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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의 마지막 희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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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산업 급성장...올해 수주액 10조원 돌파 예상

(이홍표 한경 비즈니스 기자) <전자·자동차·조선 등 한국 제조업의 중흥을 이끌던 ‘삼두마차’가 일제히 흔들리고 있다. 가격과 품질을 앞세운 일본과 중국 제조업의 협공에 이대로 무너지고 마는지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한국 제조업에 희망은 남아있다. 바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항공기 산업이다. 아직 걸음마를 갓 벗어난 수준이지만 ‘삼두마차’로 세계를 누비던 제조업 내공이 본격적으로 발현하는 순간 ‘퀀텀 점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제조업의 마지막 희망 항공기 산업을 집중 분석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가 8월 10일 무려 372억 달러(약 43조 원)를 투자해 프리시전 캐스트파츠(이하 프리시전)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막대한 규모의 인수는 투자 귀재로 불리는 버핏 회장의 투자 인생 반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딜이다. 버핏 회장이 초대형 인수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소식에 미국 시장과 언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손대는 족족 막대한 수익을 일구는 버핏 회장의 ‘엘리펀트(대형 인수)’ 투자만큼 미국 시장에 대한 전망을 확실히 밝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만한 규모의 딜은 제아무리 버핏 회장이라도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버핏 회장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최소 1년 이상 이러한 대형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사실상 버핏 회장의 현역 생활 마지막 대형 계약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버핏 회장은 “프리시전 인수에 들어가는 금액 가운데 230억 달러는 벅셔해서웨이가 보유 자금에서 감당하고 나머지 100억 달러 이상은 빌려서 충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기 산업에 마지막 승부수 둔 워런 버핏
그러면 프리시전이 도대체 어떤 회사기에 천하의 버핏 회장이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했을까. 80세를 넘긴 그가 건 ‘마지막 승부’는 도대체 어떤 업종의 어떤 회사일까.
버핏 회장이 인수하기로 한 프리시전은 미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기반을 둔 항공기 부품 전문 제작 회사다. 경기 악화로 올 1분기 순익이 전 분기 대비 18%나 감소하는 등 타격을 입으면서도 지난 3년 동안 70억 달러를 투자해 항공기 부품 첨단화에 매진하는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즉 버핏 회장이 프리시전의 경쟁력은 물론 항공기 산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에 기반해 거액의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버핏 회장은 투자 결정 발표 후 “100% 확신이 없었다면 이 거래는 이뤄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항공기 산업은 제조업 분야의 마지막 남은 엘도라도로 불린다. 시장조사 업체 포워캐스팅인터내셔널에 따르면 2023년 세계 항공기 산업 규모는 834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807억 달러보다 48% 늘어난 수치다. 여객 수요의 증가로 대형 민항기 수요가 급증한 데다 미국과 중국 등 국가의 군용기 교체가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성장은 항공기 산업에 날개를 달아 줬다. 앞서 언급한 ‘여객 수요의 증가’, 즉 중국인 관광객들이 해외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2014년 중국의 국제선 탑승객 수는 약 1억1000만 명으로 5년 전인 2009년 대비 124%나 늘어났다. 중국의 국내선 여행객 수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 중국 국내선 탑승객 수는 약 3600만 명으로 5년 전 대비 67%나 늘었다. 그만큼 항공기가 더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민수와 군수로 나뉘어 있는 항공기 산업은 이제까지 선두 주자들의 ‘나눠 먹기 시장’이었다. 미국의 보잉, 유럽의 에어버스, 미국의 록히드마틴 등 3사가 전 세계 시장이 40%를 점유하고 있고 상위 10대 기업이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형적인 과점 시장이다.
