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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이나타운' 김고은 "뺨 때리는 연기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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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운 텐아시아 기자) 태어나자마자 지하철 보관함 10번에 버려진 아이, 그래서 이름도 ‘일영’이다. 이 기구한 운명의 소녀는 ‘엄마’로 불리는 사람에게 흘러들어 간다. 그곳이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새로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얻은 일영은 생존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삶을 위해 누군가를 위협한다. 평범한 우리의 눈엔 일영의 삶이 거칠고 비참하지만, 일영의 삶은 그게 전부다. 아니,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외의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아이다. 그래서 일영이 짠하다.

김고은은 이런 일영의 삶에 꽂혔다. 뭔지 모를 감정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고, 이 때문에 울컥울컥 했다. 누군가는 ‘또 센 역할이야’라고 말하지만, 김고은에게 ‘차이나타운’은 굉장히 서정적인 작품이었다. 우리는 일영을 이해하려 했지만, 김고은은 그런 일영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인정했다. 그러니 짠할 수밖에.

김고은이 ‘환호’를 질렀던 또 하나의 이유, 바로 김혜수다. 평소 함께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던 배우로 손꼽았던 배우다.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고. 김고은은 김혜수를 “닮고 싶은 선배”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됐을 때, 후배들이 내가 김혜수 선배한테 느꼈던 그런 감정을 나에게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Q. ‘차이나타운’ 시나리오를 접하고 꽂혔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에 확 꽂힌 건가.
김고은 : 읽고 난 후에 잔상이 오래갔다. 시나리오를 읽으면 배우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집중된다거나 혹은 내용, 소재 등 여러 가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오히려 먹먹함이 유지됐고, 울컥울컥 했다. 그림을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뚜렷한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난 건데, ‘꽃보다 청춘’에서 마추픽추를 가지 않나. 안개가 걷히고 마추픽추가 펼쳐지는 순간 유희열, 이적, 윤상 등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 기분이었을 것 같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Q. 그런데 엄마 역의 김혜수보다 먼저 캐스팅된 거였나, 얼핏 출연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데 김혜수가 엄마 역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를 외쳤다고 들었다.
김고은 : ‘은교’ 때 피디님이 영화사 대표님이시다. 데뷔 때부터 봤고 따르는 사이인데, 계속해서 ‘멜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나리오가 있긴 한데, 멜로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던져준 거다. 그리곤 확 빠져들었다. 읽고 나서 좋다고 했을 때 한준희 감독님이 나를 1순위로 생각했고, 염두에 뒀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있었고, 라디오에서 ‘김혜수 선배님과 작품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그랬는데 한다고 해서 ‘이게 뭐지’ 싶었다. (웃음)

Q. ‘몬스터’ 인터뷰 당시 액션은 피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차이나타운’도 많진 않지만 액션을 해야 했다. 맞기도 많이 맞고, 때리기도 많이 때리고.
김고은 : ‘몬스터’ ‘협녀’ 등 힘든 것을 겪고 나니까 크게 힘들진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안 힘들게 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Q. 이미 액션에 몸이 적응했나 보다. (웃음)
김고은 : 사람은 역시 강하게 커야 하나보다. (웃음)

Q. 단순 무식하게 맞는 것과 때리는 것, 어떤 게 연기하기 더 어렵나.
김고은 : 때리는 게 어렵다. 맞기도 쉽진 않은데 때리는 게 좀 더 어렵다. 때릴 때는 너무 떨린다. 잘 못 때려서 다시 찍어야 하거나, 때리는 척해야 하는데 진짜 때리거나, 그런 복합적인 생각이 든다. 영화에선 편집됐지만, 쏭(이수경)의 뺨을 굉장히 세게 때리는 게 있다. 그거 찍을 땐 정말 극도로 예민해졌다. 아마 제일 예민해진 순간이었던 것 같다. 무술 감독님께 ‘왜 실제로 때려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뺨은 대부분 실제로 때린다고 하더라. 그랬더니 쏭이 ‘연기할 때 다시 한 번 때려달라고. 그럼 감정이 잘 나올 것 같다’고 하는 거다. ‘날 죽여라~’라고 웃고 말았다.

Q. 이전 인터뷰에서 강렬하고 센 캐릭터에 유독 끌리는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또 선택한 걸 보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김고은 : 근데 이번에도 대답은 ‘아니에요’다. 앞으로도 아닐 거고. (웃음) 이번엔 세다는 느낌이 안 들었다. 사실 편집본을 봤을 때는 거친 느낌이 강했다. 이렇게 나오는 건가 싶어 마음 한편으로 속상했다. 그랬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강렬하고 잔인하기보다 울컥울컥 하고, 그런 서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Q. 그리고 또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 얇은 얼굴선이다. 거친 삶을 살아온 일영을 표현하기 위해 얇은 선을 보완하는 것도 필요했겠다.
김고은 : 외적인 걸로 따지자면 포인트를 둔 건 몸짓이다. 하나하나의 동작들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먹을 쥐어도 여자처럼 쥐거나 귀엽게 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 일영은 실전에서 그렇게 굴러먹은 아이니까, 또 그렇게 남자를 상대했을 거고. 그래서 그런 부분에 신경 썼다.

