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미 국방부도 실리콘밸리에선 '을'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미래 전쟁 기술 개발 등 의존도 커져…거액 쏟아부으며 구애 손길

(이성규 블로터닷넷 매거진팀장) 미국 국방부가 실리콘밸리를 향해 구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밑질 것도 없는 미국 국방부가 굳이 실리콘밸리 혁신가들에게 갑작스레 환심의 손짓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최근 미 국방부의 행보를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은 올해 두 차례나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안보를 책임지는 미 연방 최고위 인사가 직접 실리콘밸리를 방문하는 풍경은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이다. 지난 20년간 국방부 핵심 인사가 실리콘밸리에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동안 국방부는 실리콘밸리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았을 뿐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데엔 인색했다.

카터 장관의 실리콘밸리 방문은 명분상으로 관계 복원을 위한 제스처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 문건 폭로를 계기로 미 국방부와 실리콘밸리는 신뢰에 깊은 금이 갔다. 미국의 안보를 이유로 갖은 개인 정보까지 요구하며 정보기술(IT) 거인들의 분노를 샀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한통속으로 묶인 실리콘밸리 IT 거인들은 전 세계 사용자들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심지어 송사에 휘말리며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국방부는 ‘을’의 처지가 됐다. 미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실리콘밸리의 앞선 기술력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해졌다. 중국의 사이버 테러, 스턱스넷, 드론 침투 등 미 국방부는 실리콘밸리의 탁월한 기술력에 손을 내밀어야 할 상황이다. 그들의 도움 없이 미래 전쟁을 대비하기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미래의 전쟁 지휘소 만드는 IT 거인들
미 국방부가 실리콘밸리에 투자하는 흐름을 보면 미국이 구상하는 미래 전쟁의 대강을 엿볼 수 있다. 이미 국방부는 ‘플렉서블 하이브리드 전자기기(Flexible Hybrid Electronics)’를 개발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기업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표했다. 플렉서블 하이브리드 전자기기는 쉽게 휘고 구부러지는 칩이나 센서를 제작하는 기술이다. 전장에서도 시장에서도 장기 성장 동력으로 분류되는 테크놀로지다.

이 기술이 군용 장비 전반으로 확장되면 군복과 군장, 군용 의료기기가 전혀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센서를 통해 부상 장병의 신체 신호를 파악한다거나 화학물질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군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스마트 붕대로 장병의 부상 정도를 파악해 의료 항공부대의 도움을 호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관제센터에서 전장에 있는 장병들의 메디컬 신호로 현재 긴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작전 수행에 반영한다.

개인 장병들의 전장 내 피아 식별 기능도 확장된다. 시각적으로 파악되지 않던 적의 동태를 작은 센서 하나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거운 장비를 동원할 필요가 없어 기동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효율적인 전쟁 임무 수행이 가능해진다. 이름 붙이자면 무기의 사물인터넷(IoT)화인 셈이다. 이러한 기술 개발에 이미 애플과 휴렛팩커드(HP) 등이 동참하고 있다.

무기의 디지털화는 미국 국방부의 지상 과제다. 이른바 사이버전·전자전은 미국이 당면한 중대한 위협 요소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부작용이나 경고음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무기의 디지털화는 지휘 체계가 데이터와 가상현실에 의해 조종된다는 의미다. 현대전은 게임 룸에서 드론을 조종하며 살상과 폭격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만큼 지상전에선 전장에 파견된 병사가 데이터화된 캐릭터로 독해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가상현실 그리고 증강현실 기술도 밀접하게 결합하고 있다. 전쟁 지휘소가 곧 가상 게임장으로 바뀌는 날도 머지않았다. 그 게임장을 실리콘밸리의 IT 거인들이 만들어 가고 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