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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돌적인 연하남으로 '재림'한 송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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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란 한경 텐아시아 기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송재림은 무척이나 많은 색깔을 보여줘 왔다. 모델로 활동할 때의 날카롭고 고독한 느낌은 ‘해를 품은 달’의 과묵한 무사 ‘운’으로 연장됐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능청스러운 오빠로 깜짝 반전을 보여줬고,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다시 저돌적인 연하남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재림'(다시 옴)이라는 그의 이름처럼,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 온다.

‘송재림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물음표는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해 있다. 다양한 얼굴을 한 송재림이 점차 쌓여간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또한 그 속에서 나만의 느낌이 있길 원해요. 허구의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니까요.”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새로우면서 자신을 잃지 않는 연기자. 하지만 그 방법을 송재림은 이미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뜨겁게 살아있는, 송재림을 만났다.

Q.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어떤 작품이었나.

긴 작품이었다. 드라마 한 편을 마쳤는데, 고등교육 과정을 졸업한 심정이랄까.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함께 하시지 않았나. 대한민국 드라마의 산증이신 분들과. 이분들과 호흡하는 매 순간이 숙제고, 학습이었다. 현장 스태프, 배우, 감독님 등 모든 분들이 제게 ‘뮤즈’가 된 작품이었다.

Q. 뮤즈라… 현장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지나고 나서 안 좋았던 작품은 없었다. 시청률이 어떻든 늘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한 번에 모이기 어려운 분들이 전부 모이셨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분들과 호흡하는 것 자체로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손창민 선배님과 채시라 선배님은 아역 때부터 연기를 해 오신 분들이라, 작품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배우로 사는 것이 뭔가’ 생각하게 될 만큼 굉장한 교훈을 주셨다.

Q. 그런 분들과 호흡한다니, 촬영 전 부담도 컸겠다.

평균 30년 경력의 연기자신데, 제가 평균치를 많이 깎았다.(웃음) 물론 부담이 있었다. 그런데 내 스스로 만든 부담이었던 것 같다. 이하나 누나, 김지석 형, 그리고 저. 우리 젊은 배우들끼리 선배님들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서로 ‘으샤으샤’ 했다. 한 번은 카메라 감독님이 저희에게 ‘선배님들 본 받으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김혜자 선생님이 “젊은 이들이 우리처럼 연기하면 징그럽다. 저들 세대에는 저들 나이에 맞는 연기가 있다”고 하시더라.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아역들이 어린애답지 않은 연기를 하면 위화감이 있지 않나. 그 후에는 우리는 우리대로, 연륜자들 사이에서 젊은 배우끼리 아웅다웅 하는 재미를 보여주려고 했다.

Q. 막내 라인끼리 친분이 두터웠겠다.

저희끼리 단체 채팅방이 있다. 오해 아닌 오해로 쓴소리 들으면 해소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 공유도 하고, 스케줄 얘기도 하고, 힘든 얘기도 하고. 막둥이 세 명이니까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들을 나눴다. 그렇게 서로 응원도 하고 위로도 해줬던 게 큰 힘이 됐다.

Q.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직접적으로 조언을 많이 해주는 분은 누군가.

연기적으로는 아무래도 감독님이 많이 조언을 해 주시고, 배우분들 중에서는 채시라 선배님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신 것 같다. 선배님이 장면을 철저히 분석해 오셔서, 저는 그냥 선배님 호흡에 같이 묻어간 것 같다. 선배님들이 주된 감정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저는 최대한 거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제 연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개인을 위해 욕심을 내거나 튀려고 하지 않았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많은 인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주말극 분위기를 띄는 작품이었다. 저 혼자 따로 돌지 않게, 조화되고자 애쎴다.

Q. 검도사범인 루오 역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로 검도를 배웠다고?

검도가 고유한 예법이 있는 무술이라, 옷 입는 법부터 기본적인 동작 등을 4개월 정도 배웠다. 낮은 급수이지만, 연습해서 대한검도 5급을 받았다. 드라마에서는 5단으로 나왔지만. 하하. 훈련 중에 어깨를 한 번 다쳐서 쉬고 있는데, 회복되면 계속 배울 생각이다.

Q.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맞는 장면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말년(서이숙)에게 뺨을 맞고, 현숙(채시라)에게 죽도로 찜질도 당하고.

