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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가’ 홈플러스 인수전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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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성공 신화’서 7조 원대 매물로…사모 펀드 인수 후 분할 매각 유력

(이현주 한경비즈니스 기자) 소문만 무성했던 국내 2위 대형 마트 홈플러스의 매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예상 거래 규모만 7조 원 이상으로 국내 인수·합병(M&A) 사례 중 최고가에 해당한다. 100% 지분을 쥔 영국 테스코 본사 자금난의 구원투수로 홈플러스가 낙점되면서 이르면 7월 중 예비 입찰을 시행할 예정이다. 외국계 기업으로 성공한 유일한 대형 마트이자 한국형 성공 모델을 역수출한 홈플러스를 품을 새 주인은 누가 될까. 업계의 판을 바꿀 빅딜이라는 시각과 성장 한계를 맞은 대형 마트 시장의 단면이라는 시각 사이에서 홈플러스는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홈플러스가 걸어온 길과 펼쳐질 매각 시나리오를 하나씩 짚어본다.

홈플러스가 본격적인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매각설에 휩싸였지만 이번엔 예전과 달리 구체적이다. 소문의 근원지는 투자은행(IB) 업계다. 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지분 100%를 보유한 영국 최대 유통 업체인 테스코는 최근 매각 주간사로 홍콩상하이은행(HSBC)을 선정하고 세계 유통 회사와 사모 펀드(PEF) 운용사들에 한국 자회사인 홈플러스 매각을 위한 투자 안내문을 보냈다. 이르면 오는 7월 예비 입찰을 시행하고 연내 새로운 주인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다.

매각설이 현실화된 배경은 테스코의 실적 악화가 자리한다. 2007년 5월 처음 홈플러스 매각 이슈가 불거진 때와는 테스코 본사의 사정이 사뭇 다르다. 테스코는 지난 4월 실적 발표에서 2014년 기준 64억 파운드(약 11조 원)의 손실을 기록해 창사 96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 대규모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난 뒤 신용 등급 하락과 은행의 차입금 상환 압박을 받아 10조~15조 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자산 매각을 추진 중인데, 급성장하고 있는 태국 시장을 뒤로하고 한국의 홈플러스가 선택됐다.

홈플러스는 테스코 해외 사업 중 최대 성공을 거둔 곳이다. 앞서 일본(2012년)과 미국(2013년)에서는 사업에 실패해 철수했고 중국에서도 한 차례 철수 후 다시 진입해 고전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선 승승장구했다.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7조 원에서 최대 10조 원까지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먼저 홈플러스의 역사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홈플러스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물산이 1997년 대구에 첫 점포를 낸 것이 뿌리다. 이어 1999년 영국 최대 유통 업체인 테스코가 삼성물산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홈플러스로 출범했다. 단 두 개의 매장이 전부였다.

그로부터 16년 후 홈플러스는 전국 대형 마트 140개와 슈퍼마켓 370개를 가지고 있는 업계 2위로 올라섰다. 홈플러스는 이마트(1993년)·까르푸(1996년)·월마트(1998년)·롯데마트(1998년) 등에 비해 업계 후발 주자로 출발했지만 빠른 성장을 거듭해 왔다. 12위에서 불과 3년 6개월 만에 2위를 차지하고 업계 최단기 매출 1조·2조·3조 기록을 갈아치웠다. 10년 만에 10조 원의 매출을 기록해 ‘10-10 신화’로 불렸다. 2008년에는 이랜드가 운영하던 홈에버를 인수해 홈플러스 테스코를 출범하기도 했다.


영국 테스코 본사의 실적 악화가 배경
홈플러스가 세운 최초 기록도 적지 않다. 1999년 당시 기존의 창고형 마트 일색이던 국내 유통 업계에 2세대 마트인 ‘밸류스토어(Value Store:가치점)’ 개념을 도입해 원스톱 쇼핑 서비스에 원스톱 생활 서비스를 제공한 게 대표적이다. 매장 분위기를 백화점 수준으로 고급화하고 국내 마트 최초로 무빙워크(자동 보행로)를 설치했으며 4~5m에 달하던 기존 창고형 판매대 높이도 2.2m로 낮췄다. 또한 세계 최초로 마트에 문화센터도 입점시켜 동종 업계의 벤치마킹 사례가 됐다. 점포당 매출 1위, 면적당 매출 1위의 기록도 세웠다.

