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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속의 경제史) 르네상스는 성의 보고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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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담·성풍속연구가) 르네상스가 육체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인간 인식의 지평에 떠오른 것은 유방이었다. 유방은 생명감의 상징이요,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줄 자체로도 인식됐다. 또 사실이 그렇다. 그것은 목적미의 대표적인 준거틀이기도 했다. 과연 목적미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분히 설명적이긴 하지만 하나의 논리적 아름다움이다. 당시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그림중에 임신한 여인이라는 주제를 빼놓을 수 없었다거나 유독 유방을 줄기차게 그렸던 것은 여성미의 남성과 다른 특질을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고자 하는 소박한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더 실제적인 이유가 있었다. 중세에서 그림은 애오라지 성화가 전부였다. 성당 벽면을 장식한다는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이 오랜기간 화가들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인간을 발견했을 때 이를 어디에 표현할 것인가가 숙제로 부상했다. 성과 속이 혼재하던 시절 그림은 모두 성화로만 그려져왔던 것이기에 이제 성화에 표현되는 인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도전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르네상스 자체보다도 더욱 유명한 미켈란젤로라고 한들 성화에 등장하는 인간의 표현양식을 둘러싸고 당시의 교회와 힘든 투쟁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엔 모든것이 그랬다. 낡은 미학은 종교와 덧칠이 되어 화가들의 새로운 발견물들과 대립했다. 그래서 타협의 산물로서 등장한 것이 아기예수에 젖을 먹이는 성모마리아였다. 오늘날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이 성화의 분명한 패턴은 화가들과 교회의 오랜 투쟁결과 탄생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부자들이 성화의 스폰서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심지어 어떤 부자는 애인의 얼굴을 성모마리아 얼굴에 그려줄 것을 화가들에게 주문했고 교인들 그리고 교회와 마찰을 빗기도 했다. 애인의 젖통을, 그리고 도톰하게 솟아오른 유방 그림을 성당의 벽면에 장식하고자 했던 당시 부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성모마리아가 아기예수에게 젖먹이는 장면을 굳이 거룩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원래 성과 속은 그리 분명한 경계로 구분돼 있지는 않다. 또 성(性)과 성(聖)의 구분 역시 그리 뚜렷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 종교에서 성의 문제는 곧 성(聖)의 문제이기도 했다는 것은 굳이 밀교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분명한 역사의 기록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패턴이다.

이것 역시 하나의 목적미였다. 돌아보면 유방이 목적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 현상의 하나일 것이다. 동물들에게 있어 유방은 성행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방이 상징이 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 있어서만이고 인간만이 유방을 애무하기를 즐기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만이 직립해 있다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할지도 모른다. 직립하기 때문에 엉덩이에 갈음하는 유방이 시각의 영역속에 부활해 오르고 르네상스라는 풍요의 시대를 앞두고 유방찬가가 울려퍼지게 된 것일테다.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