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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부가 반갑지 않은 대학 도서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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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 25일 중앙대 커뮤니티에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졸업생 A씨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A씨는 지난달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르는 참에 10만원 상당의 미국 대학원 출판 서적을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고자 도서관을 찾았다고 합니다. “과거 학교를 다닐 때 이 책을 구하기 힘들어 고생했던 경험이 떠올라 무겁지만 미국에서부터 들고 왔다”고 A씨는 기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직원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습니다. 기부 절차를 문의하는 A씨에게 “중복 서적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오세요! 교수님이 줬건, 총장님이 줬건 중복서적이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립니다”라고 답한 것이지요. A씨가 급히 중복도서 여부를 검색해 확인 후 없다고 말하자 직원은 한숨을 푹 쉬고 인상을 찡그리면서 “기부자 이름이나 연락처 이런 건 적을 필요 없고요, 저기 모퉁이에 놔두고 가세요”라고 말했답니다.

A씨는 “책을 가져온 건 엄청 대단한 기부를 해서 제 이름을 남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후배들과 모교를 위해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다”면서 “당시 직원의 그런 반응을 보고 괜한 일을 벌렸나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도서관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니 아직 본인이 기부한 책이 등록이 안 돼 있다는 걸 확인한 A씨는 “벌써 버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저는 교수님도 아니고 총장님도 아니니 더 쉽게 버렸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A씨가 겪은 일에 대해 중앙대 도서관 측은 “기증되는 모든 도서는 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고 있다”며 “기증도서를 모퉁이에 놔두고 가라고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책을 기부하려고 갔다가 A씨처럼 도서관 직원의 쌀쌀맞은 태도에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일이 앞으론 더 많이 발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 도서관들이 장서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점점 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지난 3월 조사에 따르면 국내 대학 도서관의 재학생 1인당 대출도서는 2012년 9.6권에서 지난해 7.8권으로 3년째 감소했습니다. 또 재학생 10명 중 4명은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도 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고요.

반면 전자책과 학술저널 등 전자자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국내 대학 도서관의 자료구입비 2467억원 중 전자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1%에 이르렀습니다.

점점 더 많은 예산을 전자자료 확보에 쏟아야 하는 대학 도서관들로서는 이용률은 낮은데 자꾸 불어나는 종이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최근 시진핑 중국 주석으로부터 1만여권(2000종)의 ‘시진핑 콜렉션’을 기증받은 서울대 도서관도 점점 불어나는 종이책에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 도서관 관계자는 “같은 책이 5권씩 있는 만큼 2권 정도는 학내 분관이나 학과 자료실에 보관을 맡기려고 하는데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ohj@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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