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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볼 땐 몰랐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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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욱 선임기자) “할머니, 앞으로 빈 도시락을 현관 쪽에 놓아주실래요?”

”내가 다리가 불편해서 멀리 움직이기 힘들어. 미안해 총각.”

울산남구 지역자활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중인 이창훈 씨의 업무는 ‘사랑의 도시락 배달’입니다. 이 씨는 저소득층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임대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매일 60여가구에 오늘 만든 따뜻한 점심 도시락을 갖다주고 빈 도시락을 받아옵니다. 그는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자신의 닫혔던 마음이 열리게된 과정을 꾸밈없이 그려 병무청이 주관하는 올해의 사회복무요원 수기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당초 이 씨에게 임대아파트는 어떤 주거공간보다도 불결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어깨에 맨 채 배달하던 도시락 주머니는 종종 넘쳐흐른 국물에 푹 젖어있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꺼렸던 것은 노인들과의 마주침이었습니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낯선 공간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찝찝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 씨에게 변화의 전기가 된 것은 빈 도시락을 밖의 문고리에 내걸거나 가까운 현관에 두지 않았던 한 할머니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거실 안쪽까지 들어가서 도시락을 챙기려는 순간 앉아있던 할머니의 왼쪽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죠. 멀리서 누워있던 모습을 볼 때에는 몰랐던 진실이었습니다. 이 씨는 “노인 분들보다는 젊은 내가 훨씬 쉽게 움직일수 있는데 배달을 얼른 끝내서 이 아파트 단지에서 빨리 떠나기위해 할머니께 부탁을 드린 나는 정말로 철없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다”고 자책했습니다.

이날 이후 이 씨는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뒤 그전에는 볼수 없었고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특정한 사람과 막연한 오해가 있거나 불편함을 느낄 경우 그저 그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고요. 이 씨는 “지금도 이 일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며 “도시락을 갖다드릴 때마다 그 보답으로 미소를 지어주시고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언제라도 힘이 나면서 걸음이 빨라진다”고 밝혔습니다.

우수상은 여수시청에서 복무하면서 시 지역의 모기를 제거 중인 김진혁 씨가 받았습니다. 김 씨는 여름에는 방역차를 타고 살충제를 물과 섞어 발포하고 겨울에는 정화조에 숨어있는 유충을 죽이기위해 약을 집어넣고 있다고 합니다. 이 씨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남에게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다”며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매년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종이 바로 모기라는 것을 알고 가슴이 뛰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가장 외롭지만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보충역 병역처분(신체등위 4급)을 받은 병역의무자들은 군대가 아닌 사회복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소방서, 교육지원청, 도시철도공사, 도서관 등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24개월 근무합니다. 박창명 병무청장은 “간혹 일부 사회복무요원들이 부적절한 행동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다”며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성실히 복무하도록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이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회복무요원들이 스스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어렵고 소외 받은 국민들에게 ‘젊은 산타클로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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