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 매출액 50조원은 거뜬히 넘기던 삼성전자가 갑자기 천만원대 매출을 냈다는 사실이요. 이 숫자만 본 투자자들은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백만분의 1 수준으로 매출, 영업이익이 뚝 떨어져 보이니까요.
다행이도 실제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매출액은 51조원, 영업이익은 7조3000억원이라고 합니다. 영업이익 6조5000억~6조6000억원 수준으로 봤던 시장 예상치를 훌쩍 넘겼습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가전 사업의 실적이 두루 개선된데다 원화 환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까지 얻으며 견조한 실적을 냈다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전자공시시스템에는 왜 저런 숫자가 뜬 걸까요? 알고보니 실수로 잘못 기입한 게 아니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공시에 표기하는 단위 숫자는 변경할 수 없도록 방침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랍니다.
대신 삼성전자에선 공시 하단에 ‘4. 기타 투자판단과 관련한 중요사항’으로 ‘상기 금액은 조원 단위이며,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된 연결기준의 잠정 영업실적입니다’라고 명시를 해놨다고 합니다. 공시 상단만 보면 730만원으로 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보면 7조3000억원이라고 표기해놓기는 한 겁니다.
그렇다면 공시표 기본 단위에 맞춰 73000이라고 표기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건 이 실적이 삼성전자의 잠정 가이던스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실제 최종 집계가 나오기 전, 투자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미리 ‘이번 실적은 이 정도 수준입니다’라는 정보를 주는 차원에서 잠정 실적을 매번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천억원 단위까지만 공개되기 때문에 뒷자리가 모두 ‘0’으로 표시되면 오차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는 쓰지 않고 별도 표기를 했다는 게 삼성전자 측의 설명입니다. 확정 실적을 발표할 때는 아예 단위를 쓰지 않고 세부 숫자를 모두 공개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크게 이상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표기는 이번만 그런 게 아니거든요. 삼성전자의 잠정 가이던스가 나올때면 항상 이렇게 표기돼 왔습니다. 암묵적으로 당연히 ‘조 단위일 거다’라는 동의가 있어서 크게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초보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공시 표 상단 단위를 토대로 계산해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730만원’으로 쓴 일부 매체도 있는 걸 보면 충분히 헷갈릴만도 합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냥 넘기기엔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굳이 혼란을 줄 수 있는 ‘백만원 단위’를 그대로 둬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끝)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