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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다음 행보는 전력 저장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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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기업용 제품 출시…이차전지 가격 30% 낮추고 태양광과 연계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단연 테슬라다.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창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2004년 설립한 테슬라는 혁신적인 고급 전기 자동차를 선보여 시장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그간 전기 자동차는 낮은 출력에 짧은 거리만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었지만 테슬라는 가솔린 자동차의 성능에 뒤지지 않는 모델 S 등 새로운 전기 자동차를 출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머스크 CEO는 테슬라가 자동차 기업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에 지각변동을 몰고 온 테슬라는 이를 기반으로 그동안 변화가 더뎠던 에너지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전기 자동차가 자유롭게 다니기 위한 충전 인프라의 중요성을 인식한 테슬라는 미국·유럽·아시아 등에 고속 충전소인 슈퍼 차저(Super charger)를 설립하고 자사의 전기 자동차 구입 고객들이 무료로 배터리를 충전하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태양광발전 기업인 솔라시티를 인수하는 한편 파나소닉과 합작해 네바다 주에 5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규모의 이차전지 공장인 기가 팩토리를 건설하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테슬라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전력 저장 장치(Energy Storage System)다. 테슬라는 지난 4월 가정용 제품인 파워월(Powerwall)과 기업용 제품인 파워팩(Powerpack)을 출시했다. 이들 제품은 솔라시티가 생산하는 태양광 시설과 연결돼 낮에 태양광으로 생산하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시간에 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스마트 에너지 혁명의 중심
이전에도 여러 기업들이 전력 저장 장치를 선보였지만 대부분이 비싼 가격과 설치비용 때문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 폭넓게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테슬라가 선보인 전력 저장 장치는 기존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설치도 훨씬 간편한 게 특징이다. 테슬라는 기가 팩토리를 통해 전력 저장 장치의 핵심인 이차전지를 현재 가격보다 30%나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다른 태양광발전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테슬라가 만든 전력 저장 장치를 더욱 확대 보급하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다.

전력 저장 장치는 발전 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을 저장해 뒀다가 일시적으로 전력이 부족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기의 활용도가 증가할수록 충분한 전기 저장 능력 역시 갈수록 강조되기 때문에 전력 저장 장치는 발전은 물론이고 송배전과 소비 등 전력 인프라의 모든 영역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전력 저장 장치를 설치하는 주요 목적은 전력 발전의 변동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발전소는 보통 전기를 최대 용량보다 적게 생산하는데 전기 수요량이 증가하는 여름 등 피크 타임에는 평소보다 더욱 많은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전기를 추가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발전 비용이 소모되고 이는 고스란히 전기료의 인상으로 돌아와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에 생산한 전기를 전력 저장 장치에 저장했다가 피크 타임에 공급할 수 있다면 발전소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소비자들도 전기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다. 또한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 단 몇 초간의 정전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보는 인프라에 설치된 전력 저장 장치는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해 큰 손실을 방지한다.

최근 테슬라를 비롯한 유수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전력 저장 장치에 주목하는 까닭은 바로 전력 저장 장치가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에너지 자급자족 시대의 첨병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전력 저장 장치는 주로 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상업용으로 사용됐지만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을 중심으로 가정에서도 사용이 늘고 있다. 특히 송배전 시설이 낡고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력 저장 장치를 도입하려는 추세다. 또한 인센티브 및 보조금 지원 등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늘고 있다.

가정용 전력 저장 장치를 사용하면 자체적으로 생산하거나 발전소에서 구입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고 혹은 이를 다른 가정이나 기업에 되팔 수 있으므로 에너지 수급 구조의 일대 변화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력 저장 장치의 도입으로 가정에서도 태양광이나 풍력 등 생산 효율이 낮은 신·재생에너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석유와 석탄 등 화석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전력 저장 장치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사물인터넷을 바탕으로 더욱 그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글과 애플 등 주요 IT 기업들은 가정의 가전 및 조명 등 각종 기기를 사물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 홈을 선보이고 있다. 스마트 홈을 위한 각종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스마트 홈은 거주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실내 온도를 제어하고 소비 전력의 수위를 조절하는 등 복합 에너지 관리 기능까지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사물인터넷과 접목되는 전력 저장 장치는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파악하고 향후 전기 수요를 예측해 추가적으로 전기를 발전하거나 혹은 여분의 전기를 축적하는 등 가정 내 에너지 효율 증진을 위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물인터넷으로 날개 달다
사물인터넷의 적용은 비단 스마트 홈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존의 전력 네트워크에 센서와 유·무선 통신 및 빅 데이터 처리 등 각종 사물인터넷 기술이 더해지는 스마트 그리드 역시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연구 및 구축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발전소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기 수급 및 가격 정보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수급 효율을 최적화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가정과 발전소가 전기를 사고팔 수 있는 새로운 거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구글·애플·소프트뱅크 등 여러 글로벌 IT 기업들도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 개발 및 비즈니스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세대 전력 저장 장치는 스마트 그리드로 구현되는 새로운 에너지 네트워크의 허브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에너지 네트워크에서는 지능을 갖춘 전력 저장 장치들이 생산 후 여분의 에너지를 자동으로 저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전력 인프라와 실시간으로 에너지 관련 정보를 교환해 전체 네트워크의 통합 관리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가정과 빌딩 관리를 넘어 광역적으로 에너지 수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잠재적인 사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력 저장 장치에 대한 관심 및 기술 개발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전력 저장 장치의 성능과 효용 향상을 위한 각종 과제가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에 전력 저장 장치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점진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사물인터넷 등 각종 IT와의 연계를 통해 전력 저장 장치의 활용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테슬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이차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기업들도 앞다퉈 새로운 전력 저장 장치를 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기업들의 기술 개발 및 신제품 출시가 활발하게 이어지면서 전력 저장 장치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학자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와 사물인터넷의 등장으로 에너지의 한계비용이 없어지고 소비구조가 바뀌는 제3의 산업혁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조·운송·교육·의료 등 각종 산업과 IT의 융합은 이미 글로벌 사회 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오랜 기간에 걸쳐 변화의 발전이 느린 에너지 산업에서도 IT를 기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흐름 아래 차세대 전력 저장 장치 역시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서 향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