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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실수?’…중국산 디바이스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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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가 국내 보조 배터러 시장 70% 장악, 글로벌 시장에선 이미 중국 업체들이 1등

(장진원 한경 비즈니스 기자) 지난 5월 20일 국내 오픈 마켓 11번가에서 ‘샤오미 쇼킹 원데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프로모션은 여러모로 국내 유통산업에 충격파를 던졌다. 먼저 단일 브랜드, 그것도 좀처럼 접하기 힘든 중국 브랜드를 내세운 프로모션이었다는 점이다. ‘짝퉁’이나 조악한 품질로 인식되던 중국산 제품이 한국 시장에서도 어엿한 ‘브랜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로 시장 관계자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중국에선 이미 샤오미 제품에 열광하는 샤오미 팬(Mi Fan), 일명 ‘미펀(米紛)’들을 위한 할인 행사인 ‘미펀제’가 인기다. 11번가가 진행한 지난 원데이 프로모션은 샤오미 제품을 선호하는 국내 고객들을 위한 일종의 한국판 미펀제였던 셈이다.

판매 성과는 놀라웠다. 공기청정기 ‘미 에어’ 111대가 3분 만에 ‘완판’됐고 체중계 ‘미 스케일’ 111대는 3분 만에, 스마트 밴드 ‘미 밴드’ 111대는 10분 만에, 보조 배터리 333대는 1시간 만에 모두 팔려 나갔다. 특가 한정 수량으로 공개된 제품이 1대도 남지 않고 팔린 것은 물론 한정 수량 매진 이후에도 하루 종일 샤오미 제품의 구매가 잇따랐다.

5월 행사에 고무된 11번가는 지난 7월 28일에도 공급량을 늘려 똑같은 프로모션을 열었다. 이날 하루 동안 미 밴드 1500대, 보조 배터리 2000대, 이어폰 500대, 미 스케일+미 밴드 패키지 1000세트 등 준비된 수량이 완판되며 새로운 판매 기록을 세웠다. 행사가 열린 주의 샤오미 제품의 매출은 전 주 대비 450%나 폭등했다.

샤오미 보조 배터리 연일 완판 행진
중국산 전자 기기들의 돌풍이 거세다. 진원지는 샤오미가 만든 모바일 디바이스용 보조 배터리다. 용량이 8400mAh인 삼성전자 제품의 온라인 판매가는 2만9000원대. 이에 비해 용량이 더 큰 샤오미의 1만400mAh 제품이 절반도 안 되는 1만2500원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디자인도 수려하다. 애플의 짝퉁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 샤오미답게 외피는 애플의 맥북에어와 같은 고급 알루미늄이다. 성능도 국내 제품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샤오미의 보조 배터리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남긴 사용 후기에는 “국산 배터리보다 낫다”며 ‘강추’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샤오미는 2010년 창립돼 이제 막 설립 5년 차에 접어든 신생 기업이지만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이미 중국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선 혁신 기업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선 아직 샤오미가 생산한 스마트폰을 볼 수 없지만 보조 배터리를 비롯해 USB 포트를 이용한 소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탠드와 선풍기, 스마트 밴드(미 밴드), 체중계(미 스케일), 공기청정기, 이어폰 같은 소형 전자 기기들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다.