홈플러스는 외국계 기업으로 성공한 유일한 대형 마트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마트·까르푸와 같은 세계 굴지의 업체들이 한국에서 철수하며 외국계 마트의 ‘지뢰밭’으로 불리던 곳에서의 성공이다. 테스코로서는 미국과 프랑스 기업이 해내지 못한 곳에서 영국이 홀로 살아남은 셈이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 초대 회장인 이승한 회장은 영국에서 귀빈 대접을 받았고 영국 기사단 훈장인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CBE)’을 받기도 했다. 사례 연구가 해외 저널에 실리고 경영학 수업에서 단골 연구 주제가 됐다.

한국형 모델을 영국 본사에 역수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홈플러스의 유통 노하우가 영국 테스코에 전수돼 다시 세계로 확산된 사례다. 2005년 영국 테스코는 영국 맨체스터 인근에 가정용품·주방용품·전자제품·의류·액세서리 등 식품을 제외한 비식품 전문 매장을 오픈하면서 ‘테스코 홈플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상호뿐만 아니라 상품 관리 시스템, 매장 구성 등 한국의 경영 방식을 받아들였다. 2013년에도 홈플러스가 먼저 시도한 가상 스토어(바코드를 찍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스크린)를 영국 개트윅공항에 오픈한 바 있다.

단기간에 홈플러스가 국내 대형 마트의 강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홈플러스는 선진 글로벌 기술과 유통 노하우는 받아들이되 영업·마케팅·개발 등은 모두 한국 고객에 맞추는 ‘글로컬(글로벌+로컬라이제이션) 경영’을 제1 원칙으로 삼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직도 홈플러스가 영국계 기업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현지 업체와의 합작법인으로 삼성이라는 한국 최고 기업 브랜드를 업고 사명도 테스코를 지우는 한편 지분도 조금씩 단계적으로 늘려 가는 식으로 준비된 성공을 했다”고 말했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인력도 한국인을 채용해 전권을 부여했다. 현재 테스코는 이와 같은 한국의 성공 모델을 중국 시장에 다시 적용하고 있다.

시장 진출 타이밍도 좋았다. 홈플러스가 사업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약 10년 이상 대형 마트의 폭발적인 성장 시기였다. 테스코가 일본 시장에 진출했을 때 이미 경기 하강 국면에 접어든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홈플러스는 다른 대형 마트와 달리 대구 및 경상권에서 시작해 점차 수도권으로 매장을 집중해 왔다. 땅값이 저렴한 지방에서 매장의 크기를 확 늘리고 문화 센터나 백화점 등의 포맷으로 운영하며 차별화했다. 또한 2006년 월마트와 카르푸가 한국 시장을 떠난 자리에서 반사이익을 누린 점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전략적 투자자보다 재무적 투자자가 인수할 듯
이와 같은 업계 2위가 매물로 나왔다. 홈플러스발 업계 재편이 이뤄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2013년 말 기준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 ‘빅 3’는 각각 29.4%, 26.2%, 16.2%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홈플러스는 크게 홈플러스(주)·홈플러스테스코(전 홈에버)·홈플러스베이커리(제과·제빵) 등 세 개 회사로 이뤄져 있고 대형 마트 140개, 기업형 슈퍼마켓(홈플러스 익스프레스) 377개, 편의점(365플러스) 220개 매장을 갖고 있다. 이마트는 대형 마트 141개, 롯데마트는 115개를 보유하고 있다.

누가 인수하고 이에 따라 국내 유통시장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까. 먼저 전략적 투자자의 인수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업계 현재 1위, 3위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7조 원 덩치도 부담스럽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관계자 또한 인수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다. 이 밖에 물망에 오르는 곳은 농협이다. 하나로마트·클럽(대형 마트 32개를 포함해 2130개)을 가지고 있는 농협이 인수한다면 단숨에 대형 마트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공기업 특성상 추가 외형 확대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트 사업이 없는 현대백화점도 거론되고 있다. 독과점 이슈는 피해 가지만 인수 가격이 걸림돌이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은 유통 채널이 충분해 리바트나 한섬 같은 콘텐츠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편”이라며 “장부 가치(book value)가 3조5000억 원인데 두 배인 7조 원을 주고 인수할지는 의문이다. 만약 3조 원 이하로 떨어지면 부동산 자산을 노리고 유통 업체들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한 유통 업체 고위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특히 매장이 큰 편이어서 인수 이후 고정비가 많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 잘되면 좋지만 잘못 되면 굉장한 부담”이라며 “예전 까르푸나 홈에버 등 외국인 자본을 매각할 때 과점화나 노사 분규 등으로 잡음이 많았는데 경영자 관점에서 봤을 때 굳이 인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개별 업체보다 자금력이 있는 대형 사모 펀드(PEF)들의 인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칼라일·MBK파트너스·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KKR·IMM PE·미래에셋 PE 등 국내외 대형 PEF들이 인수 자문사를 선정하고 시중은행들과 인수·금융(M&A 자금 조달)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 4000여 개 매장을 보유한 중국 최대 유통회사인 뱅가드도 후보다.

