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리와 QM3 같은 소형 SUV의 인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실적도 SUV 판매량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정도다. 올 1~5월까지 국내 자동차 누적 판매량(출고량 기준)은 총 60만1346대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승용차 내수는 1.7% 늘었는데, 차종별로 살펴보면 SUV가 전년 동기 대비 20.7%, 미니밴(CDV)이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87% 늘며 내수 시장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한 달간의 실적만 놓고 보면 SUV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28.2%나 늘면서 승용차 판매를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SUV 판매량에 울고 웃는 완성차 업체
반면 경차에서 대형에 이르는 일반 승용차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SUV나 CDV가 아니었다면 국내 완성차 업계의 승용차 판매 실적은 마이너스로 떨어졌을 것이다. 올 1~5월 전체 SUV 차량의 누적 판매량은 16만4632대로, 2위를 차지한 소형 승용차 판매량(7만6388대)을 2배 가까이 앞질렀다.
SUV, 특히 배기량 2000cc 이하의 중소형 SUV의 인기는 업체의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티볼리를 앞세운 쌍용차는 올 1~5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3만6990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912대나 늘었다. QM3로 재미를 보고 있는 르노삼성도 1~5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3만507대인데,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045대가 늘어난 실적이다.
중소형 SUV 라인업으로 캡티바와 트랙스를 갖추고 있는 한국지엠은 5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이 5만9124대로 3위 그룹을 여전히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기간의 2014년 실적(5만9814대)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690대가 줄었다.
한국지엠의 주력 차종은 단연 경차 모델인 스파크다. 5월 현재 한국지엠의 전체 판매량 중 스파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32.7%에 달한다. 반면 티볼리·QM3의 경쟁 모델인 트랙스는 7.5%에 불과하다. 쌍용차는 티볼리가 전체 판매량의 44.3%, 르노삼성은 QM3가 33.6%(각각 5월 기준)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SUV의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을 감안한다면 ‘쌍용차·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의 격차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범위를 중소형 SUV 차량으로만 좁히면 판매량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올 1~4월간 완성차 업체별 중소형 판매량을 살펴보면 예상대로 현대·기아차가 6만9274대로 부동의 1위다. 눈에 띄는 건 2위에 오른 쌍용차다. 쌍용차는 2만7059대의 중소형 SUV를 팔아 치워 한국지엠을 넘어섰다. 쌍용차의 이 같은 실적은 기아차의 판매량인 3만1323대에 비해 불과 4264대가 부족한 실적이다. 이어 르노삼성이 7916대의 중소형 SUV를 팔아 3위에 올랐고 한국지엠은 5398대로 4위로 내려앉았다. 중소형 SUV 판매량만 놓고 보면 업계 판도가 현대·기아차-쌍용차-르노삼성-한국지엠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수출 실적도 SUV가 견인하고 있다. 올 5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1% 감소한 24만6093대를 기록했다. 엔화와 유로화의 약세, 여기에 러시아·브라질 등 신흥 시장의 수요 위축이 겹치면서 국내 자동차 수출은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진 상황이다. 이 가운데 단연 주목할 기업은 르노삼성이다. 올 1~5월까지의 누적 수출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87.3%나 성장해 ‘나 홀로’ 호황을 기록한 것이다. 르노삼성은 SM3의 중국 수출 및 닛산의 위탁 생산차인 ‘로그’의 미국 수출에 힘입어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쌍용차는 그동안 ‘SUV의 명가’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며 처참한 실패를 거듭해 왔다. 2002년 렉스턴이 ‘대한민국 1%’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전성기를 맞은 것을 끝으로 카이런·액티언·로디우스 등이 잇달아 실패하며 위기를 맞았다. 그 사이 회사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서 인도의 마힌드라로 주인이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 이에 더해 77일간의 ‘옥쇄 파업’과 그에 따른 후유증은 한 기업이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회사의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티볼리, 쌍용차 ‘SUV 명가’ 재건 나서다
공교롭게도 ‘실패 3부작’은 모두 상하이자동차 시절 출시된 차량들이다. 디자인·성능·효율 면에서 타사의 경쟁 차에 뒤처지기 시작하자 시장에선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코란도·무쏘·렉스턴으로 SUV의 자존심을 지켰던 쌍용의 명성은 어느새 ‘디자인과 품질이 떨어지는 차’라는 인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반등의 계기는 마힌드라 인수 이후 개발된 코란도C였다. 2007년 개발에 들어갔지만 파업 여파로 애초 계획보다 9개월이나 늦은 2011년에야 출시됐다. 그 사이 현대차는 투싼과 스포티지R로 시장을 선점한 터였다.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각종 편의 장치 등을 보완한 뉴코란도C는 2013년 8월에서야 나왔다.
