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는 2008년부터 지난 9월까지 MACBA의 관장을 맡았습니다. 지난 3월 스스로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미술관이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려 9월에야 자리를 떠났는데요. 사임을 하게 된 이유가 독특합니다.
마리는 지난 3월 MACBA에서 열린 ‘왕조와 야수’ 전시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전시에 출품된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이네스 두작의 조각 작품 때문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과 볼리비아의 노동운동가 도미틸라 바리오스 데 충가라가 개와 함께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인데요. 인물 조각 밑에 나치 친위대(SS)의 헬멧이 여럿 놓여있기까지 했습니다. 마리는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전시에서 이 작품을 빼달라”고 요구했고, 그들이 이를 거절하자 전시를 개막이 예정됐던 당일에 아예 취소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일부는 후안 카를로스의 아내인 소피아 전 왕비가 MACBA의 재정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있다는 점을 들며 외압에 굴복한 결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큐레이터 등 미술관 근무자들도 크게 반발했습니다.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들은 “권력의 여러 속성 중 일부를 드러내 묘사하는 것은 예술의 기능 중 하나”라며 “몇 달 전부터 전시에 어떤 작품이 나올지 보고를 받아서 모두 알고 있었던 미술관 측이 갑자기 전시를 취소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른 근무자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사태”라며 “작품 검열로 전시를 취소한 선례가 남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마리는 “그 작품을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며 “부적절한 데다 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 방향과도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는 전시 직전에야 그 작품을 봤다”고 주장했는데요. 큐레이터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관장이 전시에 나올 작품을 모를 수 없다”며 전시 한 달 전에 마리가 직접 사인한 작품 대여 서류를 증거로 내놨습니다.
결국 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 개막을 요구했기 때문에 전시를 열기로 했다”는 마리의 말과 함께 예정보다 약 일주일 늦은 3월21일 열리게 됩니다. 개막일에는 평소보다 약 48% 많은 관객이 모였다고 합니다.
개막 결정과 함께 마리는 자진사퇴 서류를 제출했는데요. 당시 전시를 준비한 두 큐레이터도 이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마리가 사표를 제출한 이사진 앞에서 “큐레이터들에 대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술 전문매체인 아트넷뉴스는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마리가 큐레이터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마리는 지난 8월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장 재공모에서 한국인 2명과 함께 최종 후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가 선정되면 국내 국·공립 문화기관 중 첫 외국인 관장이 됩니다. 한국 미술계를 주도하는 유일한 국립 미술관의 수장을 어떤 사람이 맡게 될지 주목됩니다. (끝)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