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입장에서 봤을때는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현지 신문에 톱 기사 헤드라인 만한 크기로 박근혜 대통령을 환영하는 문구가 한글로 실렸으니까요. 그만큼 콜롬비아에서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죠? 또한, 삼성이 콜롬비아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기업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의 눈으로 봤을 때 영 찜찜함이 가시질 않습니다. 신문 1면에 전면 광고라니 말입니다. 그게 뭐 대수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문 1면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1면은 신문의 얼굴입니다. 신문사에서는 아침부터 1면에 어떤 기사를 낼 것인지를 고민합니다. 편집국장단과 각 부서의 데스크들이 회의를 통해서 결정합니다. 그날의 가장 중요한 기사, 가장 큰 사건 중에서 1면용 기사를 엄선하죠. 마감 시간이 임박해도 더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급하게 기사를 바꾸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뉴스를 전해야 하니까요.
신문 1면을 편집하는 편집기자는 아침부터 항상 골머리를 싸맵니다. 지면에 들어가는 작은 단어 하나까지도 고심해서 가장 적확한 어휘를 고릅니다. 사진의 컬러, 그래픽, 선 하나하나까지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죠. 그래서 편집기자들 사이에서 1면 편집을 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답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아직 의미가 잘 안 와 닿으신다고요? 그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지요.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인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습니다. 미 대통령의 방한은 큰 뉴스죠. 신문 1면에 기사나 사진을 실을 만합니다. 하지만 방한을 맞이해 애플이 "광고료를 많이 줄 테니 1면 전면에 성조기도 넣고 'Welcome Barack Obama'라는 문구도 넣은 전면광고를 게재해달라"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혹여나 어마어마한 광고료에 혹해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날 편집국은 시끌시끌 할 것입니다. 노발대발한 기자들이 '그렇게는 신문 만들 수 없다'며 드러누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신문이 그대로 나간다면? 그땐 우리의 독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것입니다. 다음날 신문사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인터넷에는 성난 누리꾼들의 비판글이 쇄도하겠죠. '돈에 눈먼 기레기'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부에 어떤 갈등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콜롬비아의 엘 에스펙타도르 라는 신문은 과감하게 1면에 삼성의 전면광고를 실었습니다. 엘 에스펙타도르는 일명 '듣보' 언론사는 아닙니다. 콜롬비아 현지의 손꼽히는 유력 일간지입니다. 자유를 최선의 가치로 여기고 타 언론사들과 비교했을때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를 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고 합니다.
에스펙타도르(espectador)는 스페인어로 사물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관객, 시청자라는 뜻인 동시에 방관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언론사가 평소 얼마나 세상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보도했을지는 몰라도 그 날 만큼은 방관자라는 뜻이 더 어울려 보이네요.
글을 쓰다보니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삼성은 대체 얼마만큼의 돈을 광고료로 지급했을까요? (끝)