지는 사이버공격을 받아 접속불능 상태가 됐습니다.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엔터사들에게 중국 시장은 아시아 진출의 ‘거점’이 되는 만큼 앞으로도 민감한 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며 “‘쯔위 사태’를 계기로 엔터테인먼트사들 역시 역사적·문화적 사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고 지적했습니다. (끝)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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