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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약발’ 사라진 이통사 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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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률 113%로 폭발적 성장 ‘옛말’, 가입자 빼내기 출혈경쟁만

(장진원 한경 비즈니스 기자) 한국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 중 통신 산업의 발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우리의 통신 인프라는 유·무선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보급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1997년 첫선을 보인 초고속 인터넷을 시작으로 무선통신에선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3G, 4G(LTE) 서비스 등을 가장 먼저 선보이며 전 세계 이동통신의 표준을 제시해 왔다. 그 덕분에 국내 이동통신 시장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로 대표되는 통신 ‘빅 3’는 지금도 매년 수조 원 이상을 관련 인프라 확충에 쏟아부으며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의 이동통신 산업에 위기의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다. 가입자 빼오기 경쟁만으로는 시장의 확대는커녕 산업 자체가 급속도로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마케팅 비용 감소에도 실적 부진
국내 이동통신 빅 3의 올 1분기 실적은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수치로 확인해 준다. 업계 1위인 SK텔레콤의 1분기 매출은 4조289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1.1%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4900억 원으로 역시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17.8%다. KT는 지난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836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34% 성장했다. 그러나 매출액은 5조7250억 원으로 역시 전 분기 대비 5% 감소했다. LG유플러스도 매출액 2조6840억 원, 영업이익 1910억 원으로 각각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4.8%, 마이너스 3.6%를 기록했다.

지난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실시될 때만 해도 가시적인 영향이 확인되는 올 1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게 사실이다. 보조금 출혈경쟁이 사라지고 이에 대한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며 실적도 향상될 것이란 예상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특히 빅 3 모두 매출이 전 분기 대비 쪼그라들며 시장과 산업 자체의 볼륨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통신 산업 위기의 원인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시장 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 기준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5721만 명이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이동통신 보급률은 113.6%에 달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라는 뜻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평균 이동통신 보급률은 121% 수준이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이통 시장 역시 앞으로 10%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과거와 같은 폭발적 성장세와는 거리가 멀다.

시장 규모가 포화 내지 정체된 환경에선 가입자 수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통신 사업자들이 가입자 빼내기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통신 서비스는 다른 산업에 비해 통신망 등 고정비 투자 비중이 매우 높다. 반면 대규모 투자가 한 번 이뤄지고 나면 이후 가입자가 늘더라도 추가로 들어갈 비용이 거의 없다. 가입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익을 보는 구조라는 뜻이다.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보조금 확대였다. 소비자들은 네트워크의 품질, 요금, 부가 서비스 같은 경쟁 요소보다 단말기 구매 비용을 줄여주는 쪽을 택했다. 더욱이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고가의 단말기들이 출현하기 시작하자 통신사들의 보조금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지난해 시행된 단통법 이후 공식적인 보조금 경쟁은 사라진 상태지만 요즘도 인터넷·모바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불법 보조금 지급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남은 LTE 전환 수요도 6~7% 수준
롱텀에볼루션(LTE) 시장 역시 포화 상태에 접어들며 더 이상의 성장과 고객 유인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올 1분기 말을 기준으로 국내 LTE 보급률은 65.6%에 달한다. 주요 국가의 LTE 보급률(2013년 기준)을 살펴보면 일본 21.3%, 호주 21.1%, 미국 19.0%, 스웨덴 14.0% 등이다. 양승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72%라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남은 LTE 서비스 전환 수요는 6~7% 수준”이라며 “LTE 보급 속도가 떨어질수록 통신 3사의 무선 매출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차세대 이통망인 5G는 2020년에야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다. 가계의 비용 지출과 직결되는 통신 요금의 성격 때문이다. 다른 산업과 달리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 등 공정 경쟁에 관한 규제가 유독 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인위적인 요금 인하보다 MVNO(알뜰폰)나 제4이동통신 출범 등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요금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0월부터 실시된 단통법이다.

정부는 단통법 시행으로 기업의 마케팅 비용이 감소하고 고질적인 고객 빼내오기 등이 근절되는 등 통신 산업이 전반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늘어난 기업 이익이 요금 인하로 이어지면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윈-윈도 전망했다. 하지만 제도 시행 6개월이 지난 현재 정부의 이런 전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번호 이동(신규 가입) 규모는 이미 2012년 1256만 명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2011년에는 LTE 상용화라는 호재를 맞아 번호 이동 규모가 순증가입자 대비 11.2배에 달했지만 2014년 단통법 시행 이후로는 2010년 수준인 3.5배로 급감했다. 단통법 시행 전 이동전화 가입자의 38.9%에 달했던 번호 이동 가입자 비중은 단통법 시행 후 3개월간 월평균 27.5% 수준으로 하락했다.

단통법이 ‘전 국민 호갱법’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시장 활성화에도 부작용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나자 정부는 보조금 한도를 인상하거나 요금 할인을 임의로 확대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마저 상실한 상태다. 특히 가입자가 보조금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요금 할인 폭을 12%에서 20%로 확대한 결정은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양 연구원은 “각각의 요금제별로 제시해야 할 보조금 수준이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장기 가입자는 단말기를 새로 구입하기보다 요금 할인을 받거나 중고 단말기를 구입하는 이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결국 통신사들이 그토록 목을 매는 ‘가입자 1인당 매출(ARPU)’ 확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보조금 경쟁에 이어 요금 인하에만 매달려서는 통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패러다임이 보조금에서 서비스로 이동 중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통사 T모바일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만년 4위에 그쳤던 T모바일은 단말기 교체 프로그램, 아이폰 1주 체험 프로그램, 특정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무료 등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새로운 가치와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T모바일의 계약 건수는 5680만 건이다. 업계 3위인 스프린트와 불과 30만 건 차이다. T모바일이 조만간 스프린트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jjw@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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