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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판의 괴짜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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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국제부 기자) 내년 11월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민주·공화 양당에서 16일 현재 벌써 16명의 후보가 나왔습니다. 미 언론들은 출마 대기자들까지 합하면 30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역대 최다 후보가 난립하는 선거전이 되는 것이죠. 후보들이 많다보니 개중에는 ‘괴짜’들도 있습니다.이들이 각 당 대통령 후보로 뽑힐 가능성은 적지만, 만만찮은 지지기반 때문에 경선판을 예상외의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어 주목됩니다.

그런 후보 중 하나가 16일(현지시간) 공화당 후보로 미국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이름을 딴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 내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그는 1988년부터 5차례 공화당 후보 경선 참여를 저울질했으나 정식으로 출마 선언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좌충우돌형 정치인이자, 방송인이기도 한 트럼프는 출마 선언과 동시에 미국 정부, 공화당의 다른 경선주자들, 외국 정부를 싸잡아 비난하며 ‘거친 입’을 다시 한번 과시했는데요.

그는 불법이민 문제에 대해 “멕시코인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 남쪽 국경에 거대한 방벽을 쌓겠으며 돈은 멕시코에게 내도록 하겠다”고 호언해 이웃 멕시코 정부의 신경을 자극했습니다.

또 이민법 개정을 통해 불법 이민자들의 합법적 정착을 추진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서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즉각 오바마의 불법 행정명령을 폐기하겠다”며 “나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골프장들을 갖고 있다. 그(오바마)가 하루 빨리 물러나 내 골프장에서 골프나 치기를 원한다”고 비꼬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미국이 어느새 동네북이 되었다. 중국도 이슬람 무장단체(IS)도 멕시코도 모두 미국을 때리고 있다”며 “미국을 다시 이기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는 말미에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요. “나는 정말 부자다. 나를 고용하면(대통령으로 뽑아주면) 신이 창조한 최고의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은 부동산, 현금, 채권을 합해 92억4000만달러(10조3386억원)에 달했다고 하는군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추정했던 41억달러(4조5875억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가 첫날부터 정신나간 소리를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의 지지율이 당내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만큼 앞으로 경선 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현재 공화당에서는 마르코 루비오 플로리다 상원의원과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포함해 총 12명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출마를 계획하는 잠재후보들까지 합하면 공화당에서만 20명은 될 것이란 추정입니다.

민주당에서는 자칭 사회주의자이면서, 무소속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4·버몬트)이 당내 여론조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11∼15일 보스턴 서폭대가 경선 첫 프라이머리가 열리는 뉴햄프셔주의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31%의 지지율로 1위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41%)을 10%포인트 차로 따라 붙었습니다. 잠룡으로 거론되는 조 바이든 부통령이 7%,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마틴 오맬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는 3%에 불과했습니다.

뉴햄프셔주는 2008년 경선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버락 오바마 당시 후보를 간발의 차로 꺾었던 곳입니다. 앞서 샌더스 의원은 이달 초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실시된 비공식 예비투표(스트로폴)에서도 41%의 지지를 얻어 49%인 클린턴 전 장관을 턱밑까지 추격한 바 있습니다. 이 때도 바이든 부통령과 오맬리 전 주지사는 각각 3%에 그쳤습니다.

미 언론들은 올 초만 해도 3~5%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이 지난 4월말 출마를 전후해 30%대로 급등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샌더스 의원은 민주·공화 양당 구도가 고착화돼 있는 미국 정치판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4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또 1912년 대선에서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유진 뎁스 이후 유일하게 미 의회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정치권에서 줄기차게 소득재분배를 외치고 있는 외골수로 통합니다. 대형 금융기관 해체와 국영 건강보험 도입, 무상 대학등록금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 등이 그의 공약들입니다.

성향은 자유주의적입니다.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고, 젊었을 때는 ‘버몬트 프리맨’이라는 지역신문에 변태적 성관계를 묘사한 에세이도 기고해 물의를 빚었다고 하는군요.

미 언론들은 샌더스 돌풍의 배경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미국인들의 자기 인식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2008년 미국인의 63%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같은 답이 올해 51%까지 떨어졌고, 반면 자신을 소외근로자 계층으로 보는 국민은 같은 기간 35%에서 48%로 늘었습니다. 미국인들의 박탈감이 커졌고, 이런 인식이 소득 재분배와 가진 자에 대한 규제를 외치는 샌더스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ps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