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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재패 전자업체 수장들의 술실력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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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선 산업부 기자) 지금이야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어떤 품목에서 세계 3등만 한다고 해도 대중의 야유가 쏟아지지만, 사실 한국 전자업계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비교적 간단하다는 세탁기도 못 만들어서, GE제품 몰래 사다가 수원에서 삼성전자 직원들이 뜯어보며 밤을 새던게 불과 30년 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백색가전, TV 등 전 분야에서 한국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죠. 지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사장들은 이같은 ‘기적’을 일궈낸 주인공들입니다.

그만큼 전자업체 사장들은 독합니다. 업무적으로도 그렇지만 이들의 ‘독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분야가 ‘술’입니다. 전자업계 사장들 중에선 술로도 ‘세계 재패’급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삼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삼성전자 부문장 중에서는 윤부근 CE(가전)부문장(사장)이 유명합니다. 해외 전자쇼를 가면 ‘새벽 두시 도착, 임원 소집, 술을 곁들인 회의, 4시 수면, 6시 기상’식의 무시무시한 스케줄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폭탄주도 많이 만듭니다. 'LED주'가 대표적인데요. 5년전 삼성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두께 29.9mm LED TV를 기념하기 위해 윤 사장이 개발한 폭탄주입니다. 맥주 29mm에 소주 0.9mm를 따라 마시는 겁니다.

삼성전자 내에선 김기호 프린팅솔루션사업부장(부사장)이 윤 사장과 대작할만한 수준이라는 게 삼성 직원들의 평가입니다. 김현석 VD(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도 일반인들이 볼 때는 ‘두주불사’ 급이지만, 윤 사장과 같이 마시는 자리에서는 먼저 지친다고 합니다.

모든 사장들이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닙니다.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장(사장)은 기분좋게 맥주를 즐기지만 곧 얼굴이 빨개진다는 전언입니다. 김기남 반도체 총괄 및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술자리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반도체 공정’얘기를 자주해 직원들이 공포에 떤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립니다. 전영현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술을 거의 못한다고 합니다. 조수인 의료기기사업부장(사장)도 ‘즐기는 정도’라고 합니다.

LG전자 쪽으로 가볼까요? ‘짱’은 최상규 한국영업본부장(사장)이라고 직원들이 입을 모읍니다. 30년 넘게 유통, 영업 일선에서 뛰어온 최 사장은 거래선 응대에 단련이 돼 있다고 합니다. “요즘 술은 도수가 낮아 시시해서 못 먹겠다”는 얘기를 만취한 좌중 앞에서 했다는 ‘전설’도 들립니다.

조성진 H&A사업본부장(사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창원폭탄주’라는 본인만의 폭탄주 작법이 있다는데요. 한손엔 맥주, 한손엔 소주를 들고 맥주잔에 가득 따르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대신 항상 인원수보다 1잔을 더 만들고, 가장 늦게 마시는 사람은 벌주로 한잔을 더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조 사장이랑 술 먹으면 코스요리에서 세번째 요리부터는 기억이 안난다”고 직원들은 하소연하지만, 그래도 최 사장 앞에서는 ‘한수 접고’ 간다고 합니다. 노환용 B2B사업부문 사장도 내공이 만만치 않다고 하고요.

이쪽에서도 ‘약자그룹’이 있습니다. 조준호 MC사업본부장(사장)은 소주 딱 두잔만 마시면 구본무 회장 앞에서도 잠이 든다고 합니다. 권봉석 HE사업본부장(부사장)도 한두잔에 얼굴이 달아오른다고 합니다.

주량은 다르지만, 전자업계 사장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술이 강하든 약하든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날 얼마나 마셨든 몇시에 끝났든 새벽 6시 정도면 어김없이 메일이 오고가고 업무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직원들이 깨질 것 같은 머리와 찢어지는 속을 붙잡고 침대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미 업무 지시가 내려온다는 거죠. 그만큼 ‘독하다’는 얘기입니다.

지금이야 두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 어렵겠지만, 언젠가 이들이 은퇴한 뒤에는 넓직한 술집에서 한데 모여 ‘강호의 최강자’를 겨뤄봤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했지만, 그들만큼 서로의 애환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까요. (끝)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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