올해 7월 1일부터 8월 11일까지 11번가에서 판매된 샤오미 제품의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800%나 상승했다. 서혜림 11번가 휴대전화·액세서리 담당 머천다이저(MD)는 “샤오미 제품은 저렴한 가격, 준수한 품질, 깔끔한 디자인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춰 인기”라며 “샤오미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값만 싼 공산품’에서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MD가 강조한 ‘가성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말로, 최근 중국산 전자 제품들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앞서 예로 든 보조 배터리를 보자. 같은 성능의 국산 제품에 비해 가격이 절반 이하다. 배터리뿐만 아니다. 만보기, 수면 상태 체크, 스마트폰 전화 수신 알람에 방수 기능까지 갖춘 미 밴드의 최저 판매가는 불과 1만4000원대다. 비슷한 기능을 가진 미국의 핏빗이 14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샤오미의 가격 파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블루투스 4.0을 통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과 연동되고 800개에 이르는 개인 기록 저장, 체중 및 신체질량지수(BMI) 측정, 강화유리와 LED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미 스케일의 가격은 3만 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이 밖에 샤오미 공기청정기(미 에어)는 25만 원대에, 미니 선풍기나 LED 스탠드는 5000~7000원대에 팔리고 있다. 국내 제품은 물론 전 세계 그 어떤 나라의 제품도 ‘메이드 인 차이나’의 가격 경쟁력을 따라잡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실제로 가격 비교 사이트인 에누리닷컴의 보조 배터리 판매 순위를 보면 1~4위까지 샤오미 제품이 점령했다. 반면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샤오미의 기세에 눌려 톱 5에 겨우 턱걸이하는 데 그쳤다.

프리미엄 제품까지 영향력 확대
치솟고 있는 중국산 전자기기의 인기 배경은 단순히 ‘싼 맛’ 말고 또 있다. 바로 ‘품질’이다. 중국 제품의 품질을 비꼴 때 흔히 쓰던 ‘대륙의 실수’라는 표현은 업계나 소비자들 사이에선 더 이상 ‘실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가격은 물론 품질 경쟁력까지 갖춘 중국 제품을 뜻하는 긍정적 뉘앙스가 더 강해졌다.

국내에서 대륙의 실수의 포문을 처음 연 것은 2009년 출시된 이어폰 ‘PL30’이다. 제조사인 사운드매직은 이미 국제 음향 분야에서 각종 수상 기록을 보유한 실력 있는 기업이다. PL30은 10만~20만 원대의 기존 유명 제품과 견줘도 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자랑하면서도 가격은 2만 원대에 불과하다.

이어폰에서 시작된 중국 제품의 국내시장 역습은 샤오미를 통해 절정을 맞았다. 이를 통해 다른 중국산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완화되는 효과가 덤으로 따라붙는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네이버쇼핑에서 스마트 기기 전문 쇼핑몰(영스몰)을 운영 중인 정지영 대표는 “성능과 기능의 충실함만을 보면 샤오미 제품이 압도적”이라며 “현재 국내 보조 배터리 시장의 70%를 샤오미가 장악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1만6000mAh 제품은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물건 구하기가 어렵다”며 “오죽하면 샤오미 본사 차원에서 구매 욕구를 올리기 위해 공급 물량 조절에 나섰다는 얘기까지 떠돈다”고 덧붙였다.

소형 전자기기에 국한됐던 중국 브랜드의 역습은 ‘대륙의 실력’이라는 인식 변화를 타고 점차 고성능 제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9월 전략 모델인 ‘X3’를 선보이며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정식 진출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5인치 풀HD 터치스크린에 2GB의 RAM과 16GB의 내장 메모리, 안드로이드 4.4 킷캣 운영체제(OS)를 탑재한 모델이다. 이 밖에 풀 HD 녹화가 가능한 500만 화소의 전면 카메라와 1300만 화소의 후면 카메라를 갖췄다. 성능만으로는 갤럭시 S5 등 출시 당시의 국내 프리미엄급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LG유플러스를 통해 판매된 X3는 출시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7만여 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화웨이코리아 관계자는 “‘외산 폰의 무덤’으로 불리는 한국 시장에서 이 정도 판매량이면 출시 첫해 치고는 성공적이라는 게 내부 평가”라고 밝혔다.

화웨이 X3가 국내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가성비다. 현재 X3의 출고가는 32만8000원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최고액(29만1000원)에 대리점의 추가 보조금까지 더한다면 1만 원대 가격에도 구입할 수 있다. 약정 계약이나 고가 제품을 피하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X3가 사실상 ‘공짜 폰’으로 소문나며 인기를 얻은 이유다.

