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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혜수 "눈여겨보는 후배? 김고은 천우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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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운 한경 텐아시아 기자) 김혜수가 대체 불가의 독보적인 배우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그런 김혜수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정확히 말해, 대체 불가의 배우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과 날카로운 헤어스타일 그리고 육덕진 몸매 등 단지 외형적인 변신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 한 편을 온전히 장악한 김혜수의 강렬한 ‘아우라’에 입이 벌어질 정도다. 제목인 ‘차이나타운’은 곧 김혜수를 의미했다.

Q. 영화를 보고 나서 놀라웠다. 김혜수 외에 어떤 배우가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작품 선택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혜수 : 시나리오 때문이다. 꽤 오래 망설였는데, 결국은 시나리오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 엄마 역할이 세다는 것을 떠나 큰 부담이었다. 영화 보면서 알았는데, 충분히 힘들만 했다. 이게 뭐냐면, 엄마가 곧 차이나타운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삶의 방식, 그 자체가 엄마였다. 그래서 힘들었던 게 정상이었구나 싶더라.

Q. 오래 망설인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김혜수 : 결정하기 전에 힘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선호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배우로서 역할에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해낼 자신이 없었다. 험난하고, 힘들 것 같았다. 초반에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즉, 배우로서 호감은 가고,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음과 동시에 피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결정한 후에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촬영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실제 촬영하면서는 엄마인 채로 보냈던 것 같다. 이 신은 중요하니까 뭘 해야겠다 등의 의식이 안 들었다. 그냥 그 자체로 집중하게 됐다.

Q. 장르적 색채가 강한 영화다. 호불호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김혜수를 이끈 점은 무엇인가.

김혜수 : 폭력, 성적 수위, 소재 등 그런 것에 대한 기준은 없다. 대중적이냐 아니냐도 마찬가지다. 영화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떤 방식을 취하는지, 내 캐릭터는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이걸 수행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등을 본다. 또 그 인물의 비중이 아니라 그 인물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지가 중요하다. 여자주인공이고, 예쁘고,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도 캐릭터 자체가 능동적이지 않으면 매력을 못 느낀다. 악역이건 좋은 역이건, 직업이 뭐건, 강렬하게 드러나건 아니 건 상관없는 것 같다.

Q. 과거에 작품 선택할 때도 그런 기준을 적용해왔던 건가.

김혜수 : 아니다. 한동안 그렇지 않았을 거다. 자의식이 제대로 없었고, 다듬어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과정이고. 그런 이야기 하면 부끄럽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 사회에 끼어있다는 자체가 고무돼 좋았고, 그들을 보면 일반적이지 않고 창의적인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 틈에 있다는 게 좋았지, 배우로서 어떻게 해야지 이런 건 없었다.

Q.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선 어떤 느낌이었나.

김혜수 :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나왔다. 사실 아는 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좀 더 마이너를 생각했던 것 같다. 더 어둡고,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그보다 덜하더라. 정서적으로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색깔은 정확하게 유지되고 있고, 배우들도 잘한 것 같다. 연기 경험이 없는데도 잘했더라.

Q. 장르 특성상 남성 영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참고한 작품이 있나.

김혜수 : 참고한 작품은 없고, 개인적으로 누아르를 좋아한다. (Q. 영화 속 모습이 ‘대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대부’도 좋아한다. 누아르라는 게 폭력적인 것을 미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등장인물의 상태가 액션 상태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게 좋다.

Q. 주근깨 가득한 얼굴, 거친 헤어스타일, 육덕진 몸매 등 외형적으로 기존의 김혜수 색깔을 지우려고 했던 건가.

김혜수 : 대중이 생각하는 김혜수가 있지만, 그런 것을 유지하려고 한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김혜수가 보일 거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것을 억지로 없애는 것도 부작용이 따른다. 단지 이 작품에선 이렇게 하는 게 맞았다. 물론 그것도 김혜수가 하는 캐릭터지만.

Q. 극 중 걸어가는 뒷모습은 정말 놀랐다. 김혜수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김혜수 : 중년 이상의 여성인데, 건강해서 살을 찌운 게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나, 그걸 겪고 버틴 사람이다. 그럼 그 사람의 몸이 온전할까. 일영도 야구방망이를 맞는데, 아마 엄마는 그보다 더 했을 거다. 그럼 당연히 몸 상태가 안 좋았을 거고, 골반 등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Q. 이 작품을 위해 살을 찌운 건가.

