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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신문 폐간,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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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산업부 기자) 21년 역사의 포스코신문이 지난달 30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했습니다. 마지막 신문은 지령 1081호. 포스코가 올해로 창립 47주년을 맞았으니, 대한민국 철강 산업사의 절반은 1081호의 포스코신문 속에 기록돼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스코는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는 대신 온라인 통합매체인 ‘포스코미디어’를 만들어 내달 4일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포스코신문은 1994년 6월 창간돼 21년간 매주 목요일 포스코그룹의 목소리를 담아왔습니다. 국내 최고(最古)·최장(最長)의 신문형 사보로 발행 부수는 매주 7~12만부에 달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10대 일간지를 제외한 일간지 발행부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사보 기준으로는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

포스코신문은 회사의 굵직한 소식은 물론 임직원과 가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성공한 기업신문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딱딱한 철강 이야기 외에도 여행 정보, 건강 정보, 신간 서적 리뷰 등 주요 일간지 못지 않은 생활밀착형 콘텐츠가 실려 인기를 끌었죠. 최근에는 대한민국 철강 역사를 써온 포스코 원로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담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 현장 근로자들과 신입 사원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회사 측은 포스코신문 폐간의 이유에 대해 “그룹사 뿐 아니라 해외법인에 근무하는 전 임직원에게 주요 회사 정보를 적시에 제대로 알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양방향 소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해부터 포스코의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으니 이 같은 의견도 물론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포스코신문 폐간을 두고 포스코 대내외에서 벌써부터 아쉬움을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포스코 본사 안에서보다 포스코 계열사와 각종 협력사들, 공공 기관에서 더 크게 들리는데요. 철강이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각종 산업에 모두 연관된 산업인 데다 포스코라는 상징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포스코의 비즈니스가 100% B2B업종인 까닭에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좀처럼 알기 쉽지 않은데, 20년 넘게 매주 잘 편집된 종이신문으로 배달해 주었으니 폐간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게 철강업계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맏형 포스코가 일주일에 한번씩 내놓는 신문을 보며 철강업계가 나아갈 방향, 현재 동향과 정보를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며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면 꼭 포스코신문을 정독하고 나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철강업계 뿐만 아닙니다. 주요 공공기관 등에도 배달됐기 때문에 포스코 고위 임원들은 목요일 오후나 금요일에 외부인들 만나는 자리가 즐거웠다고 합니다. 상대방이 먼저 회사 소식을 물어봤기 때문입니다.

종이 신문의 가치를 너무 서둘러 저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무리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이 발달했어도 기존에 있던 종이 신문 폐간을 결정한 미디어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도 “요즘 신문을 누가 보냐”는 자조섞인 말을 하곤 하지만, 종이신문 독자들의 ‘충성심’이란 인터넷 매체 독자들의 그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게 사실입니다. 전통 매체들도 앞다퉈 모바일 전용 플랫폼을 만들고 있긴 합니다만, 그날의 가장 핵심적인 뉴스는 지면 1면에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죠.

포스코신문을 부러워하던 경쟁업체들도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 기업이 21년 동안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대내외에서 읽히는 신문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포스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긴 세월 포스코신문이 만들어낸 가치는 이제 돈 주고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업계에서 포스코의 종이신문 폐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최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각종 비용절감을 통해 연 5000억원을 세이브 하겠다”고 말한 직후 폐간이 결정됐기 때문입니다. 권 회장은 또 인력 구조조정 없는 비용절감을 외쳤습니다. 이러다보니, 겉으로는 소통 강화 측면에서 폐간했다고 하면서 속내는 다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매출 15조원을 넘는 회사에서 연 10~13억원 가량이 드는 종이신문 발행을 포기한다는 건 근시안적이고 우스운 일”이라면서 “철강 시황 악화로 포스코마저 휘청이고 있다는 확신만 시장에 심어준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이제 독자들의 관심은 9월 4일 시작되는 포스코미디어에 쏠려 있습니다. 포스코미디어는 포스코신문과 사내방송, 사내블로그 등 사내 미디어를 모두 합친 온라인 통합매체로 그룹 임직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온라인 기반의 통합 뉴스룸을 만들어 영어로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매체를 만들겠다는 포스코의 약속이 어떻게 구현될 지 궁금합니다. 단, 새로 출범하는 포스코미디어가 포스코신문 만큼의 애독자를 확보하려면 적어도 20년의 긴 시간과 연 10억원 그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끝)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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