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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 "꼰대가 싫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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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늘 디지털전략부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사가’. 김이나라는 이름 세 글자에 붙는 수식어입니다. 수많은 히트작을 쓴 경력 때문일 겁니다. 아이유 <좋은 날> <잔소리>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 <걷고 싶다> 등이 그녀의 손을 거친 노래입니다.

8월 9일 오후 7시, 서울시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한 토크콘서트에서 김이나 작사가를 만났습니다. 김 작사가와 한겨레 서정민 기자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는데요. 지난 3월 출간된 책 <김이나의 작사법>(문학동네)의 내용을 바탕으로 궁금한 부분을 묻는 방식이었습니다. 인상깊었던 답변을 아래에 정리했습니다.

▲ 어떻게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되었나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일반 회사를 다니면서도 음악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작사가가 될 생각은 못하고, 앨범 자켓디자인이나 공연기획 등을 생각했어요. 음악 기획사에도 이력서 넣었는데 떨어졌죠.

그러다 김형석 작곡가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일에 관련된 자리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가서 인사하고 "저 작곡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무모하게 던지는 사람에게 한 번의 기회는 주는 분이라 앞에서 연주할 기회를 잡았죠.

엉망진창으로 곡을 쳤어요. "소질이 없는 것 같다. 기본을 더 배우고 오라"며 돌려보냈어요. 아쉬운 마음에 제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드렸어요. 김형석 작곡가님 콘서트 맨 앞줄에 앉아서 찍었던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와서 보라는 명분이었죠.

홈페이지에 제가 쓴 글도 같이 올라가 있었어요. 김형석 작곡가께서 그걸 보고 "글 재간이 있다"며 조만간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정말로 몇 달 뒤에 작사 의뢰가 들어왔죠. 그렇게 발을 들이고, 저작권만으로도 적당한 벌이가 된다 싶었을 때 전업 작사가로 전향했어요.

사진 찍고, 글을 쓰고 그걸 홈페이지에 안 올렸더라면 작사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평소에 목적 없이 관심있어서 해 왔던 일들이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저를 이 길로 인도한 거죠.

▲ 작사를 잘 하려면

사실, 처음 제의받은 곡은 드라마 '올인'의 <처음 그 날처럼>이었어요. 그런데 거절당하고 다른 분 가사가 채택됐어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곡도 유명해지면서 아쉬움이 컸죠. 가사는 내 감정이 들어가 있잖아요. 그걸 누구에게 보여줬다 튕기면 고백했다 차이는 느낌이에요.

실패 덕분에 ‘작사와 글쓰기는 다르다’는 걸 실감했어요. 기존 노래를 열심히 들으면서 어떤 식으로 포인트를 주고, 단어를 쓰는지 혼자 연구하기 시작했죠. 요즘처럼 작사 학원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작사는 내 일기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상황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걸 그 때 터득했어요. 그전에는 "너가 떠났어"라고 상황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의자가 텅 비어있어"처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거에요.

결국 성시경 <시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했어요. 딱 한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죠. 그게 2003년 일이니 벌써 13년차 작사가네요! 마음은 아직도 막내인 것 같은데...

▲ 책을 보니 아이유, 가인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은데

아이유는 굉장히 '인간'이에요. 훌륭한 인품을 가진 '된 사람'이라는 얘기죠. 나이와 상관없이 대단한 기운을 느껴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 거에요. 그런 기운이 안 다치고 쭉 잘 됐으면 좋겠어요.

가인이는 고통과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일할 때 굉장히 예민하고 까다로워요. 반면, 노래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상상하는 기대치를 넘어 언제나 110% 이상을 구현한다 점이 대단해요. 이미 기대치가 높은데도 그 이상 보여줘요. 미세한 박자 맞추기, 발음 등에서 작곡가 의도와 가수 스타일이 다르면 녹음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가인이는 작곡가의 뜻을 순발력있게 파악하고 즉시 맞춰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 조용필·이선희 등 거장과의 작업, 부담스럽지 않았나

저는 거장의 무게에 짓눌리는 걸 좋아해요. 그 사람만의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된 느낌을 즐겨요. 같은 장소에서 보면서 작업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중압감이 크죠. 여러 작사가에게 의뢰를 하기 때문에 내 가사가 채택될 것 같다는 생각 안하고 작업했어요. 결국 선택되어 나온 게 조용필 선생님의 <걷고 싶다>에요.

그 이후 자신감이 붙었어요. 이선희 선생님과 작업할 땐 예쁜 외모가 가창력에 묻혀 상대적으로 언급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워풀한 것보다 섬세한 감정선을 가진 사랑이야기가 어울린다고 봤죠. 구창모 선배의 <희나리>를 좋아하는데요. 여기에 나온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같은 '하오체'를 차용했어요. 형식은 클래식하게 갔지만 내용엔 20대 여성처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는구나"식의 감성을 넣어줬죠.

▲ (관객 질문)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원로가수 있나

저는 원로가수분과의 작업을 선호해요. 그분들은 대체로 자신만의 시각이나 목소리가 강하죠. 젊은 친구들은 이러면 '꼰대'라고 안좋게 보기도 해요.

이건 우리 또래만의 문화일수도 있는데, 저는 '꼰대'를 싫어하지 않아요. 내 생각과 다르면 참고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자기고집 있는, 나이가 지긋이 있으신 분들과 작업하면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어요.

특히 같이 일해보고 싶은 분은 나훈아 선생님이에요. 이제 밖으로 나와주셨으면 해요. 그 분만큼 엔터테이너로서 곡을 만드는 능력치, 가창력, 삶 자체의 임팩트가 있는 분이 없다고 생각해요. 설사 일을 같이 못 하더라도 앨범 내고 활동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 (관객 질문) 나와 결이 다르지만 영감을 주는 노래가 있나

빅뱅 노래는 언제나 자극을 줘요. 저는 죽을 때까지 그런 곡 못 쓸 거에요. 정말 '노는 사람'만 쓸 수 있는 가사에요. 지드래곤이 'BAE BAE'에서 "찹쌀떡 찹쌀떡 우리 궁합이"라는 부분을 부르는데 우스꽝스러운 부분조차 묘하게 멋있게 하는 마력이 있어요.

또 빅뱅 노래를 잘 들어보면 그들만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있거든요. 설명하려 들지 않을 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감성이 있는데, 일부러 드러내려 하지 않고 담담히 던지는 것도 능력이에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끝)
/sk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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