과점 시장의 특징은 일단 시장 내에 진입하기가 어렵지만 진입하기만 하면 꾸준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구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항공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기존의 장벽에 ‘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민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보잉과 에어버스 양 사의 수주 잔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들 업체들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부품의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다. 보잉의 부품 아웃소싱 비율은 과거 개발된 B737은 35~50% 수준이었지만 최근 개발된 B787은 70%로 확대됐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한국도 항공기 산업에 적극 도전하고 있다. 전자·자동차·선·철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은 최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상태다. 이의 돌파구로서 성장 가능성이 큰 항공 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항공 산업은 노동집약적 작업 공정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편이다. 내수 부양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항공기 및 항공 부품 제작 기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라며 “올해 수주 금액이 10조 원을 넘어설 정도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완성기 기업은 한국항공우주가 유일
한국 항공기 산업의 성장곡선이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 항공기 산업의 생산 규모는 지난해 43억4000만 달러(약 4조8000억 원)를 기록하며 전년(36억 달러)보다 20.5%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항공기 독자 개발에 성공한 이후 국내 항공기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며 “대한항공 같은 항공 운항사도 항공 부품 제조 분야를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항공기 산업의 수주액은 사상 처음으로 10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적어도 2~3년 치의 ‘먹을거리’를 이미 쌓아 놓은 것이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함께 대한항공·아스트·하이즈항공 등 기업들의 수주액을 합치면 연간 수주액은 1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며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항공 산업 특성상 자동화가 어려워 항공기 제조 산업 종사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항공기 산업 종사자는 2010년 1만 명을 돌파한 이후 작년까지 1만2407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항공기 제조와 관련된 사업을 나눠 보면 크게 세 가지다. 완제품을 만드는 완성기 사업, 완성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부품 사업, 완성기를 유지·보수하는 항공 정비(MRO) 사업이다. 이 중 한국에서 완성기를 만드는 곳은 아직까지 KAI가 유일하다. KAI는 T-50고등훈련기와 수리온 헬기 등의 완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KAI의 성장세는 거침없다. KAI는 올 상반기에 매출 약 1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 늘었고 영업이익도 약 1300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완제품인 다목적 고등훈련기 FA-50과 부품인 기체 구조물 등의 수출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인 약 8000억 원으로 성장을 견인했다. 수주도 문제없다. 지난 6월 25일 1조6000억 원에 달하는 소형 민수·무장헬기 사업을 수주한 데 이어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8조5000억 원), 페루 FA-50 경공격기 수출 프로젝트(약 1조 원) 등 굵직한 사업들이 연내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KAI 관계자는 “대형 수주가 집중돼 있는 하반기 경영 환경을 고려할 때 신규 수주 10조 원, 매출 3조 원 등 연초 계획한 경영 목표 달성이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KAI는 기존의 군수 내수 기업에서 민수·수출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중이다. 올해 KAI의 연간 매출 중 민수·수출 비중은 61%(약 2조 원)까지 도달할 전망이다. KAI의 민수 부문이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이유는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에어버스에 부품을 납품하면서 양 사 모두의 핵심 협력사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버스와 보잉의 협력사는 전 세계에 수천 개가 있지만 핵심 협력사는 회사당 50곳 정도에 불과하다. 권경인 KAI 재무관리실장은 “이미 보잉·에어버스와 항공기 부품 장기 공급 계약을 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방위산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절충 교역 등에서도 기대 요인이 있다”며 “공장자동화 등으로 원가도 계속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형 부품 업체의 경쟁력도 크게 높아져
이렇듯 한국의 완성 항공기 산업은 KAI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항공기 산업의 또 다른 축은 항공기 부품이다. KAI의 성장 스토리 역시 완성기도 완성기지만 해외 대형 제작사들과의 부품 계약을 통해서였다. KAI를 제외하면 대한항공·아스트·하이즈항공·샘코 등이 이 분야의 강자들이다. 또한 1970년대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항공기 엔진을 제작해 온 한화테크윈도 항공 산업의 터줏대감이다.
이 중 최근 가장 돋보이는 부품 회사는 아스트·하이즈항공·샘코 등 경쟁력 있는 전문 중소형사들이다. 아스트는 보잉의 1차 협력 업체인 스피리트로부터 수주한 B737-900의 꼬리 동체를 독점 생산 중인 기업이다. 2014년 말 기준 매출액 666억 원 규모의 아스트는 약 1조 원의 수주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이지윤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공중급유기, FX 3차 사업의 절충 교역 중소기업 할당 부문에 대해 우선 협상자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주가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즈항공은 KAI의 가장 큰 협력 업체다. 2014년 말 기준 매출 규모는 313억 원이다. KAI가 일본 업체로부터 수주한 B787의 날개 구조물을 하이즈항공이 가공 조립해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샘코는 2014년 말 기준 매출액 313억 원을 기록했다. 샘코는 항공기의 도어 시스템 제작 업체다. 직접 샘코의 이름으로 러시아 수호이에서 생산하는 민항기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는 에어버스 헬리콥터와 협력해 일본의 MRJ에 도어 시스템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의 항공기 산업은 아직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한국의 완성기 시장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0.7%, 항공 부품 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0.8%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철강 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각각 4.4%와 5.8%를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특히 항공기 산업 중 MRO 사업의 비율은 말 그대로 0%다. 업계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 항공기 산업은 부품과 MRO 위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선 한국 완성기 사업은 군용기 위주이며 고객이 사실상 방위사업청 한 곳이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민항기 제작은 과점 시장, 높은 진입 장벽, 작은 내수 수요로 한국 기업이 신규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반면 부품과 MRO는 좀 다르다. 부품 산업은 이미 글로벌 완성기 업체에 납품하고 있어 글로벌 항공기 산업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MRO는 현재 대부분이 외국의 업체가 대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등 한국 항공사의 규모는 세계적으로도 큰 편이며 인천국제공항은 아시아 지역 허브 공항의 하나로 여객 및 화물 수요가 많아 항공 정비 수요 역시 많기 때문이다.
특히 MRO 사업은 세계 항공 시장 중 26%를 차지하고 있어 민항기 제작업 다음으로 크다. 글로벌 MRO 시장은 2015년 67억 달러에서 2025년 100억 달러로 앞으로 10년간 연평균 4.1%나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강태현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과 인접한 한국의 지리적 위치 그리고 세계 7위의 무기 수입국이라는 구매력을 감안할 때 항공기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MRO는 대형 민항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아시아권 항공기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어 이 부문의 성장 가능성 역시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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