김혜수 : 불린 상태로 하긴 했는데, 몸을 조금 불려서는 그 느낌을 못 낸다. 엄마는 몸이 무너지거나 깡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깡마른 건 체질상 안 맞는다. 그렇다면 몸을 불리는 게 좋은데, 통통한 게 아니라 몸 자체가 무너진 느낌을 주고 싶었다. 내가 기본적으로 몸이 크긴 한데, 또 그렇게 커지진 않는다. 무엇보다 뺄 자신도 없다. 몸을 망가트리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는 거다. 만약 찌웠다 치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특수 분장으로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의상 팀에서 특수 장비 마련하고, 분장하고 했다.

Q. 아무래도 자기 몸이 아니다 보면 연기할 때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혜수 : 분장 팀, 의상 팀이 정말 잘하는 팀이다. 한여름 촬영이었는데, 엄마가 얼마나 더웠겠나. 장비가 젖을 때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해가면서, 자기 피부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져가면서 했다.

Q. ‘차이나타운’은 김혜수와 김고은의 팽팽한 대결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김고은이 연기를 잘한다지만, 김혜수의 내공을 따라가긴 어려웠을 것 같다.

김혜수 : 역할만 충실하면 될 것 같다. 경험치가 많은 배우와 적은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당연히 다르다. 또 청년기에 막 접어든 사람과 중년의 사람이 낼 수 있는 것도 다르다. 각각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김고은이란 배우는 지금 시기에 매우 특별한 작품을 만난 것 같다. 정말 최선을 다했고, 매우 잘해냈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여배우들끼리 강렬함으로 조화를 이루는 작품은 사실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기다리고 있어도.

Q. 그래도 김혜수의 ‘아우라’가 너무 셌다.

김혜수 : 엄마는 그래야 했다. 영화에는 없지만, 일영은 그 이후에 그랬을 거다. 일영은 성장하고, 생존 자체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것에 맞게 그녀만의 연기가 발산됐다. 일영의 어떤 기운이 엄마를 누른다면, 그건 잘못 설정한 게 아닐까.

Q. 어떤 의미에선 엄마도, 일영도 여성이 아니라 제3의 성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혜수 : 다 버려진 사람이고, 버려진 사람이 모여서 생존하는 거다. 그들에게 생존은 목적이고, 죽음은 생활이다. 마지막에 엄마도 죽을 걸 알면서도 먹고 하자는 것도 그런 거다. 그런 생존 앞에서 남자 여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성별 자체를 뛰어 넘는다가 아니라 성별 자체를 상쇄시키고 하는 게 첫 번째였다.

Q. 그와 동시에 엄마와 일영은 닮기도 했다.

김혜수 : 처음 일영을 보면서 엄마가 ‘워하이즈’(我孩子)라고 한다. 그게 ‘내 아이’라는 뜻인데, 여기에선 자기 후계자라는 의미다. 처음 봤을 때 ‘곧 나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본 것 같다. 시나리오 보면서도 엄마가 일영이고, 나를 대신할 나를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성애라고 할 수 있긴 한데, 여성이 지닌 본능적인 모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누군가 내 인생을 끝내줄 사람인 나, 나의 후계자를 키우는 거다. 엄마는 조직원도 모르게 일영이 후계자로 성장하게 한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로 균열이 생기고, 조직이 파괴되고. 근데 그게 엄마로서는 최선의 애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영화에서 일영은 엄마의 감정을 잘 모르는 거다. 결국, 이들에게는 숨이 끊어질 생명체를 깨끗이 정리하는 게 자비인 거다. 모성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하고 처참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생존한 그들만의 진한 감정이다.

Q. 언제였을까. 엄마가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가.

김혜수 : 그것보다 엄마는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들은 본인의 가치가 어떤지 판단하기 전에 버려졌고, 살기 위해 생존의 반대되는 것들을 생활하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온 이 여자는 누군가가 나를 끝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는 준비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랬을 것 같다. 일영도 그 방식을 배웠기 때문에 본인도 생존과 동시에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Q. 실제 김혜수가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 여배우가 있다면.

김혜수 : 지금은 김고은. 천우희도 좋다. 청룡영화제 때 천우희가 상을 받는데, 내가 소리를 질렀더라. 진행을 보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소리 지른 거 너무 티 난다’고 친구가 영상을 보여줬다. 그런 배우들이 엄청난 과정을 겪을 거다. 좋은 배우가 매번 잘할 수 없다. 김고은도 마찬가지고. 성장통이 있겠지만 잘 성장하면 각자의 것들을 점점 확보할 거다. 좋은 배우가 한 명 발견되고, 유지되는 건 배우 한 명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부족했고, 대중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래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아직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준 분들이 있어서 가능하다.

