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조공무역과 여우사냥 그리고 新실크로드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오광진의 중국 이야기) 얼마 전 중국 뉴스에서 눈에 익은 글자가 들어왔습니다. 천망((天網). 천라지망(天羅地網)의 준말입니다. 학생 시절 즐겨 읽었던 무협만화와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던 천라지망은 보통 상대를 추격하는 한 그룹의 리더가 “지가 뛰어가야 벼룩이지. 이미 천라지망을 발동했거든”이라고 내뱉는 식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하늘에 그물을 치니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됐습니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 4월23일자 보도에서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인터폴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국외 도피범 100명의 명단과 신상명세를 공개했다며 해외 부패 사범 검거를 위해 ‘여우사냥’에 이어 ‘‘천망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부패한 거물인사를 잡아들이는 것을 ‘호랑이를 때려 잡는다’고 표현하고, 해외로 튄 부패인사 체포에 나서는 것은 ‘여우사냥’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지난해 7월 본격화된 여우사냥으로 69개국에서 680여명을 잡아들였습니다. 여우사냥이든 호랑이를 때려 잡든 모두 공산당의 통치체제를 공고하기 하기 위한 정치적 성격이 짙습니다.

여우사냥이든 천망작전이든 정국 안정을 위해 해외로까지 나가 정적 제거에 나서는 건 현대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나라 영락제의 해상 실크로드 개척이 그렇습니다.당시 환관이던 정허가 아프리카까지 가는 바닷길을 뚫는 원정을 7차례나 간 뒤에는 경제보다는 바로 정치적인 포석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임 황제인 건문제를 추격하고,인근 중앙아시아의 테무르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서방의 동맹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영락제가 통치체제 안정에 골몰한 이유는 자신이 권력투쟁을 통해 황제 자리를 찬탈했기 때문입니다.명태조인 주원장의 황태손인 주윤문이 1398년 황제(건문제)에 오르자 숙부들의 반발이 거셌지요. 그중 한명이 주원장의 넷째아들인 연왕(영락제)이었습니다. 모반소문이 돌자 건문제는 스승인 황자징을 통해 숙부들을 치려고 했지만 연왕은 미친 척 하면서 위기를 모면해갔고,결국 ‘정난의 변’을 일으킵니다.3년간의 내전 끝에 황위를 찬탈하는 데 성공합니다. 조선시대 세조가 조카 단종의 자리를 찬탈한 것과 참으로 흡사합니다.권력이 피보다 진한 가 봅니다.

어쨌든 연왕이 조정군을 제압하고 궁궐로 들어갔을 때 이미 불타버린 궁에서 건문제는 황후와 함께 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자 연왕의 근심은 커져만 갔다고 합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는 건문제가 해외로 도피해 다시 반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환관 정허를 해외로 내보내기로 합니다.요즘 얘기로 하면 여우사냥팀이라고 해야할까요. 정허가 맡은 여러 임무 중 하나로 추격대 역할을 부여한 겁니다.

그러나 정허가 7차례의 원정을 하는 동안 20여년이 흘렀지만 건문제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공무역으로 나타난 해외원정은 경제적 실익은 없고 비용만 많이 들어간 탓에 일정 시간이 흐르자 이를 지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명나라는 이를 중단하고 해금정책으로 돌아섭니다. 말이 좋아 해상 실크로드이지 비단과 같은 부드러움 보다는 날카로운 칼의 길이었던 셈입니다.

육상 실크로드 역시 중국의 통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개척이 시작됐습니다.한나라는 흉노족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흉노가 사는 지역 너머의 다른 이민족과 손을 잡으려했습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지요. 그럴려면 비단과 같은 좋은 물건을 보내 그들의 환심을 사야했습니다. 조공무역입니다.한무제가 장건에 이 임무를 맡깁니다.명 영락제가 정허에 맡긴 임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거대 세력들간의 치열한 군사 외교상 각축의 결과가 실크로드의 개통으로 귀결됐지만 그 과정은 결코 비단처럼 부드럽지는 않았다”(모험과 교류의 문명사)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눈을 다시 현대로 돌려보죠. 중국의 1인자 시진핑 국가주석은 육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개척에 열심입니다.. 중국이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은 일대일로의 중요한 자금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2인자인 리커창 총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은 AIIB로 기존 세계질서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지요. 2차대전이후 미국 주도로 형성된 브레턴우즈체제의 골격인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과 보완관계라고 얘기하지만 현실적으론 경쟁관계라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마저도 최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되지 않으면 아시아에서 중국이 규칙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공개표명했습니다.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2005년 펴낸 ‘2020년 미래 세계 예측’보고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강국들이 국제질서를 선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2차대전 이후 형성된 체제 및 질서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었지요. 일대일로를 내세우는 시진핑은 공동운명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중국의 부상을 세계의 위협으로 부각시키려는 서방의 중국위협론을 견제하기 위한 겁니다.한나라 장건이나 명나라 정허도 해외를 돌며 공동 운명체론을 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지만 국가의 통치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은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은 듯 합니다. 일대일로를 순수히 경제적으로 보는 시각은 그 대응에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끝)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