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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장 유력한 '바르토메우 마리'가 전 직장에서 사표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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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결 문화스포츠부 기자) 지난 1년간 공석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에 바르토메우 마리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관장이 물망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리는 2008년부터 지난 9월까지 MACBA의 관장을 맡았습니다. 지난 3월 스스로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미술관이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걸려 9월에야 자리를 떠났는데요. 사임을 하게 된 이유가 독특합니다.

마리는 지난 3월 MACBA에서 열린 ‘왕조와 야수’ 전시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전시에 출품된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이네스 두작의 조각 작품 때문입니다. 후안 카를로스 전 스페인 국왕과 볼리비아의 노동운동가 도미틸라 바리오스 데 충가라가 개와 함께 성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인데요. 인물 조각 밑에 나치 친위대(SS)의 헬멧이 여럿 놓여있기까지 했습니다. 마리는 작가와 큐레이터에게 “전시에서 이 작품을 빼달라”고 요구했고, 그들이 이를 거절하자 전시를 개막이 예정됐던 당일에 아예 취소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일부는 후안 카를로스의 아내인 소피아 전 왕비가 MACBA의 재정위원회 명예위원장으로 있다는 점을 들며 외압에 굴복한 결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큐레이터 등 미술관 근무자들도 크게 반발했습니다.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들은 “권력의 여러 속성 중 일부를 드러내 묘사하는 것은 예술의 기능 중 하나”라며 “몇 달 전부터 전시에 어떤 작품이 나올지 보고를 받아서 모두 알고 있었던 미술관 측이 갑자기 전시를 취소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른 근무자도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사태”라며 “작품 검열로 전시를 취소한 선례가 남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마리는 “그 작품을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다”며 “부적절한 데다 미술관이 추구하는 전시 방향과도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는 전시 직전에야 그 작품을 봤다”고 주장했는데요. 큐레이터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관장이 전시에 나올 작품을 모를 수 없다”며 전시 한 달 전에 마리가 직접 사인한 작품 대여 서류를 증거로 내놨습니다.

결국 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 개막을 요구했기 때문에 전시를 열기로 했다”는 마리의 말과 함께 예정보다 약 일주일 늦은 3월21일 열리게 됩니다. 개막일에는 평소보다 약 48% 많은 관객이 모였다고 합니다.

개막 결정과 함께 마리는 자진사퇴 서류를 제출했는데요. 당시 전시를 준비한 두 큐레이터도 이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마리가 사표를 제출한 이사진 앞에서 “큐레이터들에 대한 신뢰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술 전문매체인 아트넷뉴스는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마리가 큐레이터들에게 복수를 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마리는 지난 8월 진행된 국립현대미술관장 재공모에서 한국인 2명과 함께 최종 후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가 선정되면 국내 국·공립 문화기관 중 첫 외국인 관장이 됩니다. 한국 미술계를 주도하는 유일한 국립 미술관의 수장을 어떤 사람이 맡게 될지 주목됩니다. (끝)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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