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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강제로 문자를 빼앗긴 칭기즈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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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소련 영향권 아래에서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몽골의 정치·사회·문화 자치권은 크게 위축됐다. 스탈린 집권기엔 각종 공포정치가 몽골 전역을 휩쓸었다.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의 병폐’라는 명분으로 벌어진 종교 탄압이었다. 당시 몽골의 사회주의 정치인이자 소련의 꼭두각시 역을 했던 초이발산은 2만 명이 넘는 불교 승려를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700개가 넘는 불교 사원과 수도원이 조직적으로 파괴됐다. 금과 동으로 만들어졌던 불상들은 녹여졌다. 몽골지역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전시산업 체제가 이식됐다.

이와 함께 수많은 몽골사원에 보관됐던 티베트어와 몽골어 고문헌 대부분이 사라졌다. 스탈린은 1943년 ‘뒤늦게’ 각종 사원을 무분별하게 파괴했다는 이유로 초이발산을 꾸짖고 ‘원상복구’를 명령했다. 그 결과, 1944년 울란바토르에 간단사원(Gandantegchinlin)이 다시 문을 열었고, 이는 1990년까지 몽골에서 운영되는 유일한 공식사원으로 남았다. 그나마도 아주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몽골의 문자도 소련의 영향을 받아 파란만장한 변화를 겪었다. 불교사원 폐쇄와 함께 소위 ‘문자개혁’으로 몽골인 들은 전통과 완전히 단절됐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옛 문헌들을 읽을 길이 막혀버렸다. 기존 위구르-몽골문자 시스템 대신에 1932년 서구식 알파벳(라틴문자)이 잠시 도입됐다. 하지만 이 마저도 1941년 소련의 영향으로 키릴문자가 몽골의 공식 문자로 도입되면서 운명이 다했다. 키릴문자가 공식문자로 도입돼 교육됐고, 모든 문자생활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똑같은 문자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과거 몽골제국 이후 성립됐던 몽골족의 전통 문자체계인 위구르-몽골 문자는 점차 잊혔고, 전통문자를 읽을 수 있는 몽골인은 극소수에 불과하게 됐다.

한글날을 맞아 이웃 몽골의 참혹한 문자 변천사를 살펴봤다. 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잃었던 것처럼, 소련 지배하 몽골은 고유 문자를 상실하고 그들의 옛 전통과 강제로 단절됐다. 러시아의 키릴문자가 몽골에 강제 이식되고 뿌리내려 이제는 과거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자신의 말과 글을 유지한다는 것도 거저 얻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끝) / kimdw@hankyung.com

***참고한 책***

Karenina Kollmar-Paulenz, 『Die Mongolen-Von Dschingis Khan bis heute』, C.H.Beck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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