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협회는 이에 앞서 올 초부터 국토부에 관련 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3월에는 정식 공문을 통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지난 4월 초 “배송비를 명시한 9800원 이하 상품 배송은 위법 소지가 있지만 9800원 이상 무료 배송에 대해선 위법성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상품 가격이 9800원 이하일 때 2500원의 배송비를 따로 받는 로켓배송 서비스는 위법이지만 배송비를 따로 받지 않는 9800원 이상 제품의 배송 서비스에 대해서는 모호한 해석을 내린 것이다.
국토부의 유권해석이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쿠팡은 5월 26일 보도 자료를 통해 “앞으로 9800원 이상 제품에 대해서만 로켓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2500원의 배송비를 따로 받는 로켓배송은 위법하다는 국토부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다. 쿠팡 측은 9800원 미만 상품이 전체 거래량의 0.1%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수익 면에서 타격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쿠팡의 일보 후퇴로 사퇴가 일단락됐을까. 물류협회의 자세는 오히려 더욱 강경해졌다. 배송료의 유·무상 여부를 떠나 쿠팡의 배송 서비스 자체가 여전히 불법이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소송으로 가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물류협회 “흰색 번호판은 무조건 위법”
갈등의 핵심은 불법성 여부다. 현행법상 화물 운송은 영업용 차량에 한정돼 있다. ‘아·바·사·자·배’로 끝나는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만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쿠팡의 운송 차량은 모두 ‘흰색’ 번호판, 즉 자가용 화물 차량이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제56조 2항은 자가용 화물자동차를 사용한 운송 사업을 금지하고 있다. 물류협회 측이 쿠팡의 로켓배송을 불법으로 보는 근거다.
쿠팡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직접 사들인 물건, 즉 자사의 제품이기 때문에 이를 고객에게 배송하는 것을 택배 사업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현행법은 화물자동차 운송 사업의 정의를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응해 화물자동차를 사용해 화물을 유상으로 운송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쿠팡은 바로 이 ‘유상으로 운송하지 않는다’는 조문에 방점을 두고 있다. 9800원 이상의 제품을 무료로 배송해 주는 고객 서비스일 뿐이지 기존의 택배 사업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동네 슈퍼마켓의 배달 서비스와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같은 법조문에 대해 물류협회의 해석은 완전히 다르다. 물류협회는 ‘다른 사람의 요구에 의해’라는 규정만 보더라도 쿠팡의 운송 행위가 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로켓배송은 시장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쿠팡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지난해 이미 1500억 원을 투자해 1000명의 배송 운전사(쿠팡맨)와 차량을 확보한 쿠팡은 위법성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올해도 투자 확대 전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쿠팡은 올 7월까지 800명의 쿠팡맨을 새로 채용할 계획이고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올해도 이어 갈 방침이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남기거나 경비실에 보관해 둔 상품의 인증 샷을 보내 주는 등 운전사들의 친절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쿠팡의 지난해 영업 실적은 마이너스 1200억 원에 달했다. 로켓배송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없었다면 흑자 전환도 가능했다는 뜻이다. 쿠팡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로켓배송을 통한 고객 유입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물류협회로 대표되는 기존 택배 업체들의 강경 대응에도 근거는 있다. 사실 4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이커머스 시장과 비교해 3500억 원대 매출에 불과한 쿠팡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기존 택배 업체가 받는 타격이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류협회가 ‘소송 불사’를 외치는 것은 로켓배송 서비스가 택배 시장 전체를 교란할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업용 번호판 값 1000만 원대
현재 홈쇼핑, 오픈마켓, 대형 양판점, 대형 마트, 백화점 등 한국의 모든 유통 채널은 법적으로 허가 받은 화물 운송 업체와 계약해 상품을 배송하고 있다. ‘○○마트’ 로고가 박힌 배송 차량이라고 해도 해당 마트 소속 차량이 아니라 따로 허가를 받은 영업용 차량이라는 의미다. 흔히 말하는 독립 지입 차량이다. ‘○○마트’는 유통 사업자이지 운송 사업자가 아니기 때문에 ‘흰색’ 번호판을 단 차량을 보유해 화물 배송에 나설 수 없다.
예외 사례도 있다. ‘농어민’이나 ‘1차 제조사’가 자신이 생산한 물건을 판매장(예를 들어 가전제품 대리점이나 가락동 농수산 시장 등)에 팔기 위해 직접 운송할 때에는 자가 운송이 허용된다. 쿠팡의 경우 ‘직접 구입한 자사 제품’이라고 할지라도 1차 제조사가 아니라는 점은 논란거리다.
서비스 자체의 불법성 여부를 떠나 본질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기존 영업용 차량 소유주들과의 형평성 논란이다.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1962년 처음 제정된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데,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운수 사업권의 ‘양도·양수’ 제도다. 개인택시 면허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업을 접는 기존 운수 사업자가 새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업자에게 면허를 양도할 수 있게 만든 제도다. 특히 2004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면서 신규 진입자의 시장 진출이 더욱 어려워졌다.
문제는 택배 사업이다. 1982년부터 시작돼 비교적 신종 사업에 속하는 택배 사업은 매년 물동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택배 업계도 정부에 신규 택배 운송차에 대한 증차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2012년과 2014년 단 두 차례만 증차를 승인했고 그나마 1톤 미만의 개인 용달 차량만 ‘배’자 번호판을 신설하며 늘려 놓았다.
개인 용달 차량을 비롯한 영업용 노란색 번호판의 가격이 몇 만 원 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 1톤 용달 차량의 번호판 가격은 1700만~1800만 원에 달한다. 비싼 값을 주고 화물 운송 면허를 딴 사업자로선 쿠팡의 흰색 로켓배송 번호판이 달가워 보일 리 없다.
택배 운송업은 이커머스의 성장 등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시장이다. 현재 업계에서 추정하는 자가용 화물 운송 차량은 전체 택배 차량의 30% 정도다. 달리 말하면 거금을 투자해 정식으로 노란색 번호판을 산 화물차 소유주들이 그만큼의 피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쿠팡의 로켓배송을 불법 영업으로 규정하며 고발에 나선 물류협회 측도 고객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에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수십 년간 요구해 온 증차(신규 면허 발급)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없이 특정 기업에 한해 ‘신산업의 시장 출현’이라는 명분을 인정해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배명순 물류협회 사무국장은 “기존 택배 업계는 차량 1대당 하루 150~200개를 배달하며 정부의 규제를 감내해 왔다”며 “이제는 그런 정부를 대신해 소송까지 걸어 신사업의 불법성을 가려내는 임무까지 맡게 된 꼴”이라고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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