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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번 칠레의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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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샌프란시스코가 사라졌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추억, 그리고 외곽의 주택 약간뿐이다. 공업구역, 유흥가와 주택가, 공장과 창고, 대형 상점과 신문사 사옥들, 호텔과 대저택들도 모두 없어졌다. 샌프란시스코라 불리는 도시의 외곽 주택가가 여기저기 조금씩 남아있을 뿐이다.”(잭 런던, 콜리어스 위클리 1906년 5월 5일자)

『야성의 절규(The Call of the wild)』와 『강철군화(The Iron Heel)』 등의 소설을 지은 작가 잭 런던은 20세기 초 미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에서 잠시 기자생활을 했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의 종군기자로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1906년 4월 17일 발생한 샌프란시스코 지진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기록을 ‘콜리어스 위클리’라는 잡지에 남기고 있기도 하다. 이 기사는 뛰어난 소설가가 남긴 당대의 대재앙의 역사기록이다. 곳곳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기자들은 결코 쓸 수 없는 ‘문학적’표현들이 넘쳐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19세기말 영국의 문호 루디야드 키플링이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한 뒤 “샌프란시스코는 미치광이 도시다. 주민의 대다수가 정신병자고 여자들은 대단히 아름답다”라고 평한 곳이다. 미국 제일의 낭만과 흥분의 도시가 한차례 지진으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상황을 후배 작가는 생동감 있게 실상을 후대에 전한다.

당시 인구 30만의 대도시가 순식간에 주민 80% 이상이 집을 잃었다. 런던의 묘사를 인용하면 “지진의 충격 한 시간 후 이미 샌프란시스코가 뿜는 연기는 100마일 밖에서도 보이는 무시무시한 기둥이 됐다. 그로부터 사흘밤낮 동안 이 연기의 탑은 하늘을 휘저으며 태양을 붉게 만들고 하늘을 검게 만들었다. 그리고 땅위를 연기로 채워버렸다”고 한다.

회상 형식으로 돼 있는 지진발생 당시의 기록도 매우 구체적이다. “화요일 아침 5시15분에 지진이 닥쳤다. 1분후에는 불길이 여기저기서 치솟고 있었다. 불길을 가로막을 방법이 없었다. 20세기 도시의 모든 교묘한 장치가 지진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도로는 구겨져서 언덕과 골짜기가 되었고 무너진 벽의 잔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철로는 휘어서 수직 수평으로 마구 엇갈려 있었다. 전화와 전신은 마비됐고 대형 수도관은 터져있었다. 30초간 지각이 꿈틀댄 결과 인간의 모든 영리한 계획과 대책이 쓸모없게 됐다”는 것이 런던이 전하는 지진발생 당시의 상황이다.

또 지진 직후 샌프란시스코는 무법지대로 변했다. 런던은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장이었던 E. E. 슈미츠의 포고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지옥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즉 “연방군과 정규경찰과 특수경찰 요원들에게 약탈을 비롯한 일체의 범행을 자행중인 사람을 발견할 경우 누구든 모든 즉결처분할 권한을 부여한다”던지 “질서가 회복될 때까지 모든 시민은 일몰 후 일출 전까지 집밖에 나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지진 발생 후 주민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은 대화재였다. “나는 만(灣)의 바다위에서 이 거대한 화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강한 바람이 죽어가는 도시로 모여들고 있었다. 가열된 공기의 상승이 거대한 흡입력을 발휘한 것이다. 밤이고 낮이고 날씨는 잠잠했지만 불길 가까이에서는 태풍처럼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엄청난 흡인력이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화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그나마 남아있는 건물들을 파괴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화요일 밤에는 시내 제일 중심가의 파괴가 진행됐다. 다이너마이트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자랑하던 건물들을 인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다. 그러나 불길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소방대원들이 여러 차례 방화선을 구축했지만 불길은 그 옆을 돌거나 뒤쪽으로부터 쳐들어왔다”는게 런던이 전하는 눈물을 머금은 안타까운 실상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고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무조건 항복이었다.물이 없었다. 다이너마이트도 없었다”는 것으로 귀결됐다.

한편에선 참혹한 피해현장에서 허탈해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가감 없이 전달된다. 파괴된 부유층 거주지에서 만난 사람이 “어제 아침까지 내 재산은 60만 달러였지만 오늘 아침에 남은 것은 이 집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15분 후면(화재확산 방어를 위해)없어질 것”이라고 전하는 식이다.

결국 런던은 “해는 보이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파괴의 둘째 날 새벽은 이렇게 밝아왔다”는 문장으로 르포기사를 마무리한다.

칠레에서 진도 8.3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대규모 쓰나미도 예고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지진대비 상황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지진이 발생하지 않아 사실상 지진에 무방비 상태인 한국의 수도권에 대형 지진이 발생한다면 결과는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수준이 될 것이다. 20세기 초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던 샌프란시스코가 대지진으로 단 한방에 가루가 돼 버렸던 역사의 기록을 살펴보면서, 미래 한국에선 이와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준비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끝)

***참고한 책***

존 캐리 엮음, 『역사의 원전- 역사의 목격자들이 직접 쓴 2500년 현장의 기록들』, 김기협 옮김, 바다출판사 2006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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