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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 자주 바꾸면 도로 더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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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정체

(박근태 IT과학부 기자) 3000만명이 고향을 찾는 올 추석도 예외 없이 귀성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나흘 연휴 동안 고속도로가 곳곳에서 극심한 몸살을 앓을 전망입니다. 사고도, 공사도 없는데 이처럼 도로가 막히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소위 ‘유령 체증(phantom jam)’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시가 팽창하면서 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수학적 모델링 기법을 통해 그 원인을 연구해 왔습니다.

차량 흐름을 유사하게 재현하는 수학적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어 정체를 유발하는 변수가 무엇인지 찾아내려 한 것입니다.차량 흐름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분석합니다.전체 차량 흐름을 물과 같은 액체나 기체 흐름으로 보고 유체역학 방법으로 분석하는 거시적인 모델이 하나고, 차 한 대의 움직임을 통해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 잦은 차선 변경, 급브레이크가 교통지옥 만든다

가장 잘 알려진 연구가 운전자의 ‘반응 시간 지체’입니다. 영국의 엑서터대와 브리스톨대, 헝가리 부다페스트대 공동 연구팀은 2007년 영국 왕립학술원 학회보에 발표한 논문에서 ‘반응 시간 지체’를 ‘유령 체증’의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이를테면 도로에서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상황에서 맨 앞에 달리던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면 뒤에 따라오던 차들은 줄줄이 속도를 줄이게 됩니다. 뒤차 운전자가 앞차 움직임을 보고 반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데, 앞차가 속도를 줄이면 뒤차 운전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더 속도를 줄이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뒤차들이 차례로 더 큰 폭으로 속도를 줄이게 되고 이런 상황이 수㎞에 걸쳐 일어나면, 뒤쪽으로 갈수록 속도가 줄게 되고 결국 무리의 맨 뒤쪽 차량은 속도를 거의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급정차를 하는 경우가 누적되면 정체는 더 심각해집니다.

평범한 운전자의 운전 습관이 정체를 불러온 경우도 있습니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은 2008년 길이 250m의 원형 도로에서 22대의 차로 주행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차를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나서 시속 30㎞로 일정한 속도로 달리게 하고 카메라로 위에서 내려다봤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일정하게 달리던 차량 가운데 일부가 불과 수분 뒤에 정체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운전자마다 속도에 미세한 차이가 났고 이런 차이가 누적되면서 차량 간격을 좁힌 것입니다. 결국 유령정체는 교통량이 많을수록 불가피한 것입니다.

○ 차선 바꾸지 않으면 ‘나만 손해’ 생각 버려야

일단 정체가 발생하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수학과 연구진은 일단 정체가 발생하면 빠져나가기 어렵고 저절로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게다가 악순환까지 일어납니다.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은 운전자들이 1㎞ 안에 차량이 20대 이상 달리면 옆 차선이 덜 막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자신이 차로를 바꿔 다른 차를 앞서 간 것보다 옆 차로에서 자기를 앞질러 간 차들이 더 많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옆 차선의 평균 속력이 같더라도 차선을 바꾸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꽉 막힌 도로에서는 옆 차선을 달리는 차량을 보는 시간이 늘면서 자신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남보다 밑지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손실 혐오’ 심리까지 더해지는 것입니다. 도로가 정체된 상황에서도 차선을 바꾸는 차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너먼 교수가 만든 이 말은 이득과 손실이 동일하더라도 사람들은 손실에 대해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차가 자신의 차를 추월할 때는 상대편의 차 속도가 더 빠르고 시야의 앞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느리고 뒤처진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다 보면 결국 교통 체증은 더 심각해지고 도로는 주차장으로 바뀐다는 주장입니다.

○ 운전 중 전화통화 말아야

스마트폰 사용이 늘어난 요즘 들어서는 휴대폰 통화가 교통체증을 야기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유타대 연구팀은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는 운전자의 운전 도가 운전에 집중하는 운전자보다 느리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운전자를 두 부류로 나누고 한편은 핸즈프리를 이용해 휴대폰 통화를 하게 하고 다른 편은 운전만 하도록 했습니다. 약 14㎞ 구간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운전자는 운전만 한 운전자보다 차선 변경을 20% 적게 했지만 차선 변경을 하는 데 걸린 시간이 25~50초 더 걸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동차 평균 속도도 시속 3.2㎞ 늘였고 전체 운행 시간도 15~19초가 더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차량 정체 원인을 푸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두철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연구팀은 정체된 도로에서도 물이 졸졸 흐르듯 꾸준하게 달릴 수 있는 ‘동기 흐름’을 밝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운전자들이 정체를 피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너무 바짝 붙거나 무리하게 끼어드는 운전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잦은 차선 변경이나 급브레이크,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과 같은 사소한 행위들이 차량 정체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올해 추석 귀성길도 마음먹기에 따라 교통지옥이 될 수도 있고, 느긋하고 즐거운 귀성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끝)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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