Q. 김고은에게 애정 어린 한마디를 한다면.

김혜수 : 그 나이 때에 나를 생각하면 오히려 언니 같다. 하하. 훨씬 영민하고 진중하고. 나는 그때 단순하고 철이 없었다. 자기 시간을 충실하면서 잘 살면 되지.

Q. 사실 ‘차이나타운’에 신인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리고 다 그만의 몫을 충분히 한 것 같다.

김혜수 : 조현철 배우도 그렇고, 엄태구 고경표 박보검 등 각각의 장점이 다 다르다. 그런 좋은 자질이나 가능성 보이는 배우들이 진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게, 그걸 발현할 수 있는 작품이나 사람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누구나 혼자 노력은 다한다. 정말 질적인 성장을 가져갈 만한 작품이나 사람을 만날 때 훨씬 성장할 거다.

Q. 쏭 역할의 이수경은 소속사 후배인데.

김혜수 : 수경은 여고생일 때다. 리딩할 때 일영하고 신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데 저런 것도 생각해내는구나 싶었다. 이를테면 배우 트레이닝을 한 사람이 아닌데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더라.

Q. 지금 인터뷰에 앞서 김고은을 먼저 인터뷰했는데, 김고은이 엄청난 고마움을 표하더라. 현장에서 안전에 대해 세심하게 살폈다고.

김혜수 : 그 순간에는 초집중을 하게 된다. 배우도, 연출자도, 스태프도 다 마찬가지다. 그들이 무모해서가 아니라 집중하다 보니 안전에 대해 무장해제가 될 때가 있다. 그러다가 누구 하나라도 다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감독님이 연기자 위주다. 배우들의 작은 이야기도 진심으로 경청하고, 배우의 집중이나 감정 상태도 보살핀다.

Q. 한준희 감독도 데뷔 감독이다.

김혜수 : 남들이 작품을 잘 만든다 해도 실제 경험해보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작품을 보면 알 수는 있지만. 시나리오가 특별한 느낌이었다. 여자가 주체라는 것도 반가웠지만, 그보다 캐릭터가 처음 보는 거였다. 이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반응하고, 엉켜있는 게 다른 느낌이었다. 또 준비하면서 마치 영화 동아리처럼 모여서 이야기하고, 의견 주고받고. 그러면서 나 하나 정신 차리고 잘했으면 좋겠다가 우선이었다. 감독은 이 영화의 운명을 쥐고 있는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캐릭터를 운영할지는 감독이 하니까. 딱 촬영 시작됐을 때 세트에 들어서니까 애정이나 믿음이 확 올라왔다.

Q. 최근 김혜수의 행보를 보면 변신이나 도전 등에 점점 더 욕심이 생기나 보다.

김혜수 : 연기적으로는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뭔가 변화를 하면 스스로 부족한 것들이 성장할 거로 생각했다. 일면 성장하는 게 있긴 하다. 또 어느 시점이 되면 배우에게 변신이란 건 중요한 데 변신을 위한 변신은 중요치 않더라. 어차피 캐릭터가 똑같은 건 없으니까, 그 자체로 되는 거다. 단순히 긴 머리를 잘랐다고 그게 변신이냐, 그건 아니다. 실체를 움직이는 본질이 달라야 하는 거다. 이번 영화 같은 경우 변신이라는 게 눈에 띄는 거라서 그럴 뿐이다. 이걸 염두에 두고 의도하진 않은 것 같다.

Q. 지금 배우로서 기준은 무엇인가.

김혜수 : 거의 1년에 한편 정도 한다. 향후 가까운 1년을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는 결정인 것 같다. 그게 기준인 것 같다.

Q. 어릴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해왔는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보면 어떤가.

김혜수 : 어릴 때 시작해서 배우로서 준비도 안 됐고, 뚜렷한 목적도 없이 한 시절 보냈다. 그 이후로는 제대로 하고 싶은데 작품을 못 만났다. 배우로서 성장할 만한 기회가 참 없었다. 그땐 관계자들이, 대중들이 원하는 게 뭔지 몰랐다. 참담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가슴 아팠던 적 있는데, ‘김혜수는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어’ ‘책을 그렇게 많이 본다면서 시나리오는 못 봐’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영화적으로 호감을 느끼거나 고민할 작품이 배우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것 중에 나름 최선이라고 생각해 고른 거다. 물론 지금은 배우로서 고민할 만한 기준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다. (끝)

사진.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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