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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희 "질리지 않게 90세까지만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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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운 한경 텐아시아 기자) 5년 전, 2010년 칸 영화제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한 편의 한국 영화가 큰 화제를 모았다. 바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이다. 그리고 서영희는 잔혹한 핏빛 복수로 섬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 복남 역을 맡아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거무스름한 얼굴과 무표정 그리고 낫을 든 영화 속 이미지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김복남’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뭔가 궁합이 안 맞은 탓인지 이후 선택한 작품에서 서영희의 모습은 다소 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2015년. 서영희는 다시 한 번 프랑스 칸 비치를 다녀왔다. 이번에도 서영희는 강렬했다.

‘마돈나’에서 서영희가 연기한 해림은 ‘김복남’의 복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정적인 캐릭터인 데다가 감정의 변화도 크지 않다. 그렇다고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담담하게 마돈나라는 별명을 가진 미나(권소현)의 뒤를 추적하고, 그 사연을 관객에게 전하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강렬함은 전혀 뒤지지 않았다. 5년 만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한 서영희를 만났다.

Q. 2010년 ‘김복남’으로, 이번에 ‘마돈나’로 칸에 다녀왔다. 그때와 지금, 5년의 격차인데 어떤 기분이었나.
서영희 : 처음에는 칸은 어떤 곳일까 기대에 부풀었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멋지게 많은 일을 하고 올까 생각했다. 걱정도 조금 있었지만, 엄청나게 좋았다.

Q. ‘김복남’도, ‘마돈나’도 강렬하다. 뭔가 궁합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다른 작품에 비해 서영희란 배우의 진가가 잘 드러났다. 분명 쉽게 선택할만한 작품은 아니지 않나.
서영희 : 내가 선택했는데 잘 맞으면 다행이다. 아무래도 이야깃거리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선택하는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받으면 당연히 제목부터 보일 텐데,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서영희 : 시나리오니까 당연히 진짜 마돈나 이야기가 아니란 알고. (웃음) 왜 마돈나지, 궁금증이 생기더라. 영화 보는 사람들도 똑같은 궁금증을 가질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펼쳤던 것 같다.

Q. 그러고 나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어땠나.
서영희 : 읽고 나서는 정말 안타까웠고, 기분이 안 좋았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만들 수가 있지 싶더라. 이처럼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건 시나리오를 엄청나게 잘 쓴 거다. 이 기분을 내가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뒤 ‘마돈나’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했나.
서영희 : 어렵지 않은 영화. (웃음) 불편하긴 한데 그 불편함이 쉽게 이해되고, 뭔가 극한 상황인데도 마찬가지로 이해가 쉽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일은 아니지만, 내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대입도 되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께서 영화를 쉽게 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쉽지 않은 영화가 될 거란 생각은 있었을 것 같다.
서영희 : 그동안 작품에서 표현하는 쪽의 캐릭터를 했다면, 그와 반대로 감추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해림은 딱이었다. 이 정도는 노력하면 될 것 같았고, 도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Q. 노력했더니 원하는 것만큼 됐나.
서영희 : 쉽진 않았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 그 와중에 한마디 내뱉는 게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를 해도 음의 높낮이나 뉘앙스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그거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Q. 언론시사회 때 아직도 잘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방금 말한 그런 이유 때문인가.
서영희 : 어색한 내 모습이 걱정돼 앓는 소리를 했던 거다. 이미 잘했어야지 다 찍고 나서 걱정한다고 다르게 봐주는 것도 아니고. (웃음) 이전과는 다른 역할이어서 조금 걱정됐던 부분이다. 스스로 만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의 맥을 끊지 않았다고 말씀들 해주셔서 다행이다.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쉬움이 생겨서 이야기한 거다. 영화에 대한 걱정은 없다. 다시 보니까 영화가 의도하는 게 이런 거였다고 답을 들은 것 같다. 감독님이 대단한 분인 것 같다.

