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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속의 경제史) 좌절하는 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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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담·성풍속연구가) 성병은 오래된 것이다. 대표적인 성병인 임질은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고 의사의 원조 히포크라테스도 이 묘한 질병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다만 병의 전염 경로에 대해서는 각종 설이 뒤죽박죽이어서 어느하나 정설이 없을 정도였다. 여자와의 관계 특히 무분별한 성관계로부터 전염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전염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숫처녀와 성 관계를 가지면 병이 낫는다는 등의 기상천외한 치료법이 다투어 발명되기도 했다.

고래로부터 기록된 성병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것이 바로 매독이었다. 요즘에야 주사 한방으로도 깨끗이 치료되는 병이지만 이병은 때로 나병보다 무서운 병으로 간주되며 남녀를 불문하고 바람꾼들을 괴롭혔다. 대략 15세기말에 발견되기 시작해 16세기 전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은 매독은 급속한 속도로 번져가 드디어는(공식적으로) 1569년 일본에 출현할 때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관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매독의 기원설도 다양해서 신대륙 도래설 중국도래설 몽고도래설 등 종잡을수 없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매독을 프랑스병이라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병으로 불렀다. 터키 사람들은 기독교병이라 불렀고 중국사람들은 포르투갈병이라고 불렀다. 모두가 적대국들에 이 질병의 기원을 둘러댔다.

시필리스(SYPHILIS)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의사이자 점술가이기도 했던 지올라모 프라카스토르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는 「시필리스 또는 프랑스병」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어떻든 이 매독 덕분에 성의 잔치는 끝났다. 중세의 긴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인간에의 재발견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갈데까지 간 다음 성의 극도의 문란과 범죄적 성교를 장려한 끝에 또하나의 종교부흥을 맞게되고 이것이 개신교로 연결되고 있다. 루터와 캘빈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가 매독이 번창하고 성의 문란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시의 도덕군자들이 입이 아프도록 성의 정결함을 강조했던 것을 이해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루터는 성직자들의 부도덕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동시에 정실부인외에 또하나의 여인을 거느리는 축첩을 부분적으로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현실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타협이 아니고는 일체의 전진이 불가능한 터였으니 성의 풍속이 얼마나 방종의 극에 달했는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12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찬란한 성의 해방은 경기의 극심한 후퇴, 매독의 만연, 여기에 종교개혁의 3자가 어울어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80년대들어 경기흐름이 완만해지고 에이즈가 만연하면서 국제화된 사창제도가 불경기를 맞았음과 결코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늘의 신문 - 2024.12.2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