루오는 극중에서 가장 많이 맞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연기 내공이 있으신 선배님들은 ‘때리는 법’을 아신다. 제가 정말 아프게 맞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 장면이 제대로 살았다는 얘기니까 좋다. 채시라 선배님께서 편하게 연기하시도록 일부러 죽도로 제 스스로를 때려 보였다. “이렇게 세게 쳐도 저 안 아프니까 마음 놓고 때리세요”라면서. 사실은 조금 아팠다.(웃음) 원래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이 마음의 짐이 더 큰데, 그런 감정이 연기에 방해가 되는 게 싫다. 서이숙 선생님한테도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화끈하게 때리시라”고 했다. 맞고난 후 뺨이 시뻘겋게 됐다. 분장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Q. 원래 운동을 좋아 하는 편인가.

운동을 좋아하게 생긴 것 뿐이다. 그래서인지 연기했던 역할들도 주로 킬러, 무사, 고수 이런 캐릭터가 많고. 원래는 ‘집돌이’다. 최근에 바이크를 타면서 삼삼오오 모여 라이딩 하다보니까, 밖에 다니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드라마 끝나고 제주도 라이딩을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

Q. 그랬나. 제주도 여행가기 좋은 시기다. 그런데 라이딩 모임이면, 주로 남자들이겠다.

그래서 지금 여성 라이더 급구다.(웃음)

Q. 작품이 끝났는데 쉬면서 무얼 할 계획인가.

아까 말했듯 요즘은 라이딩에 빠져 있다. 그리고 아시아 투어 연습도 하고 있고, 투어에서 어떤 이벤트를 할지 그런 것도 생각해 보고 있다. 라이딩이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된다. 풍경 좋은 데서 아이디어도 짜고, 팬이랑 소통하는데 도움도 되는 것 같다. 섹소폰 연주도 하고 있다. 기흉수술도 한 적이 있어서 폐활량을 늘리려고 시작했는데, 복식호흡에도 도움이 되더라.

Q. 송재림을 이끈 루오의 매력은 뭐였나.

루오를 처음에 봤을 때 ‘스물 아홉살 무도인, 연상과의 멜로’, 그런 부분이 매력적으로 와 닿았다. 그간 남자와의 우정, 남자와의 로맨스…아니, 그.. 브로맨스라고 해야겠지?(웃음)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어떤 남자와 붙여놔도 다 어울리더라. 하하. 이제는 여성과의 멜로도 조금씩 해야하지 싶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루노는, 남자다움을 보여주면서도 여성과 멜로가 있는 캐릭터라 끌렸다.

Q. 선택의 결과는 어느 정도 성공인가?

하나는 성공한 것 같다. 저돌적인 연하남 콘셉트. 루오와 하나의 감정선이 다이내믹하고 그 폭이 넓더라. 그 역할을 충실하게 보여주려면 너무 잰걸음으로 다가가기 보다는,적극적인 연하남이 돼야 되겠더라. 대본을 분석하다보니까 큰 사건사건 마주하면서 이야기가 풀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초반 설정은 시크한 루오였지만, 상황적인 면에서 저돌적인 면이 있는게 더 좋겠다 생각했다.

Q. 특별히 멜로 호흡 맞추고 싶은 여배우가 있나.

제가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하하. 아직은 작품이 우선이고. 캐릭터를 보고 연기를 하니까.

Q. 요즘 나이 차이를 극복한 파격 멜로 작품들도 많은데, 혹시 채시라씨와 호흡은 어떨지?

채시라 선배님이 불러주신다면 달려가야지.

Q. 그럼 상대배우로서가 아니라, 실제 이상형은?

대화가 잘 통했으면 좋겠다. 다른 점은 보완하고 같은 점은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이상형이자, 이상향이다. 결국 서로의 이상형이 되기 위해 연인 사이에 끊임없이 다툼이 생기는 것 아닌가. 이상형은 말 그대로 이상형이라서,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 만족할 수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자 같이 이상을 꿈꾸는 사람인 셈이다. 아… 연애를 오랫동안 안 하면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 해지는 것 같다. ‘내가 왜 혼자인가’ 자아성찰하면서 곱씹다 보니. 하하.

Q.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처럼 부모가 원수지간이거나,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면?

