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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바다 아래 고선박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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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문화스포츠부 기자) “가뜩이나 계속된 흉년으로 민심이 어지러운데, 스무 척의 조운선(漕運船)과 세곡(稅穀)이 수장되었으니 큰 변고가 아닐 수 없네. 전하께서는 조운선 침몰 사고와 연관된 관원들의 이직을 금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라 명하신 바 있네. 자네들이 이 다섯 군데를 둘씩 짝을 지어 다녀와야겠으이.”

소설가 김탁환 씨의 장편 '목격자들'(민음사)을 보면 주인공인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조운선 침몰사고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운선은 고려와 조선 시대 조세로 바치는 곡식을 나르는 배였습니다. 그런 배들이 바다에 가라앉았다면 조정으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소설은 주인공이 조운선 침몰 사고를 조사하면서 검은 권력의 실체에 다가서는 내용을 긴장감 있게 잘 표현했습니다.

최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 고선박이 조운선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전에 바닷속에서 발견된 배들은 모두 통일신라, 고려, 중국 배였기 때문에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배였기 때문에 공물로 올라가던 분청사기, 숫돌, 대나무도 같이 출수(出水)됐습니다. 이 배에서 나온 유물을 조사한 결과 15세기 초 전라도 나주에서 서울 광흥창으로 가던 배였다고 합니다.

마도 해역은 지금은 바다 흐름이 조금 바뀌었지만 물살이 거세고 밀물 때 암초가 보이지 않아 위험한 곳입니다. 여기에 안개까지 짙게 끼면 당시 항해술로는 아주 위험한 운항을 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침몰도 잦아 조선왕조실록에 ‘조운선’이라고 검색하면 태조 7년과 8년에 경상도와 충청도에서 올라오던 조운선이 바람에 침몰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조운선은 단순한 배가 아니라 세금을 옮기던 배였기 때문에 관리가 엄격했습니다. 조운선이 난파됐을 경우 해당 지방관은 바로 현장에 달려가 상황을 수습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틀 이내에 나타나지 않고 부하를 대신 보내면 처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조운선 세 척이 파손되면 운송 책임자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정조실록에는 비변사가 세곡 수송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련자들을 엄히 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좀 더 찾아보면 따뜻한 내용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위 30년째였던 1448년 세종대왕은 경기 감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4월 초1일에 큰 바람이 불어 전라도 조운선(漕運船) 6척이 교동(喬桐)에서 파손되고, 충청도 조운선 2척이 남양(南陽)에서 파선되었는데, 배를 압령한 사람이 옷과 식량을 잃어서 혹 기한(飢寒)으로 인하여 죽을까 염려되니, 옷과 양식을 알맞게 주고 그 깨어진 배로 수리할 수 있는 것은 수리하여 주어 처소를 잃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하라.”

조운선 사고는 국가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중대한 문제였지만 배를 몰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했던 세종대왕의 따뜻한 마음이 보입니다. (끝) /dirn@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6(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