2011년 이후 월 1200여 대 판매에 그쳤던 코란도C는 뉴코란도C가 나온 2018년 8월부터 월 2000여 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실패 3부작의 월 300여 대 판매와 비교하면 비로소 반등의 분위기를 타게 된 것이다.
티볼리는 쌍용차가 2001년 인도의 마힌드라를 새 주인으로 맞은 이후 출시된 첫 차다. 쌍용차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미출고 물량(계약 후 인도받지 못한 물량)만 4000여 대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투 톤 컬러는 40일, 원 톤 컬러도 1개월 정도를 기다려야 신차를 구입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 평택의 쌍용차 공장에서 가동 중인 조립 라인은 모두 3개다. 티볼리는 코란도C와 함께 1라인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공장 내에서 유일하게 주야간 2교대로 24시간 풀타임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티볼리는 쌍용차가 창사 이후 처음 시도한 2000cc 이하 소형 SUV다. 업계에선 ‘B세그먼트’로 불리는데 QM3·트랙스·푸조 2008 등이 경쟁 차종이다. 사실 국내 소형 SUV 시장은 2013년 초 출시된 트랙스와 같은 해 말에 등장한 QM3가 선점하고 있었다. 쌍용차도 2011년 마힌드라 인수 직후부터 소형 SUV 개발에 들어갔다. 부품을 수입한 후 국내에서 조립하거나(트랙스), 100% 수입하는(QM3) 경쟁 차에 비해 출시 시기가 늦어진 이유다.
여성 고객 감성 잡은 QM3
티볼리는 엔진 개발부터 차체 설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100% 쌍용차의 독자 기술로 이뤄졌다. 확실한 강자가 없던 국내 소형 SUV 시장에서 쌍용차가 작심하고 만든 티볼리는 디자인부터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동급 최고 수준인 423리터의 트렁크, 6가지 컬러로 변하는 클러스터, 포스코와 협력한 초고강력 강판 사용(72%) 등은 스타일리시한 개성을 찾던 2030세대에게 크게 어필했다.
티볼리는 출시 직후인 1~3월까지 월 2500여 대가 판매됐고 4월 들어서는 3000대를 넘어서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 같은 실적은 과거 렉스턴이 쌍용차의 연간 판매량 16만 대 중 6만 대를 차지하던 시절과 비슷한 추세다. 곽용석 쌍용차 홍보팀장은 “오는 7월에 디젤 모델, 내년 초에 롱 보디 모델이 출시되면 다양한 라인업을 통해 상승세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QM3는 성장 정체에 직면했던 르노삼성의 탈출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르노삼성은 2011년과 2012년 연속으로 2000억 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1년 9월 프랑수아 프로보 사장 부임 직후 수립된 ‘리바이벌 플랜’은 2012년 단행한 800여 명의 희망퇴직, 환율 영향 탈피를 위한 부품 국산화, 차별화된 제품 출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영 여건상 완전히 새로운 신차 출시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들여온 모델이 바로 QM3였다. 2013년 11월 국내에 처음 등장한 QM3는 이미 스페인에서 ‘캡처’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이정국 르노삼성 홍보팀장은 “출시 초기만 해도 연간 8000대만 판매돼도 다행이라고 여겼다”며 “지난해 1만8000대가 팔리며 국내 소형 SUV 시장을 선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은 QM3의 흥행, SM3 네오·SM5와 SM7 노바 시리즈의 패밀리 룩 변경 등을 통해 2014년으로 예정돼 있던 리바이벌 플랜을 1년이나 앞당겨 졸업하는 성과를 거뒀다.
