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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의 '유커에 다걸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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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증권부 기자) 지난 달 친구와 마카오의 한 고급 호텔에 묵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카오는 국내총생산(GDP) 절반이 카지노에서 나오는 도박의 중심지입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경기 침체와 반부패(anti graft) 운동으로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카지노 고객의 절반이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이기 때문이죠.

올 2분기 마카오의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26.4%를 나타냈습니다. 나라 전체가 얼마나 큰 충격에 빠져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1층 카지노를 찾았습니다.

꽁(空)! 꽁(空)! 꽁(空)!(10, J, Q K 카드를 뜻하는 표현) 입구에서부터 중국어 외침이 시끄럽습니다.

예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유커는 건재했습니다. 밤 늦은 시각임에도 빈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게임인 ‘바카라(baccarat)’의 경우 최소 베팅금액이 1000홍콩달러(우리 돈 15만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표정변화 없이 1만홍콩달러씩 걸며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마카오 출장이 잦은 친구 말로는 수년 전보다는 줄어든 것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놀라운 광경입니다.

섬뜩한 생각이 든 것은 이튿날이었습니다. 아침일찍 시내를 산책할 때였습니다. 눈앞에 거대한 건설 현장이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뒤덮은 초대형 크레인과 회색 건축물. 마카오 전체가 유커에 ‘올인’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몇 개월 이상 공사가 중단된듯한 현장도 보입니다. 문득 2007년 호황기 한국 아파트시장이 떠올랐습니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수도권에 사상 최대 물량이 공급됐던 때죠. 하지만 호황은 끝났고 완공시점인 2년 뒤 우리 경제는 미분양·미입주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마카오의 카지노 매출은 2002년 30억달러에서 2013년 450억달러로 폭증했습니다.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카지노와 호텔 공급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은 맞았을 겁니다. 하지만 작년 카지노 매출은 440억달러로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올해는 전년비 무려 40%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커의 큼직한 씀씀이는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더 많은 유커를 맞기 위해 새로 허용한 시내 면세점 사업자들은 수천억원씩 채권을 발행하며 시설 투자에 한창입니다. 영종도를 비롯한 국내 곳곳에서 카지노를 포함하는 대규모 복합리조트 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유커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노량진 수산시장도 1조원 넘는 사업비를 투자해 복합리조트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 유커의 증가에 ‘베팅’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구도 중국 경제의 앞날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둔화 위험이 커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미래에 가장 예민한 금융시장조차 중국 경제의 급반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믿었던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지수 폭락으로 지난 달에만 수백억원씩 파생상품 관련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손실은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친구 말로는 도박에서 연달아 패를 맞추는 것을 ‘줄을 탄다’고 하더군요. 영어로는 ‘streak of good luck(행운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중국 주변국가들의 ‘유커 베팅’은 어쩌면 운 좋게 줄을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팅을 조절해 그동안의 행운을 모두 날려버리는 실수를 경계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끝)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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