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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돌아온 뒤엔 더 큰 아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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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정치부 기자) 지난 20일부터 진행된 제 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참석자들은 1㎝가 채 되지 않는 버스 유리창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했습니다. 65년만의 상봉이 기쁜 만큼 서글픈 이유는 이산가족들이 모두가 이 만남이 생애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번째, 세번째 만남이 이뤄지려면 남북관계가 급속히 개선돼 이산가족의 상시 면회소가 설치돼야합니다. 하지만 현 남북관계 상황으로 볼때 서신교환, 영상상봉 정례화, 상시 면회소 설치 같은 근본적 조치들은 요원합니다.

특히 가족을 만났던 이산가족들은 행사 뒤 가족을 만나기 전 보다 더 큰 아픔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꿈은 운좋게 이뤘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사실상 이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상봉 이후 또 한번 큰 상실을 경험하면서 그전보다 박탈감이 증폭되는 것입니다. 상봉자 중 절반이 후유증으로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난해 19차 이산상봉을 다녀온 가족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봉자들의 36%가 ‘상봉 때는 기뻤지만 지금은 답답하고 허탈하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8.7%는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게 나을 뻔 했다’고 했습니다. 상봉 이후 부정적으로 답한 이들은 이유(복수응답)로 ‘가족이 고생하며 산 것 같아서’(89.9%), ‘마지막(만남)이라는 생각 때문’(82.1%) 등을 언급했습니다.

이에 적십자사와 통일부는 다음달 1일부터 제 20차 상봉행사 참가자를 대상으로 본격정인 심리 치료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1차로 이번 방문단 총 643명에게 전화를 걸어 상봉 후 안부를 묻고 심리 상태를 질의 합니다. 우을 증세가 없는지, 상봉 후 술 담배가 늘었는지 등을 물어 심리적 응급처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겐 전문가를 보내 ‘곁에 머물기’, ‘경청하기’, ‘감정 받아들이기’ 등의 치료를 합니다. 증세가 심각한 대상자에 대해선 전문가 치료를 권유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상봉 행사에서 최고령자인 남측 아버지 이석주(98) 할아버지를 만난 북측 아들 이동욱 씨(70)는 아버지에게 “130세까지 사셔야지. 나는 100살까지 살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그렇게까지 될 지 모르겠다”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후유증을 겪지 않도록 할 가능한 방법은 북층 아들의 소식이라도 알 수 있도록 전화나 서신 교환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최근 이산상봉 행사에서 1세대 가족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입니다. 전체 12만8000여명의 상봉 신청자 중 80세 이상은 54%로 절반이 넘습니다. 이미 6만4000여명이 이미 사망했고, 매해 4000여명이 숨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끝)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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