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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커 겨냥 면세점 전쟁 가열...지방 공항 벗어나 중심 무대서 진검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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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1곳 중소기업에 할당…차별화 전략으로 승부

(이현주 한경 비즈니스 기자) 최근 불붙은 면세점 쟁탈전에는 중소·중견기업도 빠지지 않는다. 15년 만에 열린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은 중소기업에도 황금 티켓과 같다. 대기업의 독점을 막기 위해 서울 시내 3곳의 신규 면세점 중 1곳이 중소·중견기업 제한 입찰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내 1호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에 이어 둘째로 서울 시내에 중소기업 면세점이 생기는 셈이다.

요우커(중국인 관광객)의 주요 이동 경로인 인천공항과 제주도에도 입점의 길이 열렸다. 인천공항공사는 3월 23일 에스엠이즈듀티프리(SME’s)·시티플러스·엔타스 등이 중소기업 전용 구역 입찰 회사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과거 청주·양양·김해 등 지방 공항에 입점한 사례는 있지만 세계와의 접점인 인천에 중소기업 면세점이 문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는 7월 제주도 시내 면세점 사업권 또한 중소·중견기업만 대상이다.

2013년부터 중소기업 면세점 등장
지금까지 중소기업에는 면세점이 ‘그림의 떡’과 같은 존재였다. 전체 시장은 성장했지만 중소기업의 몫은 미미했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중견기업 면세점 매출액은 4010억 원으로 전체(8조3077억 원)의 4.8%에 그쳤다. 여러 요인이 지적되지만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위치가 꼽힌다. 요우커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통 대기업의 주요 무대였던 면세점에 중소기업이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면세점 시장이 연평균 15% 이상 성장하면서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중소·중견기업 제한 입찰이 시작됐다. 울산·창원·대전·대구·청주·수원·인천 등 7개 지역에 중소 시내 면세점이 선정되며 15개사까지 사업자가 늘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실적이 저조했다. 관광객이 서울·제주·부산 등에 집중되면서 성장 산업의 과실을 누리기는커녕 흑자를 내기도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중소기업 면세점에 남다른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서울·제주·인천공항 등 요지에서 글로벌 면세점 경쟁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인천공항은 중소기업 전용 4곳 중 1곳이 유찰되면서 또 한 번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알짜 중 알짜로 불리는 서울 시내 면세점은 서서히 경쟁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한 중소 면세점 관계자는 “정부가 과거 7개 시내 면세점을 선정하며 혜택을 주는 것처럼 했지만 실제로는 혜택이 아니었다”며 “전통적으로 대기업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수익을 못낸 게 아니라 입지가 불리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서울 진출은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유통 빅 5로 압축된다면 중소기업군에선 다양한 업종이 눈에 띈다. 먼저 인천공항 입찰자들을 살펴보자. 최종 선정된 에스엠이즈듀티프리·시티플러스·엔타스는 각기 다른 업종이다. 에스엠이즈듀티프리는 하나투어·토니모리·로만손·홈앤쇼핑·열림목재 등 10개 업체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하나투어가 70% 이상 지분으로 최대 주주가 됐고 11월 매장 오픈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시티플러스는 청주공항에 면세 사업을 운영하는 중소 면세점이며 엔타스는 외식 업체다.