QM3는 르노닛산의 글로벌 체인을 십분 활용한 사례다. 내년 중 중형 세단과 SUV를 새로 선보일 예정인 르노삼성은 그 사이 간극을 채워 줄 신차 출시가 필요했고 소형 SUV가 대세라는 판단을 통해 QM3 수입을 전격 결정했다. 독자 개발 신차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스페인의 낮은 인건비를 통해 생산된 ‘캡처’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었다.
QM3는 최근 선보인 국내 차량 중 ‘연비’와 ‘디자인’이라는 중심 트렌드를 모두 확보한 모델로 평가된다. 18.5km의 연비는 국내 SUV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유럽 모델답게 유려한 디자인은 젊은층, 특히 여성 고객들을 만족시켰다는 평가다.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QM3는 지난해 누적 판매량 2만5000대를 달성했고 지난 4월 5월 연이어 2000대 이상을 판매했다. 작년 11~12월 3000대 판매 돌파 이후 연초 들어 주춤했던 실적을 다시 끌어올리며 반등의 분위기를 타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 공장은 작년 10월부터 주야 잔업과 토요 특근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모처럼 공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100% 북미 지역으로 수출되는 닛산 ‘로그’다. 2500cc급 중대형 SUV인 로그는 르노삼성 부산 공장에서 생산돼 닛산의 이름으로 미국 등에서 판매된다. QM3와는 반대의 경우로, 이 역시 닛산의 글로벌 체인이 시너지를 낸 것이다.
QM3의 국내 수입·판매와 르노삼성의 로그 수출은 르노·닛산·르노삼성 등 그룹 계열사 간의 모범 시너지 사례로 선정돼 지난 4월 르노그룹 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450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르노삼성은 지난해 1475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르노삼성은 현재 직영점과 대리점 판매 사원을 포함해 1900명 수준인 영업 인력도 올해 안에 2000명까지 늘릴 방침이다.
기존 강자들 반격 만만치 않아
쌍용차와 르노삼성이 티볼리와 QM3를 통해 ‘만년 3위’ 탈출에 시동을 걸었지만 시장 상황이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지난 5월 “티볼리 수요가 예상보다 급증하고 있다”며 “올해 판매 목표를 6만 대로 올려 잡았다”고 밝혔다. 쌍용차가 티볼리를 출시 직후 밝혔던 연간 판매 목표 3만8000와 비교해 65%나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내수 시장의 선전과 달리 수출은 여의치 않다. 특히 쌍용차가 공을 들여온 러시아 시장의 침체가 뼈아프다. 러시아는 쌍용차가 연간 3만 대 이상을 수출하던 주력 시장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이어진 서방의 제재와 루블화 폭락으로 올 들어 러시아 수출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티볼리의 선전이 반갑기는 하지만 ‘쏠림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현재 쌍용차가 생산·판매하는 차종은 모두 7개다. 이 중 티볼리의 판매량이 40%를 웃도는 상황이다.
더욱이 티볼리는 판매 단가가 가장 낮은 모델이다. 지난해까지 쌍용차 판매의 주축이었던 코란도 시리즈(코란도 스포츠·뉴코란도C·코란도 투리스모)는 모두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 이상 판매량이 줄었다. 쌍용차는 올 1분기에 영업 손실 342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억 원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기존 강자들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현대차는 지난 5월 한 달간 모두 38만9229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6.4% 감소한 실적이다. 내수는 더욱 부진해 전년 대비 8.2% 포인트 떨어졌다. 그나마 현대차의 부진을 상쇄해 준 모델이 ‘올뉴투싼’이었다.
올뉴투싼은 현대차가 2009년 선보인 ‘투싼ix’에 이어 6년 만에 내놓은 3세대 모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R2.0 디젤엔진 외에 다운사이징 엔진 모델인 U2 1.7 디젤엔진을 따로 선보였다는 점이다. 티볼리와 QM3, 트랙스가 주도하고 있는 국내 소형 SUV 시장에 업계 1위인 현대차가 가세했다는 뜻이다. 올뉴투싼은 513리터의 트렁크 용량으로 티볼리를 뛰어넘었고 연비 면에서도 15.6km(1.7 디젤 기준)의 준수한 스펙을 갖췄다.
올뉴투싼은 출시 직후인 3월에 2895대가 팔렸고 4월에는 8637대, 5월 7270대가 판매되며 현대차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는 효자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