사모 펀드가 인수한다면 홈플러스의 미래는 보다 명확하게 그려진다. 통상 3~5년 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후 재매각을 통한 시세 차익을 얻는 사모 펀드 특성을 고려할 때 두 가지 길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시장점유율 확대를 통해 성장성을 꾀하고 둘째, 수익성을 제고하며 현금 흐름과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다.

과거 사모 펀드에서 유통 업체를 인수한 사례는 코웨이가 대표적이다. 2013년 웅진코웨이를 1조2000억 원에 인수한 이후 렌털 사업 호조로 지난해 매출 2조 원대를 돌파했다. 2년 새 보유 지분 평가 차익만 8900억 원에 육박한다. 홈플러스는 정부 규제 등으로 신규 점포 확대 효과보다 비용 효율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여력이 높게 전망된다. 박종대 애널리스트는 “홈플러스가 주로 가격 인하를 통해 매출을 확대해 온 만큼 비용 효율화 여지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코웨이 또한 외형 확대보다 내부적인 비용 구조 개선으로 실적을 이끌어 왔다”며 “비효율 점포를 매각하면 마트 업계 경쟁이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를 쪼개서 팔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모 펀드가 인수한 뒤 대형 마트(홈플러스)와 슈퍼마켓(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부를 분할하거나 매장을 개별 단위로 쪼개 팔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면 기존 유통 업체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기존 유통 채널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매장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현재의 양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안승호 한국유통학회장(숭실대 교수)은 “어떤 식으로 팔리느냐가 중요하다. 점포가 잘 운영되면 좋지만 현재 홈플러스가 경영진이 바뀐 이후 내부 불안을 겪고 있기 때문에 점차 주인이 사라지는 상황이 되면 경쟁력을 잃고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살아나는 부동산 시장도 홈플러스 인수전과 무관하지 않다. 마트의 부동산 가치가 유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부동산 리츠 등의 수익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지혜 K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마트가 전반적으로 공급과잉에 와 있기 때문에 누가 인수하더라도 구조조정을 할 가능성이 높고 마트가 가지고 있는 토지나 건물을 다른 형태로 리뉴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홈플러스가 2012년 이후 8개 매장에 대해 세일즈앤드리스백(매각후 재임차)을 진행한 상태라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성장 정체 빠진 마트 업계의 고민
현재 유통 채널은 오프라인에서 모바일 기반 온라인으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또한 1인 가구의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대형 마트가 3~4인 이상의 오프라인 소비에 기반한 시장인 점은 수익성·성장성 둔화 우려로 이어진다. 반면 대형 마트의 매장 수는 줄지 않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선 더 강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여기에 정부 규제와 소비 감소 추세는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 3년간 대형 마트는 역성장해 왔다. 지난해 홈플러스(홈플러스+홈플러스테스코) 실적은 매출액 8조654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4% 감소했고 영업이익률은 2.1%로 1.2% 하락했다. 가장 큰 변화는 영업이익률의 하락이다. 2012년까지 5~6%대를 유지하던 영업이익률이 이후 2~3%대로 떨어졌다.

홈플러스 매각은 테스코의 실적 악화가 일차적 요인이지만 이면에는 대형 마트의 흥망성쇠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한때 20%씩 성장하던 시장은 성숙 단계에 들어섰고 소비 트렌드가 모바일 기반 온라인 시장으로 바뀌면서 대형 마트가 설 곳이 사라지고 있다. 양지혜 애널리스트는 “유통 흐름이 일본을 따라간다면 대형 마트나 백화점·쇼핑몰의 역할은 점차 작아지고 독립적인 콘텐츠 업체들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며 “공간보다 상품력으로 승부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 PB·PL 상품 강화 등으로 대형 마트들이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M&A 역사를 새로 쓸 최대 매물이 나왔지만 정작 업계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데는 대형 마트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와 같이 몸집을 키우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는 대형마트의 고민과 한계가 홈플러스 사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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