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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위걸음, 반복되고 반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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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의 역사읽기) ‘거위걸음’ 정도로 번역될 ‘goose step’이란 단어는 군인들이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며 걷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군사 퍼레이드 같은 데 선보이는 의장용 스텝인 이런 걸음걸이는 18세기 프로이센에서 유래했다.

독일어로 ‘슈테히슈리트(Stechschritt·찌르는 걸음걸이)’라고 불렀던 이 걸음걸이는 당시 군대가 오와 열을 정연하게 맞춰 행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각종 총기의 발달이 미진했을 때에는 화려한 복장의 군복을 입고, 질서정연하게 적진을 향해 행진하는 ‘군기’를 유지하는 것이 군사교육의 핵심이었다.

안할트-데사우公 이었던 레오폴트1세에 의해 개발되어서 19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에 의해 프로이센군에 도입된 이 걸음걸이는 유럽 각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프로이센군이 나폴레옹전쟁 까지 백년불패의 전통을 자랑했고, 이후에도 강군의 이미지를 유지했던 덕이 컸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장전이 불편하고 명중률이 떨어졌던 머스킷총을 대신해 라이플총 도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거위걸음’은 시대에 뒤쳐진 유행이 돼버렸다. 명중률이 높아진 장거리 소총의 도입으로 오와 열을 맞춰 적진으로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화포의 위력이 더해지고, 기관총과 탱크가 지상전의 주역이 되면서 군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는 행위의 실질적인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무릎을 굽히지 않고 오래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이 같은 걸음걸이를 도입한 각국 군대에서도 의장용 걸음걸이에 한정됐다. 그리고 독일식 거위걸음을 이탈리아 군에 적극 도입하려고 했던 무솔리니나, 거위걸음 행진을 선전효과에 널리 사용했던 나치 독일의 사례 탓에 거위걸음은 전체주의의 상징으로 낙인 찍혔다. 2차 대전 후엔 이 같은 걸음걸이의 본고장인 독일에서도 미군 점령하의 서독지역에선 사라지게 됐다.

오히려 소련과 동독 등 공산주의 진영에서 이 같은 걸음걸이를 유지했고 퍼뜨렸다. 요즘 TV 자료화면에서 나오는 북한군인 들의 각진 걸음걸이는 이 같은 역사의 산물이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북한 만큼은 아니지만 ‘거위 걸음’을 하는 중국군의 행진 모습이 전세계에 전해졌다. 오와 열을 맞춰 걷는 연습을 하느라 ‘생고생’했을 병사들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중국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행사가 가진 함의에 대해서도 복잡한 생각이 든다. ‘거위걸음’이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머리속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끝)

***참고한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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