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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따라 희비겪는 벤처캐피털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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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혁 증권부 기자)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트렌드 변화에 매우 민감한 직업 중 하나입니다. 가장 유망한 산업을 찾고, 여기서 성장성 있는 벤처기업들을 발굴 및 투자하는 게 이들의 주업무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곧 '정보통신(IT) 전문가'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IT전문가들이 업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죠. 'IT대기업 연구소 출신'이라는 타이틀만 있어도, 어떤 벤처캐피털에도 들어갈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업계에 IT 전문가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벤처투자도 액정표시장치(LCD), 발광다이오드(LED), 반도체, 기계장비 등의 분야에 쏠렸습니다. 2009~2012년에는 이 같은 IT 분야 코스닥 상장사들이 많이 등장했죠. 실리콘웍스, 사파이어테크놀러지 등과 같은 업체들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벤처캐피털들도 IT벤처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벤처캐피털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유망산업의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부터입니다. 제조업 투자가 급감했고, IT도 주력투자 분야에서 밀려났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제조, 반도체 등의 산업이 예전과 같은 성장성이 없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분야 벤처기업들이 기업공개(IPO) 하는 사례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렇다면 요즘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어떤 산업이 뜨고 있을까요? 제약, 화장품, 의료기기 등을 포함한 바이오 업종이 가장 '핫(hot)'합니다. 콘텐츠 산업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선데이토즈, 데브시스터즈, 파티게임즈 등 모바일게임사들이 잇따라 상장하면서 게임업체에 투자한 많은 벤처캐피털들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중국시장 진출이 기대되는 엔터테인먼트, 영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 분야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전문분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수년전만 해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IT전문가'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하나둘씩 업계를 떠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반면 바이오 및 콘텐츠 전문 심사역들은 갑자기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몸값이 두세배 뛰면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수년전 만해도 비주류로 평가받던 그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주류'로 올라선 것이죠.

IT전문가로 10여년 간 근무한 한 40대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요즘엔 좀처럼 투자할 만한 IT업체를 찾기 어렵다"며 "이미 시니어가 된 마당에 전문분야를 버리고 어플리케이션 등 콘텐츠 산업을 새로 파고들 수도 없고, 이제는 투자업계를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유망산업도 변합니다. 벤처캐피털은 유망산업을 좇는 게 숙명입니다. 다만 시대 변화로 한 순간 경쟁력을 잃어버린 베테랑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처지는 참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4.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