여행업 2강인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일찌감치 면세점 진출 의지를 밝혀 온 곳들이다. 여행업 특성상 면세 유통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사는 인바운드(해외 관광객이 한국으로 오는 것) 영역에서 면세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면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다. 만약 면세점을 갖게 되면 영업·마케팅 비용 없이 기존 사업의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국내에서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서울 시내 면세점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략에서는 양사가 다소 엇갈린 선택을 했다. 하나투어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리스크를 줄이면서 대기업과 차별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여행사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동시에 여러 중소 제조업과의 연합으로 국내 우량 중소·중견기업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토니모리의 화장품, 홈앤쇼핑이 방송하는 국내 중소기업 상품, 로만손의 시계 및 액세서리 등을 입점시켜 국내 우량 중소기업 제품 판매를 위한 유통망을 확보하는 한편 각 업체들의 글로벌 인지도 상승 및 브랜드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모두투어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생각할 때 면세점 진출은 포기할 수 없는 카드이면서도 짧은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방법으로 기존 유통 대기업과의 연합을 선택했다. 현대백화점그룹과 손잡고 약 10~15%의 지분 투자를 통해 면세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제한 입찰이 아닌 대기업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높은 초기 투자비용·운영비 고민
외식 업체 엔타스도 면세점 진출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인천에서 숯불갈비 가게로 시작해 경복궁·삿뽀로·고구려 등 90여 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엔타스는 2013년 인천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한 이후 최근 인천공항까지 입성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DF12구역(주류·담배)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9월 오픈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상반기 인천 시내 면세점 3860㎡(11~15층)와 7월 인터넷 면세점을 차례로 오픈할 예정이다. 엔타스는 직영점에서 나오는 연매출 2000억 원, 영업이익 10%의 재무 안정성을 기반으로 외식 사업장과 면세점을 통합 운영해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국내 면세점 톱 3라는 야심찬 목표 아래 지속적으로 면세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글로벌 면세점 시장에도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번에 서울 시내 면세점에 출사표를 던진 곳 중에는 건설 업체도 포함돼 있다.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유진기업은 MBC와의 양해각서(MOU)를 통해 MBC 여의도 사옥 9917㎡에 면세점을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레미콘과 건자재 유통, 금융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 중인 유진기업은 주력인 레미콘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며 신사업 진출을 모색하던 중 면세점 사업의 높은 성장성에 주목했다. 이곳의 차별화 전략은 ‘문화 콘텐츠’와 ‘한류’로 방향을 맞추고 있다. 기존의 방송 스튜디오 시설 및 MBC의 문화 콘텐츠를 면세 사업과 결합,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계획이다.

서울 양재동에 자리한 쇼핑몰 하이브랜드 또한 시내 면세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면세점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사업을 준비해 왔다. 하이브랜드 측은 면세점 입점 시 쇼핑몰 3개 층을 면세점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기존 지방 면세 사업자들도 ‘7월 대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들은 기존 고객을 빼앗길 것이라고 우려하면서도 서울 입성을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바라보고 있다. 대구에서 시내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대구그랜드호텔이 대표적으로, 앞서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권 획득에서 한 차례 실패했지만 향후 인천공항, 서울 및 제주 시내 면세점, 대구공항과 부산항 등 가능한 곳에 모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지방 중소 면세점 중 드물게 올해 매출 200억 원, 흑자 전환을 예상하며 종합 면세 유통 사업자로 변신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해외 중소 공항에도 진출한다는 포부다.

접근성 측면에서 유통 공룡들과 같은 선에 서게 된 후발 주자들. ‘중소기업이 낄 데가 아니다’는 오명을 벗고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빅 브랜드 유치와 규모의 경제가 기존 성공 공식이라면 열세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별화 전략이 필요한 때다. 중소기업 연합과 여행업 연계(하나투어), 대기업 전략 편승과 여행업 연계(모두투어), 콘텐츠 및 한류 연계(유진기업), 외식업과 통합 연계(엔타스) 등이 시장에 통할지 주목된다.

높은 초기 투자비용과 운영비 등도 고려할 부분이다. 실제로 인천공항 중소기업 몫 4곳 중 1곳은 화장품 업체 참존에 돌아갔지만 6개월 선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보증금 100억 원을 날린 채 유찰된 사례가 있다. 명품으로 승부수를 둔다면 소싱 능력이 관건일 뿐만 아니라 재고 부담이 커지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 견고한 빅 2가 면세업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작은 사업자들이 판도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 관전의 한 해가 펼쳐지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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