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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있는 영상은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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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늘 디지털전략부 기자) 하늘에 닿을 듯 까마득히 높은 알프스 산맥 중턱의 작은 판자집.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할아버지가 탁자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영상 통화를 시작합니다. 연결된 곳은 취리히 중앙역. 판자집이 있는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ünden)주 브린(Vrin)에서 자동차로 약 170km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이 때부터 재밌는 일이 벌어집니다. 할아버지가 역 한가운데 설치된 영상통화 부스를 통해 산골마을 브린으로 오는 열차표를 나눠주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브린으로 오는 티켓을 드릴테니 같이 간식 먹으러 오세요!"라는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이에 응하면 당일만 사용 가능한 티켓이 화면 바로 밑 발권기에서 출력됩니다. 표를 받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화면을 향해 뽀뽀를 날리는 여성도 있네요.

아쉽지만 학교에 가야한다는 남학생에겐 선생님 번호를 물어 직접 설득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이 아이는 오후에 학교에 못 갈 거에요..."

얼마 후 티켓을 받은 사람들이 할아버지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역사 영상통화 부스의 화면 너머로 사람들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모습이 잡힙니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 같은 내용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목은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의 관광 홍보 영상입니다.

한 외국인이 7월 11일 올린 이 동영상은 페이스북에서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조회수가 21일 오후 2시 현재 440만여회에 이릅니다. 사실 이 영상은 그라우뷘덴주 유튜브 페이지에서 6월 28일 최초로 공개됐는데요, 이곳 조회수도 40만을 넘어섰습니다.

전 세계 네티즌은 "기발한 생각", "감성마케팅의 진수"라며 영상에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 잔잔한 음악, 훈훈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입니다.

성공 이유를 분석해보면 우선 '스토리가 있는 광고'라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보통 관광 홍보영상은 유명지 풍경을 단순나열식으로 보여주는데 그치곤 합니다. 대신 이 영상은 기차표 선물을 나눠주는 할아버지, 이를 받아 뜻 밖의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합니다. 저절로 "아.. 나도 저렇게 브린으로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위대한 탈출'이라는 제목과 내용에서 보듯, 틀에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현대인의 일탈욕구를 자극한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털에서 관광 홍보동영상을 찾아봤습니다. 몇몇 지자체에서 제작한 영상이 나옵니다. 화면은 아름답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모두 1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창을 닫아 버렸습니다. (끝)
/sk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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