Q. 해림은 어떤 여자인가. 해림에 대한 전사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을 것 같다.
서영희 : 부모님 보호 속에서 아름답게 살아온 것 같진 않다. 사는 방을 봤을 때 혼자 산 지 꽤 됐을 것 같고, 간호조무사 일도 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사랑해서 가진 아이였는데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 것 같아 강에 버린다. 그러므로 아픔과 고통은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를 그렇게 할 정도라면, 제정신으로는 있지 않을 것 같다.

Q. 관객들은 서영희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분명 따라가는 건 됐는데, 아무래도 보이는 게 많지 않다 보니까 조금 답답한 면도 있더라. 연기하면서는 그런 답답함은 없었나.
서영희 : 그 답답함은 감정을 어디까지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거다. 보이면 오버 같고, 너무 안 보이면 아무도 내 시선을 쫓아 올 것 같지 않았다. 그게 어려웠다. 극 중 해림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일 것 같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서까지 살 형편도 아니고. 그러니까 더 어려웠다. 또 미나의 이야기가 궁금한데 나로 인해 점프 되곤 한다. 끊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Q. 신수원 감독은 그런 지점에서 미안해하더라. 정적인 인물이라서 감정선 대로 찍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서영희 : 어느 영화든 감정선 대로 찍을 순 없다. 그건 배우의 몫이다. 그걸 좀 더 완벽하게, 순서대로 찍은 것처럼 속아 넘어가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아쉬움이다.

Q. 그런 감정 표현 부분에서는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했겠다.
서영희 : 감독님이 더 힘들었을 거다. 감독님은 원하는 선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선에서 달라지면 그것도 포기하지 않고 끌어가려고 했다. 아니다 싶으면 그냥 커트하면 되는 데 그거까지 인정해주시는 거다. 그렇게 한 번 더 고민해주고, 상의해 나가면서 맞춰갔다. 나는 그렇게 연기하면 끝이지만, 감독님은 그 후에도 고민해야 했으니까 더 힘들었을 거다.

Q. 어느 순간에는 해림과 미나는 한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영희 : 맞다. 그래서 전사가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미나에 공감하는 해림을 보면서 미나와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경로로 살아왔을 것 같다.

Q. 여자로서 미나를 바라봤을 때 어떤 느낌이 드나.
서영희 : 저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해서는 100%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런데 알고 싶진 않은 마음이다. 공감한다고 얘기하면, 왠지 나도 그렇게 보일까 봐. 그래서 이해하면서 입으로는 오히려 ‘왜 저렇게 바보같이 살아’라고 반대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Q. 미나 역을 맡은 권소현에게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련한 서영희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을 것 같다. 권소현도 많이 의지했을 것 같고.
서영희 : 내가 도움을 받았다. 워낙 잘하고, 준비를 많이 했다. 감독님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처음 영화 찍었을 때 여성 감독님이었다. 그때 추억이 생각나기도 했고. 당시 감독님이 카메라가 뭔지 모르는 나를 끌고 다니면서 수다도 떨고, 연습도 시켜주시곤 했다. 그때 기억이 나면서 샘도 났고. (웃음) 여하튼 잘할 것으로 보였는데 첫 촬영 놀러 가서 보니까 역시나 잘하더라. 그래서 ‘적당히 해’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Q. 아무래도 영화 현장이 처음이니까 어색한 게 있었을 거다. 그럴 때 의지할 수도 있는 거고.
서영희 : 의지가 되진 못했다. 이야기도 많이 못 들어주고. 서로 만나는 신이 별로 없다. 그래서 촬영장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Q. 한편으론 서영희가 미나를 연기했어도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서영희 : 책을 읽으면서 마돈나는 누가 봐도 탐내겠더라. 근데 누가 봐도 탐내겠다는 거지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김복남’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걸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해림이 더 욕심났다.

Q. 겉으로 표출하는 미나 보다 정적인 모습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해림이 표현하기엔 더 어려운 거 아닌가.
서영희 :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에는 단 한마디로 영화를 끌어갈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기도 하다. 또 반대로 완전히 밖으로 표출해서 시원하게 해소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근데 이거 하면 저게 욕심나고 그렇다. 둘 다 잘하고 싶으니까.