Q. 그럼 김고은은 일영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표현했나.
김고은 : 이해하려고 하진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세월과 방식 그리고 옳고 그름이 있듯, 걔(일영)도 그냥 그런 아이다. 그렇게 살았고, 그만의 방식으로 해내야만 하는 거다. 나로서는 ‘왜 해야 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근데 연기할 때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 자체로 바라봤다. 그렇게 인정하니까 그 자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Q. 나만 그렇게 느낀 건지는 모르겠는데, 언뜻언뜻 가냘픈 느낌이 좀 들었다. 소녀 같은 모습도 보였고. 일부러 의도한 건가.
김고은 :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아이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칠고 세기만 한 아이면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나 싶었다. ‘평범할 수 있었는데’ ‘예쁠 수 있는 아이였는데’ 등의 연민이 느껴지고, 더 동화 돼지 않을까. 단, 가냘프게 보이는데 앞서 말한 몸에 쓰임은 명확해야 했다. 그래야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Q. 그런데 일영은 차이나타운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김고은 : 없었을 것 같다. 우리로선 험난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가족 없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때부터 그런 생활을 해왔다. 일영에겐 가족, 집이 생긴 거다. 그래서 거길 벗어나면 오히려 더 두려울 것 같다.

Q. 석현(박보검)을 만나 잠시 흔들리고, 그러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굳건했던 엄마에서 일영으로 권력이 이동하게 된다.
김고은 : 일영은 아마 차이나타운 밖의 세상을 알고 싶지 않은 아이였을 것 같다. 그러다가 알려고 한 게 아니라 우연히 알게 된 거다. 그리고 알게 됐으니까 조금 더 알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고.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연민이 느껴지는 게 그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Q. 일영은 언제 느꼈을까. 자기가 엄마의 자리를 이어받을 거라는 사실을.
김고은 :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엄마는 데칼코마니같이 자신의 옛 모습을 어린 일영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지 않았을까 싶다. 이 아이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식구들도 엄마가 일영을 편애한다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는 거니까.

Q. 엄마에서 일영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마지막 장면이 참 인상 깊었다. 감정적으로는 참 어려웠겠다.
김고은 : 찍기 전날 혜수 선배, 감독님, 나, 촬영 감독님 이렇게 모여서 실제 촬영하는 그 테이블에 모여 몇 시간 동안 수다와 작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엄마의 감정대로, 일영은 일영의 감정대로 너무 복합적이어서 정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전날 모여 이야기를 한 후 달라졌다. 처음에는 너무 막연해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몇 시간 대화하고 나니까 그렇다고 특별한 해결책이 나온 건 아니지만,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본능에 맡겼다. 실제 거의 마지막에 찍기도 했고.

Q. ‘차이나타운’은 김혜수와 김고은의 팽팽한 기운이 핵심이다. 이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럼 김혜수와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나.
김고은 : 아우. 맞서긴 또 뭘 맞서느냐. (웃음) 선배님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물론 긴장은 많이 했다. 롤이 크다는 것도 부담이고. 그런 부담이나 두려움 등을 혜수 선배가 없애주셨다.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였고, 영화는 어두운데 재밌고 유쾌하게 찍었다.

Q. 극 중 엄마의 포스는 정말 대단하다. 김혜수의 힘이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보는 사람도 이런데, 직접 그 현장에서 마주하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하다.
김고은 : 나도 진짜 그런 기분이었다. 후배 김고은과 선배 김혜수의 만남이 아니라 현장에서만큼은 엄마와 일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영의 태도나 엄마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들이 자연스러웠다. 반면 촬영하면서 주눅이 들진 않았다. 배우들 간에 그럴 수 있지 않나 하는데, 나는 느껴보지 못했다.

Q. 예전부터 김혜수와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는데, 직접 부딪혀 본 김혜수는 어떤 배우였나.
김고은 : 닮고 싶은 선배님이다. (촬영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 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그런 감정.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됐을 때 후배들이 그런 감정을 나에게 느껴줬으면 좋겠다.

Q. 그 닮고 싶은 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김고은 : 정말 많다. 그게 ‘사소하다’라고 할 만큼 많고, 잦다. 실제 만나면 부끄러워서 말도 잘 못 하지만. (웃음) 촬영하면서 감동했던 순간은 참 많다. 지금 생각나는 게 촬영 첫날이다. 가장 불안하고 예민한 날이다. 그리고 테이크를 많이 가고, 확신이 들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이 한편에 있고. 그때 혜수 선배님이 모니터를 보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라. 두 분이 뭔가 상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끝나면서 감독님이 ‘혜수 선배님이 김고은이란 배우 매우 좋다고. 지금 한 거 매우 좋다고 계속 이야기했다’고 말해주더라. 처음부터 그렇게 대해주셨다. 또 감정신 등 찍을 때는 ‘너를 보면서 하니까 나도 그 이상이 온다’고 진심으로 말해준다. 사실 후배한테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입장 바꿔놓고 보면 그렇다. 또 와이어 할 때도 촬영이 없음에도 위험한 장면 찍는다고 직접 현장을 오셨다. 끝날 때까지 계셨는데, 안전에 대해 나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해 주셨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왔다. 직접 표현하면 좋은데, 부끄러워서 앞에서는 말도 잘 못 한다. (웃음)

Q. 마지막으로 칸 영화제 진출 축하한다.
김고은 : 정말 놀랐다. 가고는 싶은데 촬영이 겹치는 기간이어서. (Q. 그래도 갈 수 있을 때 가면 좋은데) 아쉽겠죠. 밟아 봐야 하는데. 궁금하긴 하다. 워낙 세계적인 영화제고, 언젠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될지 몰랐다. 여러모로 기분이 묘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6.2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