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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이 '甲질' 논란 자주 휘말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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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예진 정치부 기자) 주파나마 대사 부인이 해외공관으로 파견된 인턴을 가사 도우미처럼 부린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주파나마 한국대사관에 현장실습원으로 6개월 간 파견된 강모(여·24)씨가 업무와 관련 없는 일에 동원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외교부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외교부는 청년들에게 공공외교 현장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매년 공공외교현장실습원 50여명을 해외공관으로 파견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주요 업무는 한국을 홍보하는 행사나 정부의 정책 홍보 등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강씨는 지난달 18일 오후 4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현지 대사 부인의 지시로 대사관저를 꾸미는 꽃꽂이와 주방일을 했습니다. 다음날 외교부 장관 만찬이 예정돼있었기 때문인데요. 대사 부인은 준비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관저에서 자고 갈 것을 강요했고 강씨는 다음 날인 19일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음식 재료 손질과 주방 보조 등 부엌일을 했다고 합니다.

강씨는 대사 부인이 반말과 신경질적인 어투로 지시했고 핀잔을 주거나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고 토로했습니다.

대사 부인은 강씨에게 사전에 현장 통역과 꽃꽂이 업무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고 강씨의 동의 아래 이뤄진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미리 협의되지 않았던 주방일을 시킨 것은 잘못이었지만 강씨가 한 일은 과일깎기나 미리 준비한 음식 데우기 정도의 주방 보조 업무였다는 겁니다. 또 현지 여건 상 밤에 여자 혼자 귀가하기에 위험하기 때문에 관저에서 자고 가라고 권유한 것이고 욕설이나 인격에 모독을 주는 언행은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외교부는 강씨가 사전에 동의했더라도 인턴 업무의 범위에서 벗어난 일을 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사 부인도 인턴의 업무 범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인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대사 부인의 태도에 있습니다. 당시 파나마 공관은 지난 5월 말부터 관저 요리사가 공석인 상황이어서 일손이 매우 부족했다고 합니다. 대사관 직원 뿐만 아니라 대사 부인의 친지까지 만찬 준비에 동원됐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인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인턴은 매일 업무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일이 없을 때는 공관을 지원하는 다른 일을 맡기도 한다는게 외교부 관계자의 말입니다. 국내에서도 인턴이 허드렛일에 동원되는 일이 많은데, 달랑 직원 5명인 해외공관에서 전직원이 바쁜데 나몰라라 할 ‘강심장’을 가진 인턴은 많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강씨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주방일을 해야했던 것보다 아랫사람을 하인 부리듯 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사 부인의 태도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을 겁니다. 만약 대사 부인이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했다면, 그리고 인턴의 노고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면, 인턴은 잡일이라도 공관을 위한 일에 기여했다고 뿌듯하지 않았을까요.

대사관의 ‘갑질’ 논란이 그동안 여러차례 논란이 됐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포르투갈 대사가 요리사를 6명이나 갈아치운 일이나 대사관 주방장을 식모 부리듯하는 대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것입니다. 이런 행동들은 과거 대사 부인들의 ‘군기잡기’ 문화에서 비롯된 걸로 보입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재외공관 대사 부인들은 공관에 파견된 직원들의 부인을 대사관저 행사에 동원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김치 담그기, 청소 등 개인적인 집안일을 부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외교관 부인들은 한국인이 많지 않은 오지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데 남편이 직장 상사의 눈밖에 날까봐 대사 부인의 눈치를 보느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서 가족이 함께 해외에 파견되는 경우가 줄었고, 여자 외교관이 늘면서 이런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과거 ‘시집살이’를 겪었던 외교관 부인들이 이제는 대사 부인으로 승격되면서 한(?)을 풀려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하니 웃지 못할 일입니다. (끝) /ac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