Q. 신수원 감독이 그런 서영희를 높게 평가하더라. 영화를 위해 자기를 던지는 배우라고. 작품 들어가기 전에 머리를 잘랐으면 좋겠다는 말에 바로 싹둑 잘랐다는 이야기도 하더라.
서영희 : (머리는) 벌써 이렇게 자랐다. (웃음) 연기가 문제지. ‘김복남’ 때는 인공 선탠을 다녔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낮 12시 즈음에 돗자리 들고, 옥상에 올라가 뙤약볕에 10분 누워있었다. 그런데 정말 완성 새까매졌다. 돈 주고 태닝할 필요가 없었다. 단점은 그 뒤로 돌아오지 않더라. (웃음)

Q. 이번 작품을 위해 나를 던진 게 있나.
서영희 : 감독님께서 얼굴에 로션도 바르지 말고, 머릿결이 너무 찰랑찰랑 윤이 나는 것 같으니까 빨랫비누로 감으라고 하더라. 해림과 윤기는 어색한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디테일이 영화는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자르라는 것도 이해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겠지. 그런데 이를 빼라고 하면 그건 못 빼겠다. (웃음) 과한 건 못하겠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일 뿐이다.

Q.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 처절한데 그래도 뭔가 결말은 희망적이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도 하고, 해림 역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서영희 : 새 생명이 태어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은,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해림 역시 다른 정류장에 내리면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Q. 해림은 미나의 아이를 지키지만, 자신의 아이는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 몰래 아이를 낳고 버리는 매정한 해림을 연기할 땐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서영희 : 힘들긴 했다. 그 촬영을 제일 마지막에 했다. 영화 전체 마지막 날. 처음 촬영했다면 죄책감 같은 마음이 생겨도 촬영을 해나가면서 버리고 갔을 거다. 그런데 마지막 날 촬영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너무 힘든 거다. 이렇게까지 잔인할 거라곤 생각 못 했다. 며칠 동안 악몽을 꿨다. 촬영장소도 시화호였다. 정말 음산한 분위기는 최고였다.

Q. ‘김복남‘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사실 그 뒤로는 그만큼의 강렬함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 다시 ‘마돈나‘로 그에 못지않은 인상을 심었다.
서영희 : 생각대로 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바로바로 인정해주시면 그다음에 어떻게 하나, 텀이 있어야지. (웃음) 강한 인상을 남기면 비슷한 게 많이 들어온다. 그래서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갔다. 또 ‘추격자’ 이후부터 남자 투톱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도 좋은 시간 잘 보냈고, 결국 ‘김복남’을 보시고 연락을 받은 거니까 헛된 시간은 아닌 것 같다. 매번 좋은 작품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나, 이건 운이 좋아야 하는 거다. 운이 맞아 떨어지는 데 몇 년이 걸린 거다. 몇 년이면 빠르지. (웃음)

Q. 서영희는 어떤 배우를 꿈꾸는 건가. 어떤 지점이 있을 건데.
서영희 : 지점은 90세고요.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웃음) 조금씩 조금씩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질리지 않게. 매번 똑같아, 이런 이야기가 끝인 것 같다. 그래서 뭐든 변화는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Q. 그런 점에서 ‘마돈나’가 서영희에게 주는 의미는 꽤 크겠다.
서영희 : 그래도 비스듬히 간 것 같다. 영화가 좋으니까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누구 하나 눈에 거슬린다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느끼면 영화 전체가 망가진다. 그게 내가 될까 걱정됐는데 그래도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나 보다 생각하게 됐다.

Q. ‘마돈나’가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나.
서영희 : 영화 전체로 인정받고, 배우로서 인정받는 게 최고다. 좋은 평 받기 시작했으니까 마지막까지 좋은 평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인생의 영화’까지는 바라진 않지만,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