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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소각한 대학생 처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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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늘 디지털전략부 기자) 최근 한 대학생이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를 불태워 이슈가 되었죠. 마침 미국에서도 국기를 밟고 찢는 퍼포먼스가 벌어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일 전직 미국 공군 하사인 미셸 맨하트가 성조기 훼손 퍼포먼스를 하던 시위대와 충돌해 경찰에 체포됐다고 밝혔습니다.

맨하트는 특이하게도 절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 17일 조지아주 발도스타시의 발도스타주립대에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나선 흑인 학생들을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로 밟고 있던 성조기를 낚아 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깃발을 뺏긴 학생들이 "도둑질이 아니냐"며 항의하자 맨하트는 "미국 전체의 소유인 성조기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고 합니다. 결국 출동한 경찰에 저항하다 체포됐으나 현지 언론은 절도죄로 기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맨하트가 현장 동영상을 본인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누리꾼은 맨하트가 옳았다는 쪽과 국기를 불태우는 것도 표현의 수단일 뿐이라는 쪽으로 갈려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동영상은 한국시간으로 22일 현재 64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맨하트는 특히 미국의 보수 성향 웹사이트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는 태극기 소각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 유사한 모습입니다. 국기훼손을 국가 모독 행위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한국과 미국의 사법부가 어떤 법리적 판단을 내렸는지 한번 들여다 봅시다.

▶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 미국

미국에서 국기 모독에 대한 기준이 되는 판례는 1989년 연방대법원의 '텍사스 대 존슨 사건'입니다.

1984년, 공산주의자인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남성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성조기를 불태웠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 감정이 고조됐다는 이유였습니다.

1심은 텍사스주 형법상 국기모독죄로 징역 1년, 벌금 2000달러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89년에 열린 연방대법원의 최종심 역시 5대 4로 존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연방대법원이 1989년의 최종 판결에서 존슨에게 무죄를 내린 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 때문이었습니다.

다수 의견을 대표해 판결문을 쓴 대법원 판사 윌리엄 브레넌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의 힘은 경직성이 아니라 융통성에 있다. 대법원의 결정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고, 존슨 같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힘이다."

이 판결으로 국기보호법은 위헌이 됐고, 이후 성조기 소각 금지 헌법수정안은 미국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 국기 모독 여부를 중시하는 한국

한국은 국기를 모독할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를 중시합니다. 형법 105조에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를 손상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죠.

지난 2011년 당시 한명숙 총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하며 태극기를 밟아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당했지만, 검찰은 "국가 모독 의도가 없었다"며 기소하지 않았던 적도 있습니다.

참고로 1982년 반미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이 성조기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83년 대법원은 "반미활동은 북한 공산집단을 이롭게 한 것이므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함이 정당하다"고 선고한 바 있습니다.

▶ 태극기 불태운 대학생 처벌받을 수 있을까?

태극기를 불태운 대학생이 검거되더라도, 위에서 말했듯이 형법상 '국가를 모욕할 목적이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습니다. 모욕할 목적이 있었음이 인정되더라도 법원이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수 있으며, 형사 처벌의 값어치가 없다고 보면 위법성 조각사유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대학생은 21일 인터넷 언론인 '슬로우뉴스'와 신분을 감추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기를 모독하려는 뜻은 없었고 공권력 남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형법 105조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의 진위를 입증하는 게 관건입니다.

한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태극기 소각 사건에 대해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도 감독하겠다"며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국기에 대한 존중이 우선일까요? 아니면 표현의 자유가 우선일까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끝)

*동영상은 미국에서 미셸 맨하트가 성조기 훼손 퍼포먼스를 하던 시위대와 충돌해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

오늘의 신문 - 2021.06.1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