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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금융 투자업,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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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스타’ 황영기·홍성국·존 리 열띤 강연… “아시아 성장서 기회 찾자”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기자) 지난 5월 20일부터 3일간 제주 서귀포시에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 포럼’이 열렸다. 이 포럼의 한 세션으로 5월 22일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아시아 금융시장의 성장과 한국 금융 투자업의 발전 방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금융 투자 업계의 별들이 가지고 있는 치열한 고민과 불꽃 튀는 논쟁을 요약·정리해 소개한다.

한국 금융 산업의 현실은 한국 제조업의 성장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금융 투자 산업은 현재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대표적인 곳이 호주다. 호주는 2500만 인구를 가지고 세계 3대 연금 산업을 창출해 냈다. 그러나 한국은 5000만 명의 인구 그리고 삼성전자와 현대차라는 강력한 제조 기업을 보유하고 쇠약한 금융 투자 산업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의 예를 보면 제조업으로 성장한 뒤 이를 통한 무역업으로 성장한다. 또한 무역업이 성숙하면 금융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더 큰 부를 이룬다. 영국도 미국도 모두 마찬가지다. 앞으로 중국 그리고 인도 역시 이런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국도 한 역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앞으로 국제경제 질서에서 가장 주목할 부문은 세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부상이다. 또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시아 금융시장의 높은 성장세 역시 두드러질 것이다. 이와 함께 핀테크라고 불리는 금융과 디지털의 혼합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후 정도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간 중국의 국가 발전 계획은 ‘도광양회’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대국굴기’를 천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국이 실력을 보인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주도적으로 만드는 한편 육상 실크로드 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8~12%에 달하는 고성장을 마무리하면서 뉴 노멀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그간 쌓인 부를 가지고 인프라에 투자할 예정이다. 또 다른 것은 위안화의 국제화다. 위안화 채권을 적극 발행하고 해외 자본의 위안화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전략의 의미는 곧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국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한국 금융 투자업이 위안화의 국제화 과정에서 영국의 런던, 미국의 뉴욕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며 부를 쌓을 수 있다는 의미다.

아시아 금융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의 초고액 자산가는 2011년 세계의 31% 수준에서 2018년 세계의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아시아 금융 중심지들은 제 역할을 찾아가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홍콩은 위안화 거래의 중심지로, 싱가포르는 아시아 자산 관리의 중심지로, 호주는 강력한 연금·인프라 시장을 통한 펀드 상품의 중심지로 말이다. 또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중심지가 됐고 일본 역시 최근 동남아 금융시장 공략을 가속화하는 중이다. 결국 이는 앞으로 금융시장의 변방이었던 아시아가 세계 금융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만드는 중요한 근거다.