‘싼 맛’ 아닌 품질로 승부
스마트폰은 삼성·애플·LG가 아니고선 버텨내기 힘든 게 국내 유통시장의 구조다. 이에 비해 글로벌 시장을 들여다보면 중국 기업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화웨이의 성장이 눈에 띈다. 화웨이는 지난 5월에 이어 6월에도 두 달 연속 중국 시장점유율 1위(20.8%)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 대비 세계시장 출하량 성장률도 116%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중국 내 라이벌인 샤오미가 45%, 애플이 31%, 삼성전자가 1%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면 화웨이의 약진을 실감할 수 있다. 시장조사 기관 IDC 조사에 따르면 화웨이는 이미 지난해 7360만 대의 스마트폰 출하량을 기록하며 세계 3위의 스마트폰 제조 업체로 등극했다.

스마트폰 및 소형 전자기기로 인기몰이 중인 중국산 제품은 국내 기업들의 텃밭인 백색가전 분야에서도 힘을 발휘하며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 위주의 프리미엄급 제품과 일반 기능에 충실한 중국산 제품으로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6년 연속 세계 백색가전 판매 1위를 차지한 하이얼은 2004년 국내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틈새시장’ 공략을 핵심 판매 전략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재 하이얼의 한국 시장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 홍보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니 세탁기, 와인셀러, 22인치 TV 등이었던 초기 상품 라인업은 현재 50~65인치 대형 TV나 13kg 용량의 세탁기 등으로 바뀐 상태다. 푸웨이이 하이얼코리아 부사장은 “‘메이드인 차이나’가 보편화되고 ‘대륙의 실수’ 등 중국 제품의 품질 수준 향상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매출 상승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대형 가전 양판점에서도 중국산 백색가전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 하이얼 TV와 냉장고, 레노버의 노트북 컴퓨터, 샤오미의 모바일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롯데하이마트의 중국 브랜드 제품 매출액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의 5%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 같은 추세는 올 들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올 1~7월까지 중국 브랜드 제품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5% 정도 상승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올 하반기 안에 TCL(TV)·갈란츠(생활가전)·GREE(생활가전)·화웨이(스마트폰) 등 경쟁력 있는 중국 브랜드 제품 판매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11번가에서도 하이얼의 매출액은 7월 1일~8월 11일 동안 전년 동기 대비 472%나 성장했다.

하반기에는 샤오미의 공습이 또 한 번 거세게 불어닥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오픈 마켓인 G마켓과 옥션 등에서 곧 샤오미 TV와 정수기가 판매될 예정이다. 48인치 샤오미 TV는 삼성의 UHD 디스플레이에 9.9mm의 두께, 쿼드코어 CPU와 안드로이드5.0 롤리팝 OS를 장착한 최상급 스마트 TV이지만 가격은 55만 원대에 불과하다. 국내 제품의 절반 수준이다. 샤오미 정수기는 4개의 역삼투압 필터를 통해 0.001미크론 크기까지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필터 교체 시기를 알려주는데, 가격은 23만 원대다.

스마트폰과 액세서리에 이어 백색가전까지 넘보는 중국 업체의 공습은 국내 업체들에 새롭게 닥친 도전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에 시장점유율 1위를 넘겨준 지 오래다. 유승범 11번가 대형가전 담당 MD는 “중국산 가전의 최대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라며 “한국 소비자 취향에 맞춰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하고 애프터서비스 역시 충실하게 보장하면서 생활가전 분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것이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애플에 열광하는 이들도 제조, 심지어 디자인까지 중국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애써 무시한다. 애초부터 중국이 생산하지 않는 건 없었다. 단지 그 위에 자신들의 브랜드만 얹혔을 뿐이다.”
중국 브랜드의 부상을 바라보는 국내 한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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