형제간에 라이벌이 되면 양보할 것 같다. 그들의 관계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니까. 부모가 반대한다면 강행하겠다. 부모님이랑은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 종교적인 부분이나 조건적인 것을 떠나 내가 결혼 하고 싶은 사람이랑 하겠다고. 나이를 먹을 수록 딱히 재촉하시지도 않고, ‘때 되면 하라’고 하신다. 네 능력될 때 알아서 하라고. 나는 ‘남자라면 자기 여자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그런, 약간 가부장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결혼은 좀 더 후에, 아마 7년쯤 지나면 할 것 같다.

Q. 얘기를 들어보니 나름의 이미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옛날에는 내 외형적인 모습을 보고 날렵한 무사 역할이 많이 들어왔다. 근데 ‘우결’하면서 그런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것 같다. 웃는상으로 봐 주시더라. 그게 신기했다. 인터뷰 질문이 180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밝은 역할 하고 싶지 않나’ 이런 질문이 많았는데, 이제는 ‘활달한 이미지인데 과묵한 캐릭터를 다시 해보면 어떻겠나’ 이런 질문이 온다.

Q. 실제 모습은 어디에 더 가깝나.

‘우결’은 대본 없이 우리끼리 시간을 꾸미니까 평소 나의 말투나 습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결’의 경우 그 어떤 설정도 하지 말자는 얘기를 했고, 날 것의 내 모습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연기라는 것도 결국, 진부한 말이지만, 나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지 않나. ‘내 색깔이 있는 캐릭터’가 내 연기 모토다. 어느 배우든 연기에는 자신만의 분위기가 있다. 어떤 캐릭터든 내가 연기하면 그 안에서 송재림이 보일 것이다. 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닌 사람이니까. 결국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느낌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느냐, 겜블인 거다.

Q. ‘우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김소은과 작품 얘기도 하는지.

서로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아끼는 것 같다. 사실 소은이가 나몰래 ‘착하지 않은 여자들’ 현장에 간식차를 보내려고 했다가 들켰다. 매니저들끼리 통화하는 것 보고 내가 눈치를 채버려서. 내가 세트장 가는 일이 극히 드물어서 시간 조율이 어려워 결국 간식차를 못 보냈다. 대신 소은이가 ‘밤을 걷는 선비’ 촬영 들어가면 내가 간식차를 보내주려고 한다.

Q. 모델 출신이라 날렵한 인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원래 모델 쪽에 꿈이 있었나.

대학교 때 전공이 안 맞아서 휴학계를 냈다. 등록금을 벌겠다는 명분 아래 이런 저런 알바를 하다가 스타일리스트로부터 모델일 제안을 받았다. 정석이 아닌 방법으로 발을 디디게 됐는데, 마음 고생이 심했다. 회사적인 문제도 있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이름 석자 알리지 못하고 관둘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때가 2011년, 27~28살 때였다. 뭘 해도 될 나이지만, 또한 뭘 새로 시작하기엔 두려운 나이였다. 일본에 머물 때였기에 요리를 배워볼까 했는데, 홀로 생활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결국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됐다.

Q. 그래서 일까. 모델일이 재미없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연기였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 갈증이 모델일로 충족이 안 됐다. 모델을 오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재미가 없었다는 쪽으로 해석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모델 일을 하면서 젊은 시절을 잘 보냈고, 내가 처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Q. 안 맞았다던 전공, 정보시스템학이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연극영화과로 전과를 하고 싶었는데,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려고 했을 때 학교 교칙이 바뀌었더라. 서로 캠퍼스가 다르면 전과가 불허된다. 연기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학교로 돌아가지 않게 됐다. 난 이과 체질이 아닌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문과였는데 학과 통합이 되면서 이과로 대학을 갔다. 그냥 점수에 맞춰서 간거지. 그땐 진학 책자에 쓰여있는 직업이 전부 인줄 알았다. 세상에 나와 보니 그게 아니더라.

Q. 그래도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이후 출연하게 된 MBC ‘해를 품은 달'(2012)도 잘 됐고, 이후에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오면서 매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 온 것 같다.

Q.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굉장히 많다. 우선은 꾸준히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좋은 선배,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잔소리쟁이 선배가 아니라, 현장에서 만났을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다. (끝)

사진. 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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