금융과 정보기술(IT)의 융합, 즉 핀테크 역시 큰 트렌드다. 중국은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IT 기업에 은행업 면허를 줬다. 이는 중국 정부가 ‘금융 혁신’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기존 공상은행과 같은 초대형 은행으로는 성장이 더딜 수 있으니 핀테크를 통해 ‘퀀텀 점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격동하는 금융 산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사실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금융업은 확실히 제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세계경제포럼(WEF)은 금융 경쟁력을 반영하는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를 세계 80위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금융 산업도 성장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과거 선진국들이 제조업에서 무역업으로 또 무역업에서 금융업으로 성장의 영역을 넓혔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먼저 할 것은 규제 개혁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가장 많은 규제를 받은 분야는 전자·자동차·제약·금융 산업이다. 이들 산업은 모두 국민의 ‘삶’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결과를 보자. 전자와 자동차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러나 제약과 금융 산업은 전형적 ‘내수산업’에 머물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차이는 바로 ‘보호’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있다고 본다. 즉 정부의 별다른 보호 없이 국제적 기업들과 맞상대했던 전자와 자동차는 경쟁을 통해 더 강해졌다. 반면 정부가 강력히 보호했던 제약과 금융은 ‘머리만 좋고 다리는 허약한’ 도련님이 돼 버리고 말았다. 즉 이제부터라도 필요한 규제는 놔두고 ‘보호’라는 이름의 또 다른 굴레를 벗겨줄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금융인들이 좀 더 ‘호전성’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서 말한 보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 경쟁력을 갖고자 한다면 스스로 적극적으로 해외에 나서는 모습을 더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해외에 나가야 또 다른 ‘지식’을 쌓게 되고 이를 통해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금융의 삼성전자’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확실히 ‘금융의 아모레퍼시픽’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즉 세계무대를 대상으로 우리의 금융 투자회사들이 성장하는 것은 힘들지만 아시아 금융시장은 우리의 금융 투자회사들이 분명 경쟁력을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로서 중국을 잘 활용해야 한다.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다 그들의 등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한다. ‘위안화 역외 금융센터’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실제로 한국 원화의 헤지는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에서 이뤄지고 있다. 즉 한국도 이처럼 위안화 관련 시장에서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금융 투자업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의 금융 투자업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선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투자자의 신뢰’다. 지금까지 금융 투자업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 왔다. 그런데 그 결과 성장의 발판이 되는 투자자의 상당수는 금융 투자를 통해 부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금융 투자업에 등을 돌린 투자자들을 불러와야 한다. 이는 ‘회사의 수익’이 아닌 ‘고객의 수익’을 통해 가능할 수 있다. 펀드매니저·프라이빗뱅커(PB)·애널리스트들은 고객을 최우선해야 한다. 또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이익보다 고객의 이익에 우선한 직원들을 더 대우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장하고 금융 투자업이 발전한다.

나 또한 수십 년간 금융 투자 업계에서 일해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매우 크다. 앞으로는 우리의 후배들 그리고 후손들에게 ‘금융 투자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금융 투자 선진국으로 만들어 가자.

오랜 기간 동안 금융 투자업에서 일하면서 생각해 온 것이 있다. 금융은 역사와 문화라고 본다. 아시아는 농경문화, 즉 정주 문화에 기반한다. 그래서 투자보다 저축의 문화가 강하다. 서구는 유목민의 문화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으므로 저축보다 투자를 중시한다. 사실 한국은 아시아 중 유목의 정서가 강한 곳이다. 즉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우리의 금융 DNA가 더 뛰어나다고 본다. 실제로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의 금융 투자업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금융 투자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투자자들이 유목민의 DNA를 더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이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시를 중시하는 사람은 거시를, 거시를 중시하는 사람은 미시를 더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영업을 하는 사람은 연구를, 연구를 하는 사람은 영업에 더 매진해야 한다. 유목민처럼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금융 투자업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유는 ‘단군 이후 가장 낮은 금리’다. 결국 은행에 쌓여 있던 천문학적인 자금은 저금리를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애널리스트로 일해 왔다. 그래서 후배 애널리스트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애널리스트는 ‘금융 투자 업계의 리더’다. 애널리스트가 만든 하나의 보고서가 금융 투자 업계 혁신의 단초가 된다. 그런데 예전부터 보면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개인주의’ 성향을 가진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면 자신이 솔선수범해야 하고 그러려면 조직과 융화를 이뤄야 한다. 즉 애널리스트는 직원이 그 이상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한다.

또 애널리스트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고집과 아집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폭넓은 공부를 하고 최근의 사회적 변화에 보다 민감히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이는 ‘고전’을 읽자는 게 아니다. 또 인터넷에 나와 있는 짧은 정보를 이이기하는 게 아니다. 깊이는 최신 정보를 담은 책들을 항상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앞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세대의 애널리스트들을 육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최근의 일부 애널리스트는 너무 ‘정답’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과거에 ‘좌충우돌’해 본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이끌어 줘야 한다. 유목민의 경험을 가진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이 DNA를 심어주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금융 투자 업계에서 일하다가 2년 반 전 한국에 왔을 때 크게 후회했다. 생각보다 한국의 자산 운용업이 훨씬 열악했기 때문이다. 가장 놀랐던 것은 문화였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직원들조차도 자신들이 운용하는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이 없었다. 또 경제 방송에서 만난 앵커들에게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대답하는 수준이었다.

