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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찾아 지방으로'…삶 바꾸는 '제2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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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도시·농어촌이 복지 만족도 더 높아, 전원생활 동경 담은 ‘삼시세끼’ 인기

(이현주 한경비즈니스 기자) 증권사에서 국제재무분석사(CFA)로 일했던 금승원(48) 씨는 5년 전 큰 결심을 했다. 대기업 간부였던 남편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주거지를 옮긴 것. 직장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주말농장을 통해 농촌 생활의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억대 연봉을 과감히 내려놓고 대도시에서의 삶에 안녕을 고했다.

충남 공주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금 씨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6차산업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블루베리를 판매하고 잼 등으로 가공하면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경력을 살려 경제 교실도 열었다. 금 씨는 여전히 억대 연봉의 소유자다. 그는 “값진 노동의 결실이 열매로 연결되는 땀과 노력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을 떠나 전국 각지로 터전을 옮기는 ‘국내 이민’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지역을 바꾸는 차원이 아닌 직업과 인적 네트워크, 삶의 방식까지 180도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민에 비유된다. 국내 이민은 감소 추세에 접어든 해외 이민과도 비교된다. 굳이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타국으로 떠나지 않아도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 떠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주거비·교육비로 몸살 앓는 서울
통계청의 ‘연간 국내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빠져나간 인구(순유출)는 8만9000명으로, 전국 순유출률(-0.9%) 1위를 기록했다. 학업 특수성이 있는 10~2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순유출이 일어났다. 199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된 탈서울 흐름은 2010년 처음 10만 명을 돌파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난 4년간 연평균 5만 명씩 감소해 이 추세라면 내년 말 서울 등록 인구 1000만 선이 무너질 기세다.

반면 순유입은 세종(24.2%)·제주(1.9%)·충남(0.5%) 등 9개 시도에서 진행됐다. 정부 청사 이동으로 비자발적 이주가 이뤄진 세종시를 제외하고 특히 제주도의 인기가 놀랍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제주는 올 들어 매월 1000명 이상의 인구가 몰리고 있다. ‘신제주인’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이 밖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다. 연령별로 보면 세대별 지역 선호도를 알 수 있다. 전 연령층 순유입률 1위인 세종시 이외에 30대는 제주(4.3%)·울산(1.3%)·경기(1.1%)를, 40~50대는 제주(2.0%)·전남(0.8%)·경북(0.8%)을, 60대 이상은 제주(0.8%)·충남(0.6%)·경기(0.5%)를 택했다. 20대는 서울(1.8%)·경기(1.0%)·제주(0.6%)순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왜 서울을 떠나 지방에 안착할까. 통계청이 조사한 전입·전출 사유를 보면 서울을 등진 8만여 명의 응답자중 절반 이상이 주된 사유를 주택(50.7%)이라고 밝혔다. 전세난 등 너무 비싼 집값 문제로 서울이 몸살을 앓고 있다. 손 안에 쥐는 월급은 잘 늘지 않는 반면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은 갈수록 가중돼 거주 선택에 따른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복지 만족도 조사를 보면 보다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2014년 지역복지정책평가 결과 및 성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지자체 복지정책 평가에서 중소도시>농어촌>대도시 순으로 조사됐다. 전국 230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중소도시의 기초 지자체는 100점 만점 중 평균 75.53점을 받았고 농어촌은 73.06점을 기록했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대도시 기초 지자체의 평균인 71.85점보다 높았다.

복지 측면에서 대도시를 떠나도 충분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를 진행한 김승권 전라남도복지재단 대표는 “종합적으로 대도시보다 중소도시나 농어촌에서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으로, 인구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적정한 인구수와 문화 및 복지 인프라를 갖추면 주민들의 복지 체감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세종시로, 다시 전남 무안으로 이주한 그는 “대도시살이와 비교할 때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경제적 조건’, 이웃과의 나눔과 쾌적한 환경에 기반한 ‘정서적 만족’ 측면에서 지방에서의 삶이 더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를 떠나도 삶의 질 높다
팍팍한 서울을 고집할 유인도 사라지고 있다. 붐비는 인파와 피로감 속에서도 과거 대도시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최근 사람들의 선호가 바뀌고 있는 데는 대도시에 비해 지방에서 누릴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문화적 유인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홍석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적 비용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건강·안전·환경문제 등이 불거지며 대도시의 장점이 많이 사라졌다”며 “반면 정보의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귀농·귀촌 및 지방 이주에 따른 간접비용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어촌에서도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도시와 지방 간 격차가 해소되고 거기에 농촌 생활이 주는 여유로움이 더해져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중 매체의 한 트렌드는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연예인들이 강원도 정선(산골)과 전남 만재도(섬)에 들어가 하루 세 끼를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다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주는 매력에 남녀노소가 공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자연 속에서의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트렌드에 힘입어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향하는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다.

편리해진 교통도 국내 이민을 가속화시킨다. 지난 4월 KTX호남선 개통으로 2시간 이내에 이동이 용이해졌다. 이 밖에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 진행해 온 혁신도시 및 기업 이전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실제로 터전을 옮긴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지방행을 택한다. 직장의 이전으로 이주한 사례, 보다 여유로운 삶을 찾아 떠난 사례, 교육 목적으로 터전을 옮긴 사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떠난 사례 등이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뿐만 아니라 귀농·귀촌 인구가 젊은 세대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귀농 인구는 50대(39.6%) 다음으로 40대(22.4%)가 많았다. 귀촌 가구도 50대(29.6%)에 이어 40대(22.0%)·30대(19.6%)순이었다. 귀농과 귀촌을 합산한 연령별 비율은 40대 이하 젊은 층의 증가율(43.0%)이 평균치(37.5%)보다 높게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기 은퇴’를 택하는 3040세대들은 여유 있는 삶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이유에서 시골로 향하기도 한다. 네 명의 자녀 교육을 위해 3년 전 강원도 화천으로 들어간 조경희(43) 씨는 대안 교육 차원에서 일부러 두메산골을 택했다. 그는 “대도시에 살 때는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학원 없이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저절로 공부를 하더라”며 “교육 지원이 많아 무료로 해외 연수도 보내고 기숙사 생활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 아직 베이비부머들의 이민 러시가 한창이다. 대기업 임원에서 은퇴 이후 커피농장 및 카페 사장으로 변신한 김영한(67) 사장은 “60대에 돈을 쓰기만 하는 사람과 버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한다"며 "제주에서 새로운 출발을 했고 지금도 희망을 품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국내 이민을 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 있다. 모두 행복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다. 소유와 축적의 삶에서 자족과 연대의 가치를 선택하기 위한 작은 도시와 농어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려놓음’ 이후에는 또 다른 의미의 더 큰 소득과 기쁨이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대도시를 떠나야 행복하다’고 말한다. (끝)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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