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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총리, 현대중공업에서 회색 정장 입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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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산업부 기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8일부터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하면서 재계가 떠들썩했습니다. 급성장 중인 인도를 잡기 위한 재계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모디 총리는 이 기간 동안 내로라하는 한국 기업인 10여명과 서울 시내 호텔에서 개별 면담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 직접 찾아간 건 현대중공업이 유일했습니다. 19일 서울에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울산 조선소를 찾았는데요. 인도의 국영가스회사 게일이 최대 11척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를 앞두고 있는 만큼 모디 총리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조선업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모디 총리가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을 만나 처음 건넨 말이 재미있습니다.

“현대중공업과 인도의 협력은 준비가 끝난것 같다. 현대중공업 유니폼 색깔과 내가 입은 셔츠 색깔(회색)이 똑같다. 현대에 입성할 준비가 다 됐다.”

모디 총리는 사실 알아주는 ‘패셔니스타’입니다. 구자라트 주지사 시절부터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한 정치인이었는데요.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모디 룩’이 유행하는 것은 물론 그의 스타일을 차용한 상표 ‘모디 쿠르타’까지 등장했습니다. 인도 정치인들이 서민층의 표를 얻기 위해 일부러 색 바랜 낡은 쿠르타(전통의상)을 입는 것과 달리 모디 총리 처음부터 ‘강한 인도’를 내세우며 깔끔하고 잘 맞는 옷을 입어왔습니다. 푸근한 외모와 달리 패션을 자신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는 보기 드문 인도 정치인인 것이죠.

총리가 된 후 외교 무대에서도 그의 패션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모디 총리는 자신의 이름인 ‘나렌드라 다모다르다스 모디’를 옷 전체에 수놓은 줄무늬 인도식 정장을 입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디는 자아도취형 지도자”라는 비판도 쏟아졌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모디 총리는 패션 아이콘”이라며 “나도 모디 쿠르타를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패션 외교는 이번 아시아 순방 때도 이슈가 됐습니다. 지난 14일 중국 시안을 방문했을 때는 진시황 병마용 사이에서 화보 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했고, 17일 몽골을 방문했을 때에는 몽골 전통 의상에 중절모를 쓴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중국 리커창 총리와 셀카 사진을 찍어 올린 것도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이쯤 되면 모디 총리가 현대중공업의 유니폼 색깔을 거론한 배경이 이해가 됩니다. 울산 현장 방문에 앞서 열린 한-인도 CEO포럼에서 모두 비슷한 색의 양복을 입은 재계 관계자 300여명을 만났으니 현대중공업 유니폼이 눈에 확 들어왔을 테고요. 또 조선업이 현재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에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을 찾아 의미있고, 유머있는 말을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디 총리는 패션을 통해 인도 민족주의를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좀처럼 서구식 양복을 입은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공식 석상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과 회담을 할 때는 쿠르타를 입었지만 이날만큼은 서구식 양복을 차려입었습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 유니폼 색깔인 회색 정장을 맞춰 입었죠. 아마 한국이 인도에 러브콜을 보내는 만큼, 인도도 한국을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요. 아쉽게도 모디 총리는 한국에서는 이렇다할 셀카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만약 우리 기업인들이 패션에 대한 모디의 열정을 미리 알아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6.2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