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슈퍼마켓들은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식품을 폐기처분 해 왔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들이 못 먹게 하려고 표백제에 담가 버리기도 했죠. 식중독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 버리는 음식에 의존하지 못하게 해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쓰레기통으로 갔던 식품이 이제부턴 끼니를 굶는 사람들에게 갈 예정입니다. 면적 400㎡이상의 대형 슈퍼마켓은 팔다 남은 식품을 버리는 대신 자선단체에 기부해야 하는 법안이 프랑스 의회에서 제정됐기 때문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최근 소개한 이 법안에 따르면 프랑스 내의 대형 슈퍼마켓은 내년 7월까지 자선단체들과 기부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최고 7만5000유로(약 9000만원)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파리 시의원인 아라시 데람바시가 해당 법안을 입안한 지 4개월 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데람바시는 직접 슈퍼마켓에서 버리는 음식을 모아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일 100명 가량을 도왔습니다. 반절은 혼자 아이를 기르는 엄마나 연금소득자 등 저소득층이었고, 나머지 반절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는 노숙자였다고 하는군요. 시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덕분에 연예인을 포함해 약 20만명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왜 이런 법안을 추진하게 된 걸까요. 법대생 시절 월세를 내고 나면 돈이 거의 없었다는 그는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식사는 오후 5시에 먹는 한 끼가 전부였다고 하네요. 다음 끼니가 걱정되어 혼란스런 마음에 공부도 잘 안됐다고 합니다. 그는 "순진하고 이상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배고픔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굶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데람바시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 국가가 비슷한 법안을 도입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9월로 예정된 UN이 수립한 기아대책기구인 '새천년개발목표(MDG)' 회의, 11월 터키에서 열리는 G20 경제장관회의와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에 부칠 계획입니다.
해마다 전세계에서 약 4000억달러(약 438조 원)에 달하는 음식물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전 세계 음식물 총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한국도 하루 1만6000t 가량의 음식쓰레기가 생겨납니다. 사회경제적 손실이 1년이면 약 20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입법 제조기'인 한국의 의원들은 멀쩡한 음식을 버리지 않고 밥 굶는 사람들에게 주는 이 같은 입법은 왜 생각하지 못할까요. /skyu@hankyung.com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