주식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주식 투자는 투자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업을 사는 것이다. 금융의 선진국들도 예전에는 ‘사고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투자를 하다 보니 결국 후자가 맞는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은 사고파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결국 수익률 악화로 이어질 뿐이다. 사고파는 일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일 뿐이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금융 투자회사의 문화였다. 금융 투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이익이다. 그런데 한국의 펀드매니저들은 고객보다 회장·사장·본부장을 우선시한다. 좋은 주식을 찾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회장과 사장에게 ‘보고’가 더 중요하고 본부장이 사라는 주식만 산다.

결국 이런 문화는 아직 금융 투자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선진 시장과 한국 시장의 수준 차다. 물론 한국의 금융 투자 업계와 투자자들도 많이 달라졌다. 장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또 실제로 장기 투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한국의 금융 투자업이 성장하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바로 아직 한국보다 투자 문화가 열악한 아시아의 저개발국에 진출해 ‘장기 투자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다. 바로 해외의 투자자들이 2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들 국가에게 한국의 성공과 실패를 전달하고 장기 투자 문화를 전파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처럼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널리스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회사, 감동이 있는 회사를 소개해 달라. ‘주식이 얼마 떨어졌으니 사고 얼마 올랐으니 팔아라’하는 것은 펀드매니저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투자자들도 보다 장기적인 투자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30년 앞을 바라보고 자신의 은퇴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개인적으로도 1985년에 가입한 펀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이 자금이 바로 은퇴 자금이다.

우리에게 주식 투자는 그 회사와 동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동업은 10~20년이 지났을 때 더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패널 토론 및 Q&A
“한국의 경험을 아시아에 수출할 때”

5월 20일 열린 제주포럼에서는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등 금융 투자 업계의 스타들이 한국 금융 투자시장의 발전을 위해 무려 1시간 40분여 동안 자신들의 의견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오규택 중앙대 경영경제대학장, 홍춘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 등이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안수웅 SK증권 리서치센터장 주제 발표자들의 이야기에 적극 공감한다. 올해 1월 리서치센터장으로 발령받기 전 ‘전업 개미(개인 투자자)’ 생활을 잠깐 했었다. 오히려 그 당시 더 많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를 읽게 됐다. 존 리 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5~10년을 내다보는 리포트에 더 많은 관심이 갔다. SK증권 리서치도 이런 리포트를 더 많이 만들려고 한다. 또한 금융 투자 업계의 신뢰 회복 역시 이런 리포트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오규택 중앙대 경영경제대학장 한국의 금융 투자 업계는 ‘시스템’으로 선진화돼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의 금융 투자 기업들이 진정 선진 기업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이유는 내수 시장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답은 해외 진출이다. 실제로 정부나 거래소의 자문 역할을 맡아 실무에서 뛰어 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시아 저개발국들이 한국 금융 투자의 발전 과정에 너무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한국의 실패 사례에 더 주목하고 있다. 즉 한국이 어떤 실패를 했고 어떻게 이를 극복했느냐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금융 투자업의 해외 진출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먼저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국의 경험을 전파하고 금융 투자의 선진국들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노하우’를 전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이상화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 현업에서 일하면서 항상 ‘왜 한국의 금융 투자업은 글로벌 경쟁력이 모자랄까’를 고민해 왔다. 나름대로의 결론은 ‘굳이 글로벌에 투자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코스피 지수는 500에서 2000으로 네 배가 올랐다. 이 당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한국에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한국은 저성장에 들어갔다. 이제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솔직히 한국 주식시장에서 얼마나 더 ‘먹을 것’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다. 또 이 ‘먹을 것’을 찾는 노력으로 성장 시장에 가면 더 많은 열매를 딸 수 있다. 결국 지금까지 글로벌 진출이 필요 없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 나설 때가 분명하다. 그리고 한국의 금융 투자업은 분명히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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