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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디폴트가 아니라 체납'...체납과 디폴트의 차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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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수지 국제부 기자) 그리스가 결국 지난달 30일(현지시간)로 예정된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에 실패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5일 만기가 돌아왔던 3억유로(약 3781억원)를 포함한 부채 15억3000만유로를 30일 한꺼번에 갚겠다고 했지만 채권단이 구제금융 연장을 거부하면서 돈을 갚지 못한 것입니다.

기자는 지난달 4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모리츠 크래머 글로벌 총괄전무를 인터뷰하면서 “그리스가 IMF에 채무를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신용등급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IMF에 돈을 갚지 못하는 것은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가 아니라 ‘체납(arrears)’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IMF 역시 그리스의 채무 상환 실패를 체납으로 규정했는데요. 그렇다면 체납과 디폴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둘의 다른 점은 상환 대상이 상업 금융기관인지 여부입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채무자가 상업 금융기관에 돈을 갚지 못했을 때에만 디폴트로 간주합니다. 국제기구인 IMF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다 해도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데는 영향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달 유럽중앙은행(ECB)에 그리스가 채무를 예정된 날짜에 상환하지 못해도 디폴트가 아니라 체납입니다.

그렇다고 체납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IMF같은 국제기구에 돈을 갚지 못한다면 민간 은행에도 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말만 체납이지 사실상의 디폴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현 상황이 체납이라고 말하는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지난달 29일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낮췄습니다. S&P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CCC에서 CCC-로 변경했고 피치 역시 CCC에서 CC로 조정했습니다.

한편 디폴트와 모라토리엄(moratorium·채무지불유예)도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둘 다 빚을 갚을 여력이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은 동일합니다. 모라토리엄은 돈을 빌린 국가나 지방정부가 상환할 의사가 있으니 채무 상환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디폴트는 이런 의사표현 없이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것으로 돈을 빌려준 채권자가 선언합니다. 보통 디폴트 상황이 예상되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2년 멕시코 브라질 등의 중남미 국가, 1998년 러시아, 2009년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등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크래머 전무는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6월 IMF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것보다 이달 20일 ECB에 채무 67억유로 상환에 실패하는 것을 더 우려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그리스에 유동성(돈)을 공급해왔던 ECB마저 돌아선다면 그리스 내에 돈이 말라버릴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는 디폴트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20일 전까지 그리스와 채권단이 현 상황을 뒤집을 만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세계가